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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임금의 정식 호칭은 太王

영지니 2007. 12. 30. 22:23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임금의 명칭을 왕으로 격하 시켜놓았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고구려는 명백히 건원칭제를 한 황제국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고구려의 시조 추모를 동명성제라 표기하고 있으며, 고구려의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은 각각 영락, 건흥이라는 연호를 제정한 바 있다.

삼국사기가 고구려의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격하시켰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가 황제체제를 갖춘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각국의 역사를 "고구려 본기, "백제 본기", "신라 본기"라 쓰고 있다. 당시 역사서 서술에서 황제국의 역사는 "본기(本紀)"라 하고, 제후국의 역사를 세가(世家)라 했던 점에 비춰볼 때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삼국사기가 삼국의 묘호에 왕을 붙였지만, 삼국의 역사를 세가가 아닌 본기라고 칭함으로써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삼국이 제후국이 아닌 자주적인 종주국이었음을 나타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고구려 임금을 왕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 임금의 정식 명칭은 왕이 아니다.

그렇다고 황제도 아니다.

황제라는 개념 자체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 '정' 때 나온 개념이다.

그러므로 당당한 자주국가인 고구려가 굳이 중국식 왕호인  황제라는 칭호를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고구려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칭호로 자신들이 중국의 황제보다 높다는 것은 나타냈을 것이다.

 

광개토태왕 이후, 고구려는 천하사방을 정복함으로써, 명실공히 고구려 천하관을 수립하였다. 고구려 천하관의 수립은  고구려 중심의 국제질서를 뜻하는 것이다. 고구려 천하관 내에서 고구려는 자신들의 천하관 내에 있는 국가들에게 책봉을 하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당당한 종주국이요, 천자국이었다.

 

그런 고구려가 굳이 중국식 왕호인 황제란 칭호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고구려는 고구려 나름의 제왕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칭호가 바로 太王이다.

광개토태왕릉비를 보면 광개토태왕을 太王, 好太王이라 칭하고 있다.

고구려인 스스로 남긴 기록물이라 할 수 있는 광개토태왕비를 보면 알 수 있듯

고구려 임금의 칭호는 태왕이었다.

그런 광개토태왕을 광개토대왕이라 부르는 것은 사대주의의 발상이라 할 수 있고,

광개토태왕에게 광개토대제 식의 황제 칭호를 붙이는 것은 너무 중국적인 것에 고구려를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개토대왕을 대왕이 아닌 태왕(또는 호태왕), 즉 광개토(호)태왕이라 부르는 것이 바람직 하다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제 칭호를 태왕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황제와 태왕은 동격이지, 누가 높고 낮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황제가 태왕보다 높다고 생각한 이유는 조선시대 이후 사대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만연으로 사대주의가 조선 내에 퍼지는데, 이 때 무조건 중국적인 것을 따라하고, 그들의 문화를 답습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이루어졌다. 그런 영향 때문에 마치 중국적인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중국식 왕호인 황제가 지상 최강의 군주 칭호라 생각하게 된 것이고, 황제의 동격인 태왕이 마치 황제의 제후와 마찬가지인 王이란 호칭이 들어있다고 해서 황제보다 낮다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