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
경인 원년(BC 1891) 단제께서는 오가에게 명을 내려 열두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
라 국선의 소도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의 상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지내며 웅상이라 이름했다. 이 때 국자랑의 스승으
로 있던 유위자가 계책을 올려 말하길,'생각하옵건대 우리의 신시는 실로 환웅천왕께
옵서 개천하시고 무리를 거두심에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세워서 백성들을 교
화하셨습니다.
이에 천경신고는 위에 조술하신바요 의관대일은 기꺼이 밑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니,
백성들은 범하는 일없고 함께 다스려져 들에는 도적떼도 없이 스스로 평안하였습니
다. 온 세상 사람들 병도 없이 장수하며 주리는 이 없이 풍요로우니, 산에 올라 노래 부
르며 달을 맞아 춤추었습니다. 먼곳이라도 이르지 못하는 곳 없고 흥하지 않는 곳 없게
되었으니 덕이 넘치는 가르침은 만백성에게 주어지고, 칭송하는 소리가 사해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뜨거운 정이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겨울 10월에 대시전을 세우도록 명령하셨으니 매우 장려하였다. 돌아가신 천제 환웅의
모습을 받들어 모셨는데 그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번쩍하여 마치 큰해와 같았다. 둥
근 빛은 온 우주를 비추며 박달나무 밑 환화의 위에 앉아 계시니 하나의 살아있는 신이
둥근원의 한 가운데 앉아 있는것 같았다. 천부의 인을 가지고 대원일의 그림을 누전에
걸어 놓으셨으니 이를 일러 커발한이라 하였다. 사흘동안 재계하시고 이레동안 그 뜻
을 말씀하시니 위풍이 사해를 움직이는 듯 했다. 이를 간절한 마음으로 쓴 글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하늘은 깊고 고요함에 큰 뜻이 있어
그 도는 온 누리에 막힘이 없이 가득하리리
모든 것은 다만 참된 것으로부터 비롯됨이라.
땅은 가득 품고 있음에 뜻이 있어
그 도는 어디에나 막힘이 없이 드러나리니
모든 일은 다만 부지런히 힘쓰는 것으로부터 비롯됨이라.
사람은 살펴 아는 것에 큰 뜻이 있어
그 도는 어디에서나 막힘이 없이 고르고 구별함이니
모든 일은 다만 조화를 이룸으로부터 비롯됨이라.
그렇기 때문에 신은 정성스러운 마음에 내려와
성품은 광명을 이루어 세상에 바른 가르침을 펴서
온 누리를 이롭게 하나니
이에 돌에 이글을 새겼다.
정사 28년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으사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방물을) 헌납하여, 진열한 것이 산처럼 쌓였다.정묘 38년 백성들 가운
데서 장정을 뽑아서 모두 병사로 삼았다. 선사 20명을 하나라 서울로 보내 처음으로 나
라의 가르침을 전함으로써 위세를 보였다.을해 46년 송화강 기슭에 관청을 세우니 배
와 그에 관계되는 여러가지 물건이 크게 세상에 퍼졌다. 3월에 삼신의 단을 산의 남쪽
에서 제사지냈으니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고 치사를 드리며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 특별히 널리 술을 하사하시어 여러사람들과 더불어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
시면서, 여러가지 재주를 관람하시었다. 이 자리가 끝나자 마침내 누각에 오르셔서 천
부경에 대하서 논하시고 삼일신고를 강연하시더니 오가를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이
제부터는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며 옥문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 수 있도
록 하며 사형제도를 없애노라.'이에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병술 57
년 단제 붕어하시니 만백성이 이를 슬프게 여김이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함과 같아서, 삼
년동안 근신하며 온 누리에 음악, 노래소리가 끊겼다. 뒤를 이어 우가 아한이 즉위하
다.
