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근대화 미명하에 대부분 파괴/전차건설빙자 동서남대문 성곽일부 부숴/북문,나라서 기청기우제 등 지낼때만 열어 4대문은 6백년 역사속에서 수많은 희비의 곡절을 겪어야 했다.
임진왜란때 자칫 왜군의 손에 불타 버릴 뻔했는가 하면 병자호란때에는 청군에게 넘겨져 파수(파수)를 당하기도 했다. 더욱이 일제 침략자들은 도시의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대부분의 도성과 성문을 헐어버렸다.
1899년 일제는 서울시내에 전차를 개통하면서 동대문과 남대문,서대문 주변의 성곽 일부분을 헐고 교통로로 활용했다. 이후 일제는 성곽은 물론 돈의문(서대문) 소의문(서소문) 혜화문(동소문)등을 잇따라 파괴했으며,
관리소홀로 광희문(남소문)과 숙정문(북문)까지 붕괴됨에 따라 도성과 연결된 8문중 숭례문(남대문) 흥인문(동대문) 창의문(북소문)등 3개 문만 겨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태조7년에 창건된 남대문은 그 지대가 낮아 볼품이 없는데다 풍수지리설에도 어긋난다 하여 세종29년 지대를 돋우고 그 위에 새로 석문과 문루를 건축했다.
그후 30여년이 지난 성종10년 남대문이 기울어져 또 다시 개축해야 했다.그러나 남대문은 구한말에 이르러 그 자취마저 송두리째 없어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융희2년(1908),통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소와(소화)의 아버지이자 당시 일본의 황태자였던 다이쇼(대정)를 조선에 초청했다.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외무대신 이하영을 찾아가 『남대문을 헐어야겠다』고 말했다.깜짝 놀란 이하영이 『남대문은 서울의 관문인데 무슨 말이냐』며 반발하자 하야시는 『본국 황태자전하가 곧 한성을 방문하는데 전하께서 그 냄새나는 조선의 대문을 걸어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일본은 남대문을 헐겠다는 요구가 우리민족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남대문 서쪽 성벽을 헐어내고 큰 길을 내 일본 황태자의 마차를 통과시켰다.이듬해에는 동쪽의 성벽마저 헐어버렸다.
동대문은 불행히도 왜적의 입성문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임진왜란때 부산에 상륙,상주 문경 충주등을 거쳐 중로로 서울을 향해 밀고 올라온 왜장 고니시(소서행장) 휘하의 무리들은 선조25년 5월 이렇다할 저항도 받지않고 다른 부대보다 한발 앞서 입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선뜻 성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문밖에서 한참동안 머뭇거렸다.동대문을 껴안듯 둘러싸고 있는 옹성때문에 성안의 분위기를 엿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동대문은 지대가 낮은데다 지기를 돋워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잦은 개축이 있었다.
창건 50여년이 지난 문종1년과 단종1년에 개축이 있었으며,이후 4백여년을 지내오다 대원군 집정기인 고종5년에 대대적인 중건을 단행했다. 문을 열어두면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해서 일찍부터 폐문됐던 비운의 문 숙정문(북문)은 문의 소임인 교통면에서 제구실을 거의 하지 못했다.
문을 닫아두는 것이 도성 방위에도 오히려 유리했으므로 이 문은 도성 4대문의 하나라는 명분만 지녔던 셈이다. 그렇다고 북문이 항상 닫혀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북문은 다른 도성문과 달리 영제의 제단이었다.
그해에 장마가 지면 나라에서 비 그치기를 기원하는 영제,곧 기청제를 이 문에서 거행했다.반대로 그해에 가뭄이 극심하면 북문을 활짝 열어놓는 대신 남대문을 닫고 기우제를 지냈다. 예종때부터 시작된 이 풍습은 북쪽은 음이고 남쪽은 양이어서 양을 억누르고 음을 부추겨야 비가 온다는 음양오행설에 따른 것이라 한다.
서대문에는 망국의 한이 서려있다. 민비시해사건,즉 을미사변의 앞잡이들이 도성으로 들어온 것은 서대문을 통해서였다.일본공사 미우라(삼포오루)의 사주를 받은 왜인배들은 1895년 8월20일 새벽 대원군의 거처인 공덕리 아소정(아소정)에 숨어있다가 파루소리와 함께 서대문이 열리자 이 문을 통해 곧바로 경복궁에 침입,민비를 시해했다.
서대문은 결국 1925년 일제의 도시계획,소위 시구역개수계획이란 명목아래 철거돼 지금은 그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게됐다.<김순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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