하천을 끼고 길게 발달한 용인 김량장
용인시(龍仁市)는 본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치고 용구(龍駒)에서 ‘용(龍)’자와 처인의 ‘인(仁)’자를 합쳐 용인현(龍仁縣)이라고 칭하다가 후에 양지군(陽智郡)을 합쳐 오늘의용인시(龍仁市)가 되었다.
용인지방(龍仁地方)은 부족국가시대 이래 광주지방(廣州地方)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일찍이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즉위한 이후 계속 백제의 영토에 속하였다. 용인지방이 용구현(龍駒縣)이란 명칭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것은 서기 475년(고구려 장수왕 63년)이며 이것이 최초이다. 이 해에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은 3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정하여 백제의 왕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아단산성에서 백제 제21대 개로왕을 죽였다. 이때 고구려는 새로운 점령지인 용인지방을 중앙집권적 군현 제도에 따라 구성현(駒城縣)으로 명명하고 자국의 영토로 귀속시킴으로 비롯되었다.
용인에는 이미 고려시대에 김령역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김령역·김령원이 있었다. 이 근처에 시장이 섰으므로 김령장이라고도 불렀는데, 뒤에 변음되어 '김량장'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김량장리가 되어 용인군의 군청소재지가 되었고 1996년에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김량장리 또한 김량장동으로 승격되었다.
5일장이 되면 노점상이 많아 북적거린다
요즈음 들어 5일장이 부각되면서 점차 수원 등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김량장으로 모여든다.
김량장은 일설에 의하면 김량이라는 사람이 맨 처음 시장을 벌여, 그의 이름을 따서 김량장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읍지』를 보면, 김량장이라는 장시의 명칭이 보이고 있어, 김량장의 유래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996년에 용인군이 용인시가 되면서 용인읍이었던 지역은 현재 용인시 역삼동, 유림동, 중앙동, 동부동으로 나누어졌다. 용인읍은 조선 중종 25년(1530)부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까지 수여, 또는 수여면(水餘面)으로 불려졌다. [양지읍지(1871)]에 의하면 신평리 마전(마평리), 김량장, 해곡리, 호리 등은 양지현에 속해 있었는데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위 지역들이 양지군에서 수여면으로 이속되었다. 그리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인군과 양지군이 합쳐지면서 수여면의 어매곡(魚梅谷)과 금천리 지역이 포곡면으로 옮겨졌고, 양지군의 주서면 일부인 마전, 해곡, 호리, 김량장 등이 수여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38년에 면 이름이 용인면으로 개칭되었다.
용인읍 때는 김량장리(金良場里), 역북리(驛北里), 삼가리(三街里), 남리(南里), 유방리(柳防里), 고림리(古林里), 마평리(麻坪里), 운학리(雲鶴里), 호리(虎里), 해곡리(海谷里)로 구성되었다가, 1996년 용인군이 용인시가 되면서 용인읍은 없어지고 4개 동으로 나뉘어졌다. 현재 역삼동은 역북리, 삼가리, 유림동은 유방리, 고림리, 중앙동은 김량장리, 남리가, 동부동에는 마평리, 운학리, 호리, 해곡리가 속하게 됐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각 동(洞)의 통(統)으로 편성되어 있다.
5일장에는 철이 빨리 온다. 봄이 되기 전에 각종 꽃과 씨앗들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현재 김량장은 용인장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노인들을 빼고는 김량장이라고 하면 5일장이 아닌 상설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도 곡물, 생선, 옷, 침구, 가방 등을 파는 상점들과 식당들이 즐비한 재래시장을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매달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에 용인경찰서 맞은편 상설시장 인근을 흐르는 하천가에 노점상이 들러서면서 5일장을 형성하고 있다.
용인 5일장은 한 때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그 회생이 불가능하다고도 하였으나 현재는 5일장이 활성화가 된 것을 보인다. 요즈음 들어 5일장을 살리자는 운동이 불고, 더욱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5일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다가 보니 자연 과거와 같은 그런 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고 해도 장날 찾아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린다.
물건을 놓고 흥정을 하는 모습이 정겹다.
하천을 끼고 길게 늘어선 용인의 5일장은 그야말로 만물장이다. 별의별 종류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손님들을 불러대는 장사꾼들의 고함소리에 묻혀 정신이 얼떨떨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장의 분위기를 만끽 할 수 있어서 좋다. 오죽하면 5일장에 가면 '암소 부랄만 없고, 모든게 다 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을까?
구성에서 5일장을 보러 나왔다는 한 주부는 “5일장을 매번 이용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사면 기본의 대형 마켓보다도 싸고 집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유기농산물을 가져오기 때문에 건강을 지키는데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한다. 벌써 오래전부터 5일 장을 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다는 김모씨(남, 54세)는 “요즈음 들어서 5일장이 부쩍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어요. 경제가 안 좋으니 좀 더 싸고 좋은 것을 찾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5일장의 부활과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라고 하면서 ‘5일장을 좀 더 활성화시켜 경제의 근간이 되는 쌈짓돈이 회전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경제를 일으키는데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한다.
5일장은 만물상이다. 이 곳에 가면 '암소 부랄만 없고 모든게 다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김량장은 오후 서너 시가 되면서 파장 분위기다. 물건을 정리하는 장사꾼들과 보따리를 이고, 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네 정을 본다. 오랜 시간 우리들의 삶을 한 구석 책임져 온 용인 김량장의 그 시끌벅적한 모습이 바로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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