12세 단군 아한 재위 52년
정해 원년(BC 1834) 무자 2년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나다. 가을 8월 단
제께서 나라 안을 두루 순수하였는데 요하의 남쪽에 이르르자 순수관경의 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겨 이를 전하게 하셨다. 이것이야말로 금석문의 가장 오래된 것
이라, 뒤에 저 창해역사 여홍성은 이 비석을 지나며 시 한 수를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마을 밖 변한이라 이르는 곳에
홀로 뛰어난 돌 하나 있었네
받침은 깨지고 철쭉만 붉었는데
글자는 보이지 않고 이끼만 푸르구나
다듬어져 처음 생겼을 때 그대로
흥망의 황혼에 우뚝 서있으니
글에 보이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이 어찌 단군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을묘 29년 청아의 욕살 비신과 서옥저의 욕살인 고사침과 맥성의 욕살인 돌개를 봉하
여 왕으로 삼으셨다.
무인 52년 단제 붕어하시고 우가 홀달이 즉위하였다.
13세 단군 홀달(혹은 대음달) 재위 61년
기묘 원년(BC 1782)갑오 16년 주와 현을 나누어 정하고 직책의 한계를 정하였다. 관리
는 권력을 겸하는 일 없고 정치는 법칙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니 백성은 고향을 떠
나는 일 없이 스스로 일하는 곳에서 편안하여,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넘쳤다. 이
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홀
달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하니, 은
나라의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은 조약을 위배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고 하였
다. 이에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 우량을 파견
하여 견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과 합쳐서 진격하여 관중의 빈 기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
무술 20년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은 돌아다닐때 머
리에 천지화를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이라고도 불렀다.무진 50년 오성
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기묘 61년 단제께서 붕어하시
니 백성들은 모두 밥도 먹지 않았으며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명을 내려 죄수들
을 석방하고 산것을 죽이지 않으며 널리 놓아주도록 하였다. 해를 넘겨 장사지낸후 우
가인 고불이 즉위하였다.
14세 단군 고불 재위 60년
경진 원년(BC 1721)을유 6년 이해에 큰 가뭄이 있었다. 단제께서 몸소 하늘에 기도하
여 비오기를 빌며 말씀하시길,'하늘이 크다 하나 백성이 없으면 무엇에게 베풀것이며
비는 기름지다 하나 곡식이 없으면 어찌 귀하리오. 백성이 하늘처럼 여기는 것은 곡식
이며 하늘이 마음처럼 여기는 것은 사람이니 하늘과 사람은 일체일진대 하늘은 어찌하
여 백성을 버리시는가? 이제 비는 곡식을 기름지게 할지며 때 맞춰 구제하게 하소서'라
고 하니, 말을 마치자 큰 비가 수천리에 삼대처럼 내렸다.신유 42년 9월 말라 죽었던
나무에 새싹이 나고 오색의 큰닭이 성의 동쪽, 자촌의 집에서 태어나니 이를 본 사람들
이 알아보고는 봉황이라 하였다.
을해 56년 관리를 사방에 보내 호구를 조사, 계산하게 하니 총계 1억 8천만인이었다.기
묘 60년 단제 붕어하시고 대음이 즉위하였다.
15세 단군 대음(혹은 후흘달) 재위 51년
경진 원년(BC 1661) 은나라 왕 소갑이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구했다. 이 해에 80분의 1
의 세법을 정하였다.
신사 2년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이에 단제께서는 매우 불쌍하
게 여기셔서 곡식을 창해사수의 땅으로 옮겨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셨다. 겨울 10
월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기축 10년 단제께서는 서쪽으
로 약수로 가시더니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철 및 고유를 채취하도록 했다. 가을 7월
우루국 사람 20인이 투항해 오니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하였다.
정미 28년 단제께서는 태백산에 오르사 비석을 세워 역대 단군들의 이름과 역대왕들의
공적을 새겼다.
기미 40년 단제의 동생 대심을 봉하사 남선비의 대인으로 삼다.경오 51년 단제께서 붕
어하시니 우가 위나가 즉위하였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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