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단군 소태 재위 52년
갑진 원년(BC 1337) 은나라왕 소을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경인 47년 은나라왕
무정이 귀방을 쳐 이기더니 또 대군을 이끌고 색도 영지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
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임진 49년 개사원의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니 일군국과 양운국의 두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 때에 고등이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의 땅을 공격하여 차지하게
되니, 그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 이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와 우현왕으로 임명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단제는 이를 위태롭게 여겨 허락치 않으려 했는데 거듭하여 이
를 청하매 허락하여 두막루라 부르도록 하였다.
을미 52년 우현왕 고등이 죽으니 그의 손자 색불루가 세습하여 우현왕이 되었다. 단제
께서 나라안을 돌아보시다가 남쪽에 있는 해성에 이르러 부로들을 모두 불러 모아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리고는 오가를 불러 이들과 더불어 제위를
물려줄 것을 의논하셨는데 스스로는 늙어서 제위를 지키기 어렵다하시며 정치를 서우
여에게 맞기고 싶어 하셨다. 이에 살수의 땅 백리를 둘러보시고 이를 그에게 봉하시사
명을 내려 섭주로 하여 기수(奇首)라 부르게 하였다. 우현왕은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단제에게 권하여 이를 중지케 하였으나 단제는 종래 이를 듣지 않으셨다. 이에 우현왕
은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사냥족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단제도 어쩔수 없이 옥책 국보를 전하고 아사달에 은퇴하여 마침내 붕어하셨다. 이해
에 백이와 숙제도 역시 고죽군의 자손들로서 나라를 버리고 동해의 해변가에 와서 살
며 밭갈기에 힘쓰며 혼자 살아갔다.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병신 원년(BC 1285) 단제 명하사 녹산을 개축시키고 관제를 개정하였다. 가을 9월엔
친히 장당경으로 행차하시어 묘를 세우고 고등왕을 제사지냈다. 11월 몸소 9한의 군사
를 이끌고 여러차례 싸워 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부쉈다. 이듬해 2월 이들을 추격하여 황하주변에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번한의
백성들을 회대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신축 6년 신지인 육우는 '천년 제업의 땅이라 해도 대운이 이미 다했으며 영고탑은 왕
기가 짙어 백악산을 오히려 능가하는 듯 합니다. 청컨대 성을 쌓고 이곳으로 도읍을 옮
기시옵소서'라고 상주하였으나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신도에
이미 집이 있는데 다시 어째서 옮길 것인가?'라고 하셨다.
을묘 20년 이 때에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쫒고 남으로 이
동하여 엄독골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이에 여파달
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 기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과 서로 단결
하여 나라를 세워 여라 칭하고 서융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
였으니, 남씨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산(恒山)의 이남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신미 36년 변방의 장수 신독이 병력을 믿고 난을 일으켰다. 이에 단제가
한동안 영고탑으로 피하니 많은 백성이 이에 따랐다. 계미 48년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아흘이 즉위하였다.
23세 단군 아흘 재위 76년
갑신 원년(BC 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골을 통치하도록하고, 웅
갈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읍을 설치하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은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서 결판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병력을 진격시켜 공격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가을 7월 신독을 주살하고 수도로 돌아온
뒤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였다. 을유 2년 남국의 임금 금달이 청구의 임금, 구려의 임
금과 주개에서 회합하고 몽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씨를 엄으로, 영고씨를 서 땅에 방
고씨를 회땅에 각각 임명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무자 5년 이한및 오가를 불러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의논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기해 76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연나가 즉위하였
다.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경자 원년(BC 1161) 황숙 고불가를 섭정으로 삼다.신축 2년 여러 한들은 조서를 받들
고 소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나라에 큰일이나 이변이 있으면 전적으로
여기에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경술 11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솔나가
즉위하였다.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신해 원년(BC 1150) 정해 37년 기자(箕子) 서화(西華)에 옮겨가 있으면서 인사를 받는
일도 사절하였다.
정유 47년 단제께서 상소도에 계시며 예로부터 전해오는 의례를 강론하시다가 영신과
직신의 구분을 물으셨다. 이에 삼랑 홍윤성이 나서서 대답했다.'이치를 지켜 굽히지 않
는 자는 직신이옵고 위세를 두려워하여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이오며 임금은 근원이
요 신하는 흘러가는 물입니다. 근원이 이미 흐렸으면 그 흐름이 맑기를 구하여도 이것
이 될 수 없는 일이나니, 때문에 임금이 성인이 된 후라야 신하가 바른 법입니다.'
단제 가로되 '옳은 말인지고'라 하였다.기유 59년 밭 곡식에 풍년이 들어 한 줄기에 다
섯개 이삭의 조가 있었다.무인 88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추로가 즉위하였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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