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농법 - 벼농사와 물관리법
벼농사를 짓는 방식에는 크게 밭에서 기르는 것과 논에서 기르는 것 2가지가 있다.
옛날로 갈수록 찹쌀을 비롯한 밭벼를 재배하는 예가 많았으나 관개수리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예전에는 밭에서 재배하던 벼농사도 제법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벼 하면 논에서 기르는 것이 된 듯하다.
논벼, 즉 무논에 심는 수도(水稻)가 주종을 이룬 것이다.
수도재배 방식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크게 보아 직파법과 이앙법이 있었다.
직파법에는 무논에 파종하는 법과 마른논에 파종하는 건파법이 있고, 이앙법 역시 못자리를 무논에 하는 물못자리 방식과 마른논에 하는 건앙법(乾秧法)이 있었다.
직파법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무논에 곧바로 씨앗을 파종하여 기르는 수전직파를 가리키며, 이앙법은 모내기법으로 일정 기간 모를 1차 길러서 본답에 옮겨심는 것이다.
오늘날 주로 행하는 이앙법은 조선시대 후기 17~18세기부터 수도재배의 핵심적인 농법이 되었다.
이앙법 이전에는 직파법이 주를 이루었으며 그 역사는 이앙법보다 훨씬 길다.
건파법 역시 직파의 한 방법이지만 『농사직설』에서 이미 가뭄 때 행하던 것이라 한 것으로 보아 벼를 재배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행하지 않았던것 같다.
『농사직설』에 전하는 건파법은 밭에 하는 것과 같이 마른논에다 파종하긴 하지만 장마철이면 물을 관개하여 무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것으로가물 때 하던 방식이다.
그리고 건앙법은 물못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때 하던 것으로 이 역시 가뭄 때 하던 방식이다.
그러므로 건파법과 건앙법은 수전직파나 수전이앙법의 보완책으로 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건파법의 경우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상용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밭농사와 관련하여 건파법 역시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렇듯 다양한 벼 재배방식은 기후상태, 농기구, 노동력 동원, 관개기술 등의 물 관리방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데, 특히 이앙법, 즉 모내기법이 가장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는 이앙법을 중심으로 벼 재배방식과 물 관리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볍씨 담그기
벼농사의 시작은 볍씨 담그기(浸種)에서부터이다. 한반도 중부지역의 경우 볍씨 담그는 시기는 조팝나무 꽃필 무렵이며 절기로는 청명 무렵이 된다.
조팝나무 꽃은 아주 뽀얗게 피는데 야산과 들에 많이 피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어 절기를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표식이 된다.
조팝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는 대략 서리가 멎은 시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벼농사를 준비해도 되는 것으로 농민들은 인식하였다.
못자리에 볍씨를 파종하기 전에 볍씨는 먼저 물에 담가서 부력에 의해 물에 뜨는 쭉정이나 덜 여문 씨앗은 골라내어 씨앗의 발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는 볍씨가 잘 발아하도록 화학약품을 섞어 소독을 하는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침종방법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겨울에 눈이 녹은 물(雪水)을 따로 받아두었다가 볍씨를 소독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이다.
그런 방법은 이미 『농사직설』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겨울이 되면 항아리 또는 구유를 땅속에 묻어서 얼지 않게 해놓고 섣달이 되면 눈을 많이 거둬 담아서 날개로 두텁게 덮어 두었다가 씨 뿌릴 때가 되거든 종자를 그 속에 담갔다가 건져내어서 볕에 말리는데, 두 번을 이와 같이 한다” 하였으며, “옛 글에 말하기를 눈은 오곡의 정기라고 했다”라는 주석까지 달고 있다.
그리고 섣달그믐에 눈 녹인 물을 이용해 볍씨를 담그면 해충이 없다는 오래된 경험 지식이 촌로들에 의해 실제로 전해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볍씨를 소독하는 대신에 눈 녹인 물을 실제로 이용해 보는 것도 친환경농업의 좋은 실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볍씨를 담그는 과정은 종자를 엄선하고 못자리를 하기 전에 일부 싹을 틔우는 과정이 된다.
많이 알려진 방법은 먼저 계란이 가라앉지 않을 농도의 소금물에다가 볍씨를 담가 물 위에 뜨는 쭉정이는 건져내고 맹물로 옮겨 소금기를 없애는 것이다.
