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세 단군 음차 재위 20년
경술 원년(BC491)
기사 20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을우지 즉위하다.
42세 단군 을우지 재위 10년
경오 원년(BC 471)
기묘 10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물리 즉위하다.
43세 단군 물리 재위 36년
경진 원년(BC 461)
을묘 36년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 수만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단제는 병력을 파견했으나 이기지 못했으며, 겨울이 되자 도적들은 도성
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했다. 단제께서는 좌우의 궁인과 함께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
들어 모시고 배를 타고 피난하여 해두로 가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 해에 백민성
욕살 구물이 어명을 가지고 군대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을 점령하니 구지의 군사들이
이에 따라서 동서의 압록 18성이 모두 병력을 보내 원조하여 왔다.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
병진 원년(BC 425) 3월 큰 물이 도성을 휩쓸어 버리니 적병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구
물단제께서는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들을 정벌하니 적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절로 괴멸하니 마침내 우화충을 죽여버렸다. 이에 구물은 여러 장수들의 추앙을 받
는바 되어, 마침내 3월 16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이
에 나라이름을 대부여라고 고치고 삼한은 삼조선이라고 바꿔불렀다. 이 때부터 삼조선
은 단군을 받들어 모시고 통치를 받기는 했지만 전쟁의 권한에 있어서는 애오라지 한
분에게만 맡겨 두지는 않게 되었다. 7월에는 해성을 개축하도록 하여 평양이라고 부르
도록 하시고, 이궁을 짓도록 하였다.
정사 2년 예관이 청하여 삼신영고의 제사를 지냈다. 곧 3월 16일이었는데 단제께서 친
히 행차하시어 경배하시니 첫번째 절에 세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번째 절에 여섯번 머
리를 조아리고 세번째절에 아홉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는데, 무리를 거느리고는 특
별히 열번 머리를 조아렸다. 이를 삼육의 대례라고 한다.
임신 17년 감찰관을 각 주와 군에 파견하여 백성들을 살펴보아 효도를 잘하는 자와 청
렴결백한 관리를 천거하도록 하였다.무인 23년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
인사를 올렸다.갑신 29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여루가 즉위하였다.
45세 단군 여루 재위 55년
을유 원년(BC 396) 장령의 낭산에 성을 쌓다.신축 17년 연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을
침범하매 수비장수 묘장춘이 이를 쳐부수었다.병진 32년 연나라 사람 배도가 쳐들어와
서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에 까지 육박해왔다. 이에 번조선이 대장군 우문헌에게 명
하여 이를 막게하고 진조선 막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여 오더니 복병
을 숨겨두고 연나라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에서 쳐부수고는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
이 되찾았다.
정사 33년 연나라 사람이 싸움에 지고는 연운도에 주둔하며 배를 만들고 장차 쳐들어
올 기세였으므로 우문헌이 추격하여 크게 쳐부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신미 47년
북막의 추장 액니거길이 조정에 찾아와서 말 200필을 바치고 함께 연나라를 칠 것을
청했다. 마침내 번조선의 젊은 장수 신불사로 하여금 병력 만명을 이끌고 합세하여 연
나라의 상곡을 공격하고 이를 도와 성읍을 쌓게 하였다.무인 54년 상곡의 싸움이후 연
나라가 해마다 침범해오더니 이 때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하므로 이를 허락
하고, 또 조양의 서쪽으로 경계를 삼았다.기묘 55년 여름 크게 가물었다. 죄 없이 옥에
갖힌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크게 사면하고 몸소 나아가서 기우제를 드렸다. 9월에 단
제께서 붕어하시고 태자 보을이 즉위하였다.
46세 단군 보을 재위 46년
경진 원년(BC 341) 12월 번조선왕 해인이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니 오가가
다투어 일어났다.무술 19년 정월 읍차 기후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하여 자칭하여 번조
선 왕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매 이를 허락하시고 굳게 연나라에 대비토록
하였다.정사 38년 도성에 큰불이 일어나 모두 타버리고 단제께서는 해성의 이궁으로
피난하였다.
계해 44년 북막의 추장 이사가 음악을 바치니 이를 받으시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을축
46년 한개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하니 대장군 고
열가가 의병을 일으켜 이를 쳐부수었다. 단제께서는 서울로 돌아오셔서 대사령을 내리
셨는데 이 때부터 나라의 힘이 매우 약해져서 나라의 비용도 제대로 쓸수 없었다. 단제
께서 붕어하셨는데 후사가 없으매, 고열가가 단군 물리의 현손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받기도 하였고 또 공도 있었던터라 마침내 즉위하였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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