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금강산 신선봉 끝자락에 자리한 화암사와 수바위

영지니 2007. 6. 10. 11:07

화암사라는 절집 명칭을 갖게 만들었다는 수바위 

 

금강산 화암사(禾巖寺)의 이름은 원래 화엄사(華嚴寺)였다.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후기인 769년(혜공왕 5년)에 법상종의 개조인 진표율사가 창건을 했다고 적고 있다. 진표율사는 이절에서 수많은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했으며, 진표율사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중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69명은 무상대도를 얻었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절집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지장암을 지어 부속암자로 삼았다고 전한다. 화엄사를 화암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12년 경 부터인데,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는 절을 오르다보면 길 좌측에 높다랗게 솟은 왕관모양의 기암괴석이 있고 그 이름을 수바위라고 부른데서 기인하였다.  

 

 

 

 

위로부터 대웅전, 삼성각, 종각, 그리고 전통찻집 


화암사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1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1623년(인조 1년)에 소실되어 1625년에 복원이 되었으며, 그 후에도 몇 차례의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다. 1912년에 화암사라고 이름을 고친 후 1915년에 다시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소실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법당만을 다시 신축하여 전해오던 중 1991년 8월 신평 뜰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의 일환으로 주변 정비계획에 따라 기존 법당을 철거하고 재정비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절 남쪽에 있는 수바위와 북쪽에 코끼리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에 절터가 있어 수바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절은 창건당시 위치에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장소에 있단다. 지금의 화암사는 고종원년에 또 화재로 소실되어, 그해 9월에 수봉으로 이전하여 건립하고, 한때 수암사라 이름 하기도 하였다. 현재 화암사 경내에는 삼성각, 미타암, 대웅전, 명부전, 설법당, 요사채, 종각, 금강누각, 일주문 등이 있으며, 일주문 앞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춘담대법사탑을 비롯하여 화곡, 영담, 원봉, 청암스님 등의 부도 15기가 모셔져 있다.


화암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유인 남쪽 300m 지점에 우뚝 솟아있는 기암 수(秀)바위. 멀리서 바라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기암이다. 이 수바위에서는 진표율사를 비롯해 여러 스님들이 정진을 하였는데, 바위 위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하며, 이곳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화암사는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시주를 구해 공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리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라고 하지만 먹지를 않고는 수행을 할 수가 없으니, 멀리 떨어진 민가에 가서 시주를 구하다 보면 수행을 하는데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강산 화암사 수바위와 절집 경내

 

어느 날 이 절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동시에 나타났다. 백발노인은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알려주면서 끼니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세 번을 흔들라고 했더니 두 사람 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객승이 이 이야기를 듣고 세 번을 흔들어 두 사람이 먹을 쌀이 나왔으면, 여섯 번을 흔들면 에 사람이 먹을 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욕심을 내어 쌀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여섯 번을 흔드는 바람에 쌀이 나오는 구멍에서 피가 흐르고 난 뒤 쌀이 끊어져 버렸단다. 화암사가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쓰게 된 것도 이 전설에 연유한다는 이야기이다. 화암사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연유를 들어보니 화암사 수바위가 아들을 점지 해 주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서라는 대답이다.

 

 

 

삼성각 외벽에 그려진 벽화 


화암사가 <금강산 화암사>라고 명명을 하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강원도 고성군의 신선봉에서 발원을 하는 것이니 일만이천봉 중 신선봉이 그 첫 번째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신선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화암사는 당연히 팔만 구암자 중 첫 번째라는 것이다. 화암사의 서북쪽에 자리한 삼성각 안에는 금강산 천선대, 상팔달, 신선봉 등이 그려져 있어, 화암사가 금강산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도 미시령을 경계로 속초를 향해 가다가 우측 울산바위가 보이는 곳은 설악산이고, 좌측은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44번과 46번 국도를 이용하면 미시령을 넘을 수가 있다. 요즈음은 미시령터널이 뚫려 미시령 고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들어오다가 보면 좌측에 <金剛山 禾巖寺>라고 쓴 이정표가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면 수바위가 보이고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산길로 올라 좌측에 수바위를 바라보고 건너편에 있는 화암사.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채, 그렇게 금강산 끝자락인 신선봉 아래에 자리를 하고 있다.

 

화암사의 단청과 부도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