그 후 물은 아침저녁으로 갈아주고, 2~3일 정도 싹을 틔운다. 물의 온도에 따라 침종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후 못자리를 하기 하루 전 자루나 가마니 같은 것에 건져 물이 잘 빠지도록 한다. 그렇다고 말리는 것은 아니다.
물을 빼어 볍씨를 살짝 말리는 정도인데 못자리를 할 때 볍씨가 잘 뿌려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젖어 있을 경우 손에 붙거나 볍씨들끼리 붙어서 골고루 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2) 못자리 만들기와 모 키우기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은 시기상으로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마련하는 기간 전체가 거의 일주일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
개 못자리를 마련하는 시기는 절기상 곡우 무렵이다.
농민들은 ‘조팝나무 하얗게 꽃피면 못자리할 때다’라고 하여 조팝나무 꽃이 필 무렵에 볍씨를 담금과 동시에 못자리 준비에 들어간다.
못자리 준비는 벼농사에서 최고의 기술이 집결된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자리를 잘못하면 한 해 농사를 시작부터 망치기 때문이다.
특히 육묘에 필요한 물 관리는 어느 시기보다도 까다롭다.
그래서 예로부터 ‘못자리반농사(苗垈半作)’라고 하여 못자리가 그해 농사의 반이 된다고 하였다.
못자리의 물 관리 기술은 수도재배의 모든 과정이 응집되어 있는데, 못자리 관리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다양한 못자리법이 개발되어왔다.
물을 전혀 대지 않는 마른 못자리 방식이나 부직포를 이용하는 방식 혹은 공장식 모 재배법 등 새로운 기술과 방법들이 요즘에 개발되어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물을 대어서 못자리를 만들고, 육모상자를 이용한 모판과 비닐을 덮는 이른바 ‘물 못자리’라고 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못자리 방식에 해당한다.
못자리는 보통 이곳저곳을 해마다 옮기면서 하지 않고 ‘모판배미’라고 하는 정해진 곳에다가 하였다.
모의 생육에 필요한 물을 어떻게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못자리의 주요한 관건이 되는데, 그래서 못자리는 그 위치 선정에서부터 까다롭다.
우선 물의 공급과 배수의 용이성, 본답과의 거리, 바람의 방향, 일조 조건, 관리의 편의성, 토질 등등을 두루 고려한다.
본답과 가까울수록 모내기할 때 모를 내기 편하며, 못자리는 수시로 살펴야 하기에 가급적 집에서 가까울수록 편리하다. 그리고 바람이 적고 기온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이 좋다.
그리고 토질이 좋을수록 발아와 모의 성장 또한 좋을 것이다.
이런 조건을 두루 고려하여 해마다 못자리를 준비하던 곳이 바로 모판배미가 된다.
못자리의 갈이와 써레질은 특히 곱게 하여 흙을 콩죽처럼 삶는다.
그것은 파종 이후에 땅이 수분을 골고루 흡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흙덩이가 있으면 그곳은 수분이 상대적으로 잘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못자리의 수평도 잘 잡아야 하는데, 못자리에 급수했을 때 못자리 전면에 물이 골고루 퍼짐과 동시에 빨리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수평잡기는 어떤 도구나 수단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 그 자체를 이용한다.
물을 댄 수위를 통해 쉽게 못자리의 높낮이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준비한 못자리는 하루 이틀 정도 논바닥을 굳힌 다음에 모판을 설치한다.
흙이 약간 굳어야 모판 설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모판은 오늘날 흔히 포트(pot)라고 하는 플라스틱 육모상자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앙기를 이용하여 모내기를 할 경우 모판에 볍씨를 훨씬 배게 뿌려야 한다. 그
래야 이앙기에 의한 적정 포기수를 맞추기 쉽다.
그리고 이앙기를 사용할 경우 모가 한 뼘 이하의 어린 상태에서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역시 배게 뿌려야 한다.
육모상자를 이용할 경우 거의 바닥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볍씨를 뿌린다.
육모상자를 이용할 경우, 모의 성장과 향후 이앙을 고려하여 토양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모판흙으로 가장 적절한 토양은 붉은 참흙이다. 굳이 참흙이 아니라도 차진 흙이 좋다.
모판흙이 차져야 하는 이유는,
첫째 씨나락을 붓고 못자리에 물을 댈 때 삼투압 작용을 통해 모판의 흙이 물을 먹게 되는데, 흙이 메진 경우 물을 빨아올리는 힘이 약해 발아 상태가 고르지 않을 우려가 있다.
