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
신시 때에 선인 발귀리가 있었는데 대호와 동문으로 학문을 배우고 도를 이미 통하여 바야흐로 저와 산사이에서 노닐으니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아사달에서 제천의 예가 끝나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지었으니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대일 그 극은 이를 이름하여 양기라 하니,
없음과 있음이 섞여서, 빈 듯 하면서도 갖추어 묘함이 있도다.
삼일은 그체는 일이요, 그 용은 삼이라.
혼묘가 한 둘레에 있으니 체와 용은 따로 갈라질 수 없도다.
대허에 빛 있음이여, 이것은 신의 형상이고
대기의 오래도록 존재함이여, 이는 신의 화로서
참 목숨이 근원으로 만물이 여기서 나는도다.
해와 달의 아들은 천신의 충에 있음으로써 비추이고
이로써 원각을 긋고 능히 크게 세상에 내려오니
뭇중생이 그 무리를 이룬다.
원은 일이 되어 무극이고
방은 이가 되어 반극이며
각은 삼이 되어 태극이라.
무릇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이란 천제 한웅에게 주어진 바니
일신은 내려와 충만하사 성은 광명에 통하고
제세이화, 홍익인간함은 이를 신시가 단군조선에 전하신 바이라.
한역은 우사의 관리로부터 나왔다. 때에 복희는 우사가 되어 여섯 가축을 기르게 하였으며 또 신용이 해를 붸아가는 것을 살펴 하루에 열두번 색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이에 한역을 만들었다. 한은 곧 희와 같은 뜻이고 역은 옛날 용자의 본 글자다.
한역의 체는 원이며 용(쓰임)은 방이다. 모양 없음으로부터 실을 알게 되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다. 희역의 체는 방이며 용은 원이자. 모양있는 것에서 그 변화를 아니 이것이 하늘의 체이다. 지금의 역은 서로 체이면서 용이니, 스스로 원이면서 원하고, 스스로 방이면서 방, 스스로 각이면서 각이라. 이것이 하늘의 명이다. 그러나 하늘의 원은 스스로 이것이 하나의 커다란 허무의 공일 뿐이니 어찌 체가 있다 하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본래 체가 없으면서 스물 여덟 가지의 별자리를 체로 한다. 대개 천하의 사물은 모두 이름을 갖고 이름 있는 것은 곧 모두 수를 가진다. 수가 있으면 곧 모두 힘을 가진다. 이미 수가 있다고 말함은 곧 유한과 무한의 틀리는 바 있음이고, 또 힘이 있다고 함은 곧 유형과 무형의 구별이 있음이니, 고로 천하의 사물은 말이 있으면 모두 있는 것이고, 말이 없으면 곧 없는 것이다.
출처 : | 이선생의 블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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