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風이란? 어느 시골마을의 우환>
살풍이란 계곡풍, 질풍, 음풍, 또는 골목바람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방위에 관계없이 어느 일정한 방향에서 밤낮으로 지속적으로 바람을 맞게 되면 사람은 물론, 가축이나 초목, 땅속의 백골조차도 풍해를 견디지 못하고 무력해 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이 넓은 강은 물의 흐름이 완만해서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지만, 이것이 좁은 여울을 지나게 되면 물의 흐름이 급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넓은 들판에서 부는 바람은 고요하고 유연하지만, 산의 좁은 계곡이나 골목을 만나게 되면 갑작스럽게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다른 곳보다 바람의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주위의 열을 빼앗아가서 시원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지하도를 오르내릴 때 느끼는 바람과 같아서 인체에 매우 해로운 바람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살풍인 것으로 장시간 영향을 받게 되면 인간과 가축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게 극히 흉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바람의 흉한 정도를 그림으로 비교해 보자.
요즈음 들어 무분별하게 전원주택이나 별장 혹은 음식점등을 골짜기에 짓는 일이 많아 졌다. 열목어와 산천어가 사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라고 점점 계곡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나 물길은 곧 바람의 통로인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곳은 여름철이면 상습적으로 물난리가 되풀이되는 곳이기도 하다
古云 : 若居山谷, 最怕凹風
(만약 산골짜기에 산다면 가장 두려운 것이 계곡 바람이다)
古云 : 平洋不怕, 入風吹 (평지에서 부는 바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
바닷가 가까운 어느 마을의 실제 있는 일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형의 평범한 시골마을에 A, B 두 마을이 이웃하고 있다
자연적인 지세에 따라 A마을은 동남향으로 형성되었고, B마을은 거의 북향에 가까운 곳이다
A마을의 前이장(67세)이 말씀하기를, 유독 B마을의 남자들은 60을 넘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시름시름 앓게 되어 병원에 가게 되면 단순히 신경성질환이라 하고, 가축들의 발육조차도 시원치가 않다고 한다.
그리고 B마을의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거친 편이라고 부연설명을 해 주신다
“그럼 이장님께서는 그러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이 무엇을 알겠소만, 우리 집에서 저곳까지는 약 300미터
밖에 안 되는데, 이른 아침에 해를 안고 B마을을 가게 되면 그곳은 아직까지도
어둑어둑합니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편이지요.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소.”
이러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풍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을의 입지조건이 매우 꺼림칙해 보인다.
즉 A마을은 마을 뒤쪽에 산을 기대고 있어서 背山臨水라는 기본적인 원칙에 맞게 되었으나, B마을은 양쪽봉우리의 중간지점인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뒤편이 허전하게 뚫려 있다
당연히 B마을은 계곡풍이 몰아치는 정확한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니, 등 뒤의 차고 매서운 바람에 오랫동안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좋고 나쁨을 즉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이하게 생각을 한 것이다
마을의 어느 집에서는 뒤편에 인위적으로 대나무 숲을 무성하게 조성한 것이 보인다.
아마도 등 뒤의 바람이 불길하다고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노력이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앞에서 말한 불안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며, 어쩌면 10년 20년 후에는 마을 전체의 존립자체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곳의 문제의 해결은 마을과 집을 옮기던가, 그렇지 않으면 마을 뒤편으로 더욱 울창한 방풍림을 조성하여 바람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방법 외에는 없다
특히 이러한 지세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얼핏 보기에는 마을의 입지가 계곡풍이 치는 지점이 아니고 뒤편의 한 봉우리를 의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마을이 형성될 시점에는 당연히 그러한 생각으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뒷산의 向背와 眞僞, 그리고 바람의 이동경로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아래의 그림처럼 바람이 (ㄱ)으로 부는 것이 아니고, (ㄴ)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 점을 간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을의 지형지세를 세밀하게 관찰하면, 애초에 골짜기의 물이 흘렀던 높낮이를
유추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들도 예외는 아니며, 전국 도처에서 무수히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집의 선택에도 풍수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절제한 도시계획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도로를 만든다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허리를 무 자르듯 싹둑 끊어 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교통이 나아졌다고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좁은 곳으로 많은 바람이 통과하면서, 마을에 찬바람을 막아주던 산이 오히려 살풍의 통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부터는 마을의 우환이 시작된다.
우연한 사고가 이어지고, 교통사고가 잦아지며, 정신질환자가 늘어난다. 이제까지 멀쩡하던 가축들은 원인모를 질병으로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행정당국에서는 역학 조사반을 파견하지만 과학적인 규명이 안 된다고 물러나고, 마을사람들은 무당을 불러 굿을 해보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점점 마을의 인심은 각박하고 흉폭해 진다
왠지 모르는 불안감과 함께 편안하고 정겹던 나의 고향마을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다
물과 바람은 모두가 흐름의 성질을 갖고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자 하고, 바람 또한 허한 곳을 만나게 되면 일시적으로 많은 바람이 몰리면서 안정되었던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환경과 인본주의 사상은 저 멀리 퇴조해가고 있다
지식과 과학의 논리 앞에, 지혜와 경험의 이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