두 번째는 모내기를 할 때 모의 뿌리들이 서로 얽혀서 모춤이 잘 형성되어야 하는데, 메진 흙으로 모판을 하면 모춤이 만들어지지 않고 모가 낱낱이 떨어져 좋지 않다.
물론 이앙기가 아닌 손모내기를 한다면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차진 흙일수록 손으로 모춤을 찌기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모판흙의 토양은 어떤 방식의 모내기를 하는가 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다음으로 못자리의 물 관리법은 대개 세 단계로 나뉜다.
모판을 바로 설치했을 당시와 볍씨가 발아하여 모가 아주 어린 상태, 그리고 그 이후로 나누어진다.
먼저 못자리를 처음 만들 때는 특히 주의를 요한다.
그 첫째가 수평작업이다.
못자리의 수평이 맞지 않을 경우 낮은 곳은 모판이 물에 잠기지만 높은 곳은 물기가 전해지지 않아 볍씨의 발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모판의 수평작업은 더욱 신중하고 정밀해야 한다.
모판 간의 높이 차이는 1~2센티미터 미만으로 맞추어야 한다. 수평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물관리가 쉬워진다.
두 번째는 못자리에 물을 쉽게 댈 수 있도록 보조 물 저장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못자리에 실제로 필요한 물은 사실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필요에 따라 곧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물은 물론이고 관개와 배수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못자리의 위치와 물 관리체계를 고려하여 못자리를 선정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못자리를 처음 설치한 경우 비닐하우스까지를 덮어 못자리 설치가 완전히 끝낸 상태에서 물을 댄다.
먼저 물을 댄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그만큼 작업의 불편이 따른다.
물을 대게 되면 모판의 흙은 마른 상태에서 주위의 습기가 흙의 삼투압에 의해 젖기 시작한다.
모판의 흙이 모두 젖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못자리의 물을 빼기 시작한다.
물이 모판의 볍씨에까지 차 있을 경우 발아는 잘 되지 않는다.
공기와의 접촉이 없기 때문이다.
못자리를 처음설치하였을 때나 이후 물을 댈 때, 물을 대는 방식은 급히 대었다가 급히 빼는 식이어야 한다.
이를 두고 시골 어른들께서는 물을 ‘확(갑작스레)! 올렸다가, 확! 빼야 한다’라고 한다.
그래야 볍씨의 발아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못자리를 만들 때 수평작업을 했더라도 완벽한 수평작업은 어렵기 때문에 모판을 설치할 때 다시 수평을 맞추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더라도 특정 모판의 부위에는 습기가 전달되지 않는 곳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때는 수위를 잠시 높여 마른 곳이 없도록 한 다음 다시 물을 뺀다.
이렇듯 못자리의 물 관리는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거의 매일 못자리를 살펴 발아와 성장 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적합한 물 관리를 해야 한다.
모판을 처음 설치했을 때는 ‘물을 가득 싣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만수가 되도록 물을 깊게 댄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모판이 충분한 습기를 머금을 수 있다.
모판이 습기를 충분히 먹은 것을 확인하였으면 즉시 물을 뺀다.
수분만 유지하게 한 상태에서 볍씨는 3~4일 후에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금방 싹이 튼 모는 바늘처럼 아주 가는 상태이다.
바늘처럼 아주 어리고 가는 상태의 유묘(乳苗)라고 하여 바늘모라고 한다.
이러한 바늘모 상태에서 물 관리는 주의를 필요로 하는데, 만일 물을 깊이 대면 ‘바늘모’ 상태의 연약한 모가 녹아버린다. 아주 어린 상태에서 수분이 많으면 비닐 속의 열기로 인해 싹이 쉽게 물러버리거나 웃자라서 튼튼한 모를 키울 수 없다.
그래서 이때는 그저 ‘복골’에 물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정도로만 물을 대면 충분하다.
복골은 못자리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통로로서 모판이 놓이지 않는 고랑이라 ‘헛골’ 혹은 ‘놀골’이라고도 한다.
그 후 바늘 같은 모가 자라서 손가락 길이만큼 되었을 때 다시 물을 충분히 댄다.
그때쯤이면 기온도 점차 더워지고 모도 자라서 충분한 물 공급이 필요하다.
대개 기온에 따라 물대기를 조정한다.
