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여근곡(女根谷)-경주 건천읍

영지니 2010. 11. 28. 23:42

≫ 女根谷 ≪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여근곡(女根谷)은 여러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명소(名所)다.

국내에서 그토록 기묘하게 생긴 여근형의 지세(地勢)를 찾아보기도 힘들거니와, 특히 그곳은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3사 (知幾三事)가운데,

백제군사들이 매복한 곳을 음양오행지리(陰陽五行地理)로 판단해내 섬멸했다는, 역사적 실재(實在) 무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층더 흥미를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곳이 풍수 학술상으로 심각한 논란을 야기시킨 진원지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은 여근곡을 과연 명당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성기(性器)신앙을 풍수의 어머니로  모셔야 하는 웃기는 상황까지 벌어질 판인 것이다.

 


성기신앙을 연구하는 어떤 민속학자의 주장인즉, '풍수지리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음양사상의 궁극적 원리가 성(性)에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결국 묘지신앙은 원시사회에서부터 있었던 성력(性力)숭배, 즉 성기신앙으로부터 분화,  발전돼 온 것이며,

특히 묘자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지형 자체가 인간의 양 다리 하체 국부(局部의 형태이고,산줄기의 낙맥(落脈) 철부(凸部)에 터잡은 묘지를 명당으로 여기는 것과 또 묘 앞의 문필봉(文筆峰)을 길상으로 알고 있는 것 등은 모두 성기 내지는 성교(性交)의형태를 상징한 것이 틀림없다' 고 한다.

참으로 아연실색케 하는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양개념은 원래산의 그늘진 기슭과 양지바른 기슭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일종의 지형학적인 용어다. 풍수에서 말하는 양기(陽氣)와 음기(陰氣)도 어디까지나 햇빛의 유무에 따라 대비되는 그같은 자연력(自然力)을 뜻하는 것이지 남녀의 성적기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풍수지리 사신사(四神砂), 즉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라는 것은 본래 사신수(獸)방위 위호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수많은 지리 형국중의 한 유형에 불과한 공알명당 혹은 옥녀개화형(玉女開花形)이라는 지세와는 그 사상적인 차원이 근복적으로 다르다.

더구나 풍수에서는 좌선작국(佐旋作局)이니 우선(右旋)작국이니 하여 청룡, 백호 지맥의 길이가 현저히 차이가 나더라도 얼마든지 결혈(結穴)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만약 좌우지맥을 인체의 양다리로만 여긴다면 그런 경우는 그야말로 병신 다리 속에 터를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문제의 발단이 된 '삼국유사'의 '여근곡'에 관한 기록부터 다시 한번 살펴보자.

'어느 겨울날, 도성(都城) 인근에 있는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난데없이 개구리들이 모여  울어댔다.  

여왕은 즉시 두 명의 각간(角干)에게 2천명의 군사를 주어, 서쪽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에  매복해 있던 백제군사 500명을 섬멸케 하였다.   신하들이 그 지혜를 궁금해 하자 여왕은이르기를 '성난 개구리는 병사(兵士)의 상(像)이요,

 

옥문은 곧 여근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색은 곧 서쪽을 뜻한다.
그러므로 서쪽의 여근곡에 적이 있음을 알았고, 또 남근(男根)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적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기록의 그 어디에도 풍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흰색이 서쪽을 의미한다는 순수한 오행방위지리를 제외하면 거의가 음양론적인 점복(占卜)과  성기신앙 일색이다.  물론 '옥문지' '여근곡' '남근(백제군사)이 여근(여근곡골짜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등등의 표현이 풍수지리 형국론과 성기신앙을 혼동케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은 필자도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자연의 생김새를 어떤 물상(物像)에 비유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풍수형국론이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더구나 고대사회에 보편화돼 있었던 지인교감(地人交感)의 애니미즘적 사고(思考)를 억지로 풍수 기감응론(氣感應論)과 결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여근곡은 애초부터 풍수와는 무관하게 일종의 성기신앙지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뿐이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곳에 대한 이런저런 풍수적인 해석이  덧붙여졌던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여근곡에 대한 오해는 비단 풍수 기원(起源)에 한하지 않는다.
그 오묘한 생김새에 흠뻑 매료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일부 풍수연구자들까지도 그곳을 대단한  명당으로 착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근곡에는 결혈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습한 기운이 배어 있어 양.음택(陽. 陰宅) 모두에 부적합한 곳이다.

