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일사
번한세가 (하)
단군 색불루는 처음 삼한을 합치더니 나라의 제도를 크게 개혁하였다. 은나라왕 무정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약속하였다. 이보다 앞서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인을 삼았더니 서우여는 몰래 좌원에 돌아와 사냥꾼 무리 수천인과 더불어 짜고 군대를 일으키니 개천령이 듣고 즉각 토벌하려 했으나 패하여 싸움터에서 죽고 말았다. 단제께서는 몸소 삼군을 이끌고 토벌하러 갔다. 이에 먼저 사람을 보내 서우여를 비왕에 봉할 것을 약속하시며 다시 설득하니 서우여가 이에 따르므로 단제께서는 서우여를 번한으로 삼으셨다.
4년 기해에 진조선은 천왕의 칙서를 전하였는데 가로대 '그대들 삼한은 천신을 위로 받들고 백성들도 이에 따르도록 교화하라'고 하다. 이때부터 백성들에게 예의,누에치기,베짜기,활쏘기,글 등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금팔법(禁八法)을 만들었으니, 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리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케하고,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남자는 신분을 무시해 버리고는 그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어 두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하고,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키며,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으로 다스리고, 사기치는 자는 훈계 방면하나 스스로 속죄하려 하면 공툐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면하여 주지만 백성들이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서 결혼도 할 수 없었던 듯하다. 이로써 백성들은 끝내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 문을 닫거나 잠그는 일도 없었고 부녀자들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밭이나 들, 도읍지를 막론하고 음식을 바쳐 제사올리니 어질고 겸양하는 풍속이 가득했다.
병신년에 서우여가 죽고 정유년에 아락이 즉위하더니, 그도 죽었다. 정축년에 솔귀가 즉위하였고, 그가 죽으니 갑자년에 임나가 즉위하였다. 신미년에 천왕의 조서로써 천단(天壇)을 동교(東郊)에 설치하고 삼신께 제사지내다. 무리들이 둥글게 모여 북치며 노래하기를 다음과 같았다.
정성으로 천단을 쌓고 삼신을 축수하세
황운을 축수함이여 만만세로다.
만인을 돌아봄이여 풍년을 즐거워하도다.
임나가 죽으니 병신년에 동생 노단이 즉위하였다. 북박이 쳐들어와 노략질하니 노일소를 보내 토벌하고 이를 평정케 하였다. 그가 죽으니 기유년에 아들 마밀이 즉위했다. 마밀이 죽으니 정묘년에 아들 모불이 즉위했다. 을해년에 감성을 두다.
모불이 죽으니 정해년에 아들 을나가 즉위하였다. 갑오년에 주나라 왕 하(瑕)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을나가 죽으니 정묘년에 마휴가 즉위하였고 그가 죽자 기사년에 동생 등나가 즉위했다. 이극희가 말씀올려서 소련,대련의 묘를 세워 삼년상의 제도를 정할 것을 청하니, 이에 따르다. 등나가 죽으니 무술년에 아들 해수가 즉위하였다. 임인년에 아들 물한을 파견하여 구월산에 가서 삼성묘에 제사지내게 하였으니 묘는 상춘의 주가성에 있다. 해수가 죽으니 기묘년에 아들 오문루가 즉위하였고, 그도 또 죽었다. 정묘년 아들 누사가 즉위하더니 무인년에 천자를 찾아 뵙고는, 태자 등올과 작은 아들인 등리가 별궁에서 한적하게 기거하고 있음에, 태자 형제들에게 노래를 바쳤다.
형은 반드시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마땅히 형을 공경할지니라.
항상 터럭 같은 일로서
골육의 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요.
말도 오히려 같은 여물통에서 먹고
기러기도 역시 한줄을 만드나니
내실에서 비록 환락하나
세언(細言)일랑 삼가 듣지 마소서
누사가 죽으니 을미년에 아들 이벌이 즉위하였다. 병신년에 한수 사람 왕문이 이두법을 지어 바치니 천왕께서 좋다고 하시며 삼한에 모두 칙서를 내려 시행하였다. 기미년에 상장 고력을 파견, 회군(淮軍)과 합쳐 함께 주나라를 치게 하였다. 이벌이 죽으니 을축년에 아들 마휴가 즉위하였고, 그가 죽은 뒤 병진년에 아들 다두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기춘년에 아들 나이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기미년에 아들 차음이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을사년에 아들 불리가 즉위했고, 그도 죽으니 을사년에 아들 여을이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갑술년에 엄루가 즉위했다. 무인년, 흉노가 번한에 사신을 파견하여 천왕을 알현할 것을 청하여 신하로 봉함을 받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엄루가 죽으니 아들 감위가 즉위했고, 그가 죽으니 무신년에 아들 술리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무오년에 아들 아갑이 즉위하였다. 경오년에 천왕은 사신 고유를 파견하시어 먼저 한웅,치우,단군왕검의 삼조의 상을 나누어 주시더니 이를 관가에 모시게 하였다.
아갑이 죽고 계유년에 고태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아들 소태이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을사년에 아들 마건이 즉위하였고, 그가 죽고 병진년에 천한이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병진년에 아들 노물이 즉위하였고, 그도 죽으니 신사년에 아들 도을이 즉위했다. 계미년에 노나라 사람 공구는 주나라에 가서 노자
무술년에 수한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으매 이에 기후가 명을 받아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이 해 연나라도 왕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였으니 기후도 역시 명을 받아 번조선 왕이라 칭하고 처음에는 번한성에 머무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기후가 죽자 아들 기욱이 즉위했다. 기욱이 죽고 신미년에 아들 기석이 즉위했다. 이 해에 각 주군에 명하여 어질고 지혜있는 자를 추천하게 하니 일시에 선택된 자가 270인이었다. 기묘년 번한이 교회에서 몸소 밭을 가꾸었다. 을유년 연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 기석이 죽고 경술년에 아들 기윤이 즉위하였고, 그가 죽자 기사년(bc 172)에 아들 기비가 즉위하였다. 처음 기비는 종실의 해모수와 몰래 약속하여 제위를 찬탈하려 했으니 열심히 명령을 받들어 보좌했다. 해모수가 능히 대권을 쥐게 된 것은 생각컨대 기비 그 사람 때문일 것이다.
기비가 죽으니 아들 기준이 즉위했는데 정미년(bc 146)에 떠돌이 도적인 위만의 꼬임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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