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寒食때만 되면 각각의 문중들은 조상의 묘소 관리에 많은 신경이 쓰이게 된다 묘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보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봄·가을로 사초와 벌초를 하느라 친인척을 소집하지만, 참석하는 사람은 노인들 몇몇일 뿐이다 해가 갈수록 점점 묘의 상태는 부실해 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집안 어른의 어깨는 심리적 중압감에 천근만근이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묘를 정리하거나 한곳으로 이장하는 경우가 많다 똑 같은 걱정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당신 살아생전에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오래된 묘를 파보게 되면 대부분 백골이 흔적도 없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이럴 경우 후손들은 흔적도 없는 묘를 그토록 오랜 세월 관리하여 왔던가 하는 마음에, 극심한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한쪽에서는 이왕 이렇게 된 것 흙으로 돌아가도록 흩뿌리고 묘를 없애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조상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차마 그럴 수 없으니 흙이라도 가져다 묘를 쓰자고 한다 아마 이러한 갈등은 비단 한두 집만의 고충이 아닐 것이다 다음은 아산 어느 명문가의 종손으로 교장까지 지내신 매우 보수적인 한 집안의 실제 사례를 소개해 보겠다 교장선생님의 연세는 78세로 당신이 직접 책임져야할 묘는 8代祖까지 18位이시며, 묘는 15基이다. 그것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이다 수십 년간 관리해 오다가 차츰 연세가 많아져 힘이 부치자, 오랜 고민 끝에 曾祖이상 14위·12기를 한곳으로 이장하기로 하신다 그러나 막상 파묘해 보니 14기 중 백골이 남은 것은 단 3곳뿐이며, 나머지는 흔적도 없는 상태이다 백골이 있는 것도 거의 소골된 상태이므로 부피로 따지면 작은 약상자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백골이 없는 경우 검은 흙만이라도 옮겨올 수뿐이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신 교장선생님····· 고뇌 끝에 총 14분의 조상을 3기의 묘로 축소하기로 결심한다. 즉 (8대·7대), (6대·5대), (고조·증조)식으로 부모와 자식을 묘소 한곳에 모시기로 한 것이다 광중 속에 한줌의 흙과 망인의 지석을 함께 묻는 것이므로 여유 공간은 충분한 것이다 이때 작업의 妙를 살린다면 한곳에 2대 뿐 아니라 3대, 4대 까지도 族葬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이다 작업 후 보수적인 어른들과 가족들 모두 대단히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이튿날의 작업은 합장된 조부모님의 묘소와 부모님의 묘소 3곳에 억센 띠풀이 많이 자라므로 잔디를 새로 입히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참에 당신의 신후지지도 인근의 양지바른 곳에 마련해 두기로 한다 이때 뜻밖의 난감한 일이 발생하는데····· 잔디를 새로 심고자 묘소의 잔디를 걷어내고 보니 봉분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상태이며, 흙에서는 매우 역겨운 냄새가 배어 나온다 경험 많은 일꾼은 저 깊은 땅속에 물이 가득 찼음을 직감한다 교장선생님 이 상황에서 신속하게 판단하시기를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를 당신의 신후지지를 조성하는 곳에 모시기로 하고 破墓부터 한다
결국 4분 모두 우려했던 대로 물이 가득하였으며, 많은 부분 소골된 상태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신 노인은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시며 이제껏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자학하고 계신다 유골을 수습하는 동안 이곳의 묘소가 물이 차게 된 이유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다 물의 상태로 보아 빗물이 스며 들은 것인데, 조부모님의 묘를 쓸 당시 광중 크기를 측정해 보니 약 270✕240으로 다소 크게 조성되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후에 한 분을 같이 합장하면서 광중이 넓혀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 후 일반적인 둥그런 묘에 4각형의 묘테석(둘레석, 사구석)을 설치하였는데, 그 석물의 크기가 210✕200에 불과하였다 즉 광중의 크기보다 위를 덮은 봉분의 크기가 더욱 작았던 것이다 당연히 빗물이 스며들게 되는 것이고 묘테석 주변의 땅은 점점 침하되는 현상이 생겼던 것이다 묘에 석물을 설치하는 것은 깨끗해 보이며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위와 같은 위험이 따르게 된다. 특히 기존의 묘에 새로이 둘레석을 설치할 때는 이전 광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므로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4각의 둘레석 묘소 한편 인근에다 작업하던 당신의 신후지지는 합장묘로서 강회를 이용하여 두개의 내광을 짓고 있었는데, 애초에 계획하였던 것 보다 폭만 약간 크게 하기로 하였다 내광 한곳에 두 분씩 4분을 함께 모시기로 한 것이다 ····· 비록 당신의 신후지지는 다시 구해야 하지만, 늦게나마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을 물속에서 건져 드렸다는 생각에 노인의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하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緬禮요, 진정한 爲先일 것이다
새로 조성한 묘의 사진 결론적으로 결코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18위·15기의 묘를 4기로 압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명한 방법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조상의 수많은 묘를 후손들에게 대물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백골이 성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일 것이지만, 특별한 땅이 아니라면 거의 소골되었다고 보았을 때 火葬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키고 한정된 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조상의 묘를 관리하기도 쉽다면, 한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