여근곡의 풍수 진실은 영천과 경주를 잇는 국도변의 이근곡 식당 부근에서부터 벌써 감지된다.
고개를 들어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 오봉산(五峰山혹은 朱砂山)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그 밑의 골짜기 안에 음문(陰門)을 쏙 빼닮은 지형 하나가 불쑥 솟아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바로, 그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이 '보게 되면 재수가 없다'하여 애써 외면하면서 지나가고, 또한 새로 부임하는 경주부윤들이 그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안강쪽 시치재를 넘는 먼길을 돌아 경주로 들어갔다고 하는, 여근곡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결코 풍수의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국도변에서 여근곡 쪽을 바라보아 그곳으로부터 풍겨나오는자연의 음기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것이 안 느껴지더라도 최소한오봉산 능선이 서쪽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아래의 여근곡 일대는 해가 빨리 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동네 어귀에 큰 못(池)이 있는 원신마을에 이르면 주민들이 흔히 여(女)산, 암산(암컷 산을 뜻함),  소산(소나무가 많은 산을 뜻함)이라 부르는 여근곡의 형상이 훨씬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근곡은 길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배합돼 있어 마치 음문 그 자체를 보는 듯하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는 인체의 골반을 연상케 한다.

예부터 바로 그 여근 골짜기 한복판 밑에서 사시사철 샘물이 솟아나는것을 보고, 사람들이 음기가 새기 때문에 그 마을에 바람난 처녀가 많다는속설을 지어냈다지만, 알고 보면  여근을 잘못 건드림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동티(動土)를 막기위해 조상 대대로 그 일대의 숲을 잘 가꾸고 보호한 결과인지라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음기를 자연 그대로 느끼려 들지는 않고, 자꾸만 그런 형이상학적인 측면으로 비유하려 드니  풍수지리가 의사(擬似)과학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학사(<>鶴寺) 바로 오른쪽,  이른바 질(膣) 입구에 해당하는 부위에 3기(基)의 분묘가 아래위로 나란히 터 잡고 있다.

토심(土深)이 얕은데다 경사마저 가팔라 누가 봐도 결혈처가 아니라는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곳에 한참동안 앉아 있어 보라.  만약에 앞쪽으로 바라보이는 저수지와 들판,그리고 안대(案對)를  이루는 구미산(龜尾山)줄기에 정신을 빼앗긴다면 그 답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거기에서는 여근곡이 뿜어내는 눅눅한 습기의 음기를 느껴야 한다. 자연의 음기를 그같이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 바로 여근곡 풍수답사의 궁극적인 목표이자결실이기 때문이다.

여근곡에는 풍수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많은 구경거리들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근지세의 음핵에 해당하는 자리에 생수를(?) 받아 마시는 시설을 해놓았지만 막상 물맛을 보면 그저 그런 정도다.  유학사 마당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신석(腎石 혹은 男根石) 또한 이채롭다.

그것은 여근곡의 드센 음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치한 일종의풍수염승물(厭勝物)이다.
비록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의 음기 대신에 성적인 음기를 먼저 생각하겠끔 현혹한다는 결점은 있지만, 우리나라 전통 풍수에서 상투적으로 사용해 오는 방법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이해 못해줄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절 마당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수백년 된 단풍나무는 분명히문제가 있다.
마당을 넓히면서 차마 없애지 못하고 원래 있던 그대로 놔둔것까지는 좋은데, 하필이면 신축한 법당의 좌향을 그 나무와 일직선 되게 맞춰서 불상의 시야를 가리게 할 게 뭐란 말인가.

어차피 여근곡의 가장자리 암반을 부숴가면서까지 터를 닦아 법당과 요사채를 앉힐 요량이었다면  마땅히 좌향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말이다.  어쨌든 여근곡은 이미 예전처럼 금역(禁域)으로 신성시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풍수상으로 허화(虛花)인 것이 분명하지만 공교롭게도 풍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있다. 바로 그런 점이 어쩌면 우리들로 하여금 좀더 참된 풍수를 갈구하게만드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