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적 , 역사서

한단고기 23. 태백일사(신시본기 2)

영지니 2007. 12. 30. 13:53

 

 

태백일사


신시본기

<<밀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처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을 성씨로 가졌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관임기포이사팽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의 계수에 희족의 옛 거처가 있다. 임 숙 수 구 수유의 여러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을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 받다.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복희의 능은 지금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곡은 음식,약은 옷감,약은 의약,석은 건축)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배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

우리 치우천왕께서는 신시의 옛 힘을 받으시사 백성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시니, 능히 하늘에 제사지내 삶을 아시고, 땅을 여시사 삶을 도모하시고, 사람을 발탁하여 삶을 숭상할 수 있으셨다. 온갖 사물의 원리는 빠짐없이 몸소 살펴보니, 그 덕이 미치지 않는 곳 없었고, 지혜는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으며,힘 또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셨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범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는 안으로는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하여지니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였다. 집안과 가문에서 장수 될만한 인재 81명을 골라 여러 부대의 대장이 되게 하고 갈로산은 쇠를 캐내어 도개 모극 대궁 호시(나무로 만든 화살)를 만들어 한결같이 잘 다듬더니 탁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구혼에 올랐다. 연전연승하는 그 위세는 질풍과 같아서 만군을 겁에 질려 굴복케하고 위세는 천하에 떨치더라. 한해 동안에 아홉개의 제후의 땅을 정복하고 다시 옹호산에 웅거하여 구야로써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예과와 옹호의 창을 만들어내고, 다시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당산 북쪽의 안시성)를 건너 출진하더니 재빨리 공상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이해에 12제후의 나라를 점령하고 죽이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그득 메우게 되었다. 이에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치지 않는자가 없었다.때에 유망은 소호로 하여금 맞아 싸우게 하였으나 대왕은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우고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병으로 하여금 혼미케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소호는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유망과 함꼐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즉시 하늘에 제사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하였다.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관자>>가 말하는 바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는 대목이 이를 말함이다.

때에 공손 헌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 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 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를 보내 탁록에 쳐들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헌원의 무리는 모두다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황의 법력이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했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역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흠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바 10년동안 헌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뒤에 헌원은 여러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 더 커졌다. 군대를 일으켜 우리의 신시를 본따 크게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거의 수레도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사 노여움에 부들부들 떠시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처서 헌원은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더불어서 한바탕 싸움이 크게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에 치우비아 라는 자가 있어 불행가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치우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방도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 하고, 헌원은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과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붉은 깃발모양의 연기)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치우천왕의 공덕은 세상에 전하여 능히 떨치고 그윽한 푸르름 속에 그 명성 위엄을 떨어지지 않고 있음이라. 헌원이래로 세상은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눕지를 못했다. <<사기>>에 이르되 <간을 뚫어 길을 내고 한번도 편안히 있은 적 없다. 탁록의 강에 도읍을 옮겨 다니며 항상 거처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난>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헌원이 살았을 때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또 <<상서>>여형예서는 '고훈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 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를 빼았긴 탓' 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의 훈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그 뒤 300년은 별일이 없었는데 다만 전욱과 한번 싸워 이를 이겼을 뿐이다.

대저 신시개천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이 나셨다. 웅씨의 비왕으로서 마침내 신시에 대신하여 구역을 통일하고 관경으로 삼한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이라고 한다.

<<삼한비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서쪽변방에 봉토를 받더니 직에 있으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무기를 쓰지 않고서도 한 지역을 감화시켜 마침내 수인에 대신하여 지역 밖에까지 명령을 내렸다. 뒤에 갈고한웅이 있었는데, 신농의 나라와 구역의 경계를 확정하여 공상 동쪽이 우리에게 속했다. 또 몇대를 지나 자오지천왕한웅에 이르다. 자오지한웅은 귀신 같은 용맹이 몹시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야를 만들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크게 두려워 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땅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하로 잡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신시씨는 전으로써 계를 닦고 사람을 가르치고 하늘에 제 지내었다. 이른바, 전이란 사람이 스스로 완전이라 여기는 바를 쫓아 능히 그 성품에 통하고 이로써 참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는 선으로써 법을 만들고 사람에게 관경을 가르친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난 바를 따라 명을 알고 이로써 선을 넓힘이다. 조선씨는 종으로서 왕을 세우며 사람들에게 가르쳐 화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였다. 이른바 종이란 사람이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에 따라 능히 정신을 잘 지키고 이로써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은 허하면서도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은 밝음에 있으면서도 땅에 근본을 두며, 종은 건전하면서도 사람에 근본을 둔다.' 주에서 말한다.

'한인은 또한 천신이라고 한다. 천을 곧 큰 것이요, 하나이다. 한웅은 또한 천왕이라고도 하니 왕은 곧 황이며 제이니라. 단군은 또한 천군이라 하니,제사를 주재하는 우두머리이다. 왕검은 또한 바로 감군이며 관경의 우두머리이다.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한환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단이라 한다. 이른바 한은 구한을 말하는 것이다. 한한은 곧 크다는 뜻이다. 삼한은 풍백 우사 운사라 한다. 가는 곧 가이다. 오가를 말하자면, 우가는 곡식을 주관하며,마가는 목숨을 주관하며,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며,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양가는 선악을 주관한다고 한다. 백성은 64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이 있었다.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 보낸 것을 개천이라 한다. 개천은 고로 능히 서물을 창조하는데 이것은 바로 허와 같은 것이다. 인간세상을 구한다함을 개인이라 한다. 개인은 때문에 능히 인간 세상의 일을 순환시킨다.이는 혼의 구연을 뜻한다. 산을 다스리고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개지는 때문에 능히 세상의 일들을 개화한다. 이는 지혜를 함께 닦음이라.'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