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적 , 역사서

한단고기 25. 태백일사(삼한 관경본기)

영지니 2007. 12. 30. 13:59

 

 

태백일사


삼한 관경본기

태백산은 북쪽을 달리는 산으로 높게 비서갑의 땅에 우뚝서 있다. 물을 뒤로 업고 산을 끌어 안고 있는데, 크게 둥그렇게 돌아 모이는 곳이 있으니 곧 대일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라. 세상에 전하기를 '환웅천왕이 여기까지 순수하시사 사냥하시었기 때문에 그를 제사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풍백은 천부를 거울에 새겨 앞서 가고, 우사는 북을 치며 돌아가며 춤을 추고, 운사는 백검(백사람을 거느리는 지휘자의 상징)으로 호위하였으니, 대저 천제가 산에 임하실때의 의식은 이처럼 장중하였다. 산이름은 불함이라 하더니 지금은 또 완달이라 하니 그 음이 비슷한 바 있다. 뒤에 웅녀의 군이 천제의 신임을 받아 세습하여 비서갑의 왕검이 되었다.

왕검은 속어로 말하면 대감이니 땅을 관리하고 지키며, 포악함을 제거하여 백성을 돕는다. 천왕은 나라 사람들의 뜻을 살펴서 저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부모는 공경해야하며, 처자는 보호 양육해야 하며, 형제는 사랑하고 장노는 존경하고, 어리고 약한 자에겐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뭇 백성은 믿어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또 의약,공장,축산,농사,측후,예절,문자의 법을 제정하고 땅을 하나같이 평등하게 하여 이로써 잘 교화시키니 멀리 떨어진 백성들까지 모두 서로 의심치 않게 되었다. 웅씨가 갈려져 나간 자에 소전이라고 있었는 데 안부련 말기의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의 환웅 아들 신농(염제 신농씨를 뜻한다.중국 삼황 가운대 두번째 황제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한국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씨의 후예이다, 농사와 의약의 원조라고 불리운다.)은 수 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중국 호북성 수현의 북쪽에 있다.)으로 이사하였는데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하였다. 소전의 별고(고아)에 공손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헌구로 유배시켰다. 헌원의 무리(황제 헌원을 뜻한다. 헌원은 국호이다, 중국 "사기"에 중국 삼황오제가 이름과 나라만 다를뿐 모두 같은 성씨라 하였다, 여기서 신농의 별고라 하였으니, 신농과 황제가 동이족임을 뜻한다.) 모두 그의 후손이다. 사와라환웅 초기의 일이다. 웅녀의 후손으로서 '여'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단허에 책봉받아서 왕검이 되매, 덕을 심어 백성을 사랑하고 영토를 차츰 크게 넓히니 여러곳의 왕검들이 나아와 특산물을 바치며 이로써 귀화하는 자 천여명을 헤아렸다. 뒤에 460년이 지나 '신인왕검'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크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비왕이 되었다. 섭정하신지 24년에 웅씨의 왕은 전쟁하다가 붕어하시니 왕검은 마침내 그 왕위를 대신하여 구한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곧 나라의 인물들을 불러 약속을 세워 가로대,

'앞으로는 백성의 뜻을 물어 공법을 만들고 이를 천부라 할지니, 그 천부란 만세의 강전이며 지극히 존중하여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삼한으로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시니, 진한은 스스로 천왕께서 다스리시고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여시사 조선이라 하시고, 이를 일세 단군이라 한다. 아사달은 삼신을 제사지내는 곳인데, 후인들은 왕검의 옛집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왕검성이라 했다.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