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할한국사

후추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

영지니 2007. 12. 30. 22:40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후추를 사용했을까?

 

우리나라는 적어도 고조선 시대 후추 비슷한 향신료를 사용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후추라는 것은 향신료의 일종입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사람되기를 원하자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었다는 것에서 고조선 시대에 후추 또는 후추 비슷한 향신료를 사용한 것으로 어떤 학자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늘은 향신료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3포의 유향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향이란 향료(향신료까지 포함한 넓은 개념)의 일종으로 방향제, 방부제,부스럼이나 복통의 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라 경덕왕 11년(752년)에 도일(渡日,일본을 건넘 즉 일본에 사신을 파견함을 의미)한 신라 사절의 대일매물명세서에 분향료(향료의 일종) 중의 하나인 침향이
포함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9년조(834년) 기사를 보면 침향을 차재(車材, 수레를 만드는 재목(목재))로 쓰는 것을 엄금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아 후추 아니 후추를 포함한 향료는 신라시대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 백제는 저 멀리 동남아시아와 교류를 했는데 동남아시아는 후추의 산지입니다. 그러므로 백제시대였던 삼국시대에는 분명히 후추가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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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


참고로 후추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를 소개하겠습니다.
15세기를 보면 유럽이 동인도항로, 서인도 항로를 개척하는데 그것을 한 이유가 후추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14세기 후추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중동을 지나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그 시대 유럽의 상황을 보면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 때문에 농민의 수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농노(중세 유럽 농민들)들의 생활을 향상시켰죠
또한 곡류의 생산증가로 사람들은 더욱 많은 가축을 키울 수 있었고, 또한 제2차 농업혁명이 전개되어 무거운 쟁기를 가지고 깊은 밭갈이를 하면서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이제 유럽인들은 더 이상 굶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의 고기 요리를 보면 꿀을 발라 구운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후추가 유럽에 전래되면서 후추가 고기의 재료로 들어가자 고기의 맛과 질은 이전보다 더 뛰어났고 한번 후추의 맛을 본 유럽인들은 후추에 매혹되었습니다.

당시 후추는 고기의 맛을 좋게 하였고, 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입냄새를 제거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후추를 선호했습니다.

후추는 당시 고가(高價)로 거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후추가 생산지인 아시아에서 소비지인 유럽에 이르기 까지는 수많은 유통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당시 후추는 12단계의 유통구조를 통해 전파되었는데 중간의 아랍,베네치아 상인들이 이 후추의 유통구조를 통해 중간이익을 많이 챙겼지요

우스갯소리로 당시 후추값은 금 값이었습니다.
후추의 매매는 대개 바람이 없는 건물 내부의 책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상인은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후추를 집어 책상위에 놓았고, 소비자는 후추와 맞먹는 크기의 금으로 후추를 샀습니다.

이와같이 후추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겪는 것을 본 모험가와 유럽 왕실은 인도항로 개척에 열을 올린 것입니다.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