이후 치묘(稚苗), 즉 어린모 단계에서 물 관리법은 언제 모내기를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본답의 물 사정이나 노동력 동원 등을 고려하여 곧 모내기를 할 것 같으면 충분한 물을 공급해 모를 ‘솟되게 키우고(성장이 빠르도록 키우고)’, 그러지 않고 모내기를 늦게 한다면 물의 공급도 가급적 적게 하여 모를 ‘밧되게 키워야 한다(웃자람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성장 수준에 못 미치게 키우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빨리 키워 모내기를 하려면 충분히 물을 대야 하는 것이고, 그러지 않고 모내기를 늦게 하려면 모의 성장도 그만큼 늦추어야 하기 때문에 물 공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냉해를 입을 것 같으면 물을 깊게 대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하며, 또 기온이 높아져서 못자리의 모가 상할 것 같아도 역시 물을 깊게 대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3) 모내기를 위한 준비
모내기의 적기는 찔레꽃 필 무렵이다. 찔레꽃은 양력 5월 중순경에 피기 시작하여 6월 초순까지 핀다.
찔레꽃 필 때가 모내기의 적기이기에 예로부터 시골에서는 ‘찔레꽃이 세 번 비 맞으면 풍년 든다’라고들 했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 동안 세 번 씩이나 비를 맞을 정도로 모내기철에 비가 자주 내리면 벼농사에 필요한 물이 충분하기에 풍년이 든다고 본 것이다.
이 시기가 절기로 보면 소만 무렵이 되며, 이때쯤이면 산의 갈나무(떡갈나무)가 손바닥만 하게 자란다.
요즘은 화학비료가 흔해 갈나무나 칡넝쿨을 걷어서 거름으로 하는 예가 없지만 화학비료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갈잎과 순을 야산에서 베어다가 작두로 잘라 논에 펴고 써레질을 하여 밑거름으로 하였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이렇게 갈나무를 해다가 넣고 삶는 것을 ‘건성기’라고 한다.
농사가 적은 농가에서는 두 번씩 건성기를 하고 농사가 많은 농가는 한 번 건성기를 한 후 삶아서 모내기를 했다. 건성기는 비료가 귀하던 시절 밑거름의 일종으로 본답의 주요한 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건성기를 많이 한 논은 풀이 더 돋는다고도 한다.
풀거름(草糞)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오늘날 이 또한 한번쯤 실험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모내기를 위한 본답의 준비는 갈이와 써레질, 논둑을 새로 매는 논둑가래질, 뒷도구 치기 등이 있다.
모내기 작업을 하기 전에 그 준비로서 가장 주요한 일은 써레질이다.
써레질은 갈아놓았던 흙덩이를 부수는 쇄토작업과 본답을 수평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써레질을 함으로써 논은 물빠짐이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물이 부족한 논일수록 가급적 빨리 써레질을 하여 논을 삶아놓는 것이 물의 낭비를 줄이는 일이 된다.
그래서 촌로들은 써레질을 해두어야 ‘물이 질기다’(물이 오래간다)고 한다.
써레질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곱써레질이고, 둘째가 장써레질이다. 전자를 ‘곱썬다’ 혹은 ‘곱써레질한다’라고 하고, 후자를 ‘장썬다’ 혹은 ‘장써레질한다’라고 한다.
곱써레질은 중복하여 거듭 써레질을 한다는 의미로, ‘곱씹다’는 의미와 통한다.
장써레질은 긴 방향으로 써레질을 한다는 의미로 ‘長’의 한자음을 딴 말이다.
곱써레질을 하는 방식은 논의 앞뒤, 즉 논둑과 그 반대쪽을 오가면서 써레질을 하는 것으로 시계방향의 나선형을 그리면서 나아간다.
대신 장써레질은 좌우의 장방형을 오가면서 써레질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곱써레질은 흙덩이를 부수어 부드럽게 함과 동시에 논 앞뒤의 수평을 일차적으로 맞추는 것이고, 장써레질은 장방형의 좌우 수평을 맞추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논의 수평을 맞추면서 써레질을 제대로 하는 방법은 곱써레질을 먼저 하고 나중에 마무리작업으로 장써레질을 하는 것이다.
곱써레질을 먼저 하는 이유는 곱써레질은 나선형 방향으로 곱썰기 때문에 써레질의 일차적인 목적인 쇄토작업이 장써레질보다 훨씬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장써레질은 곱써레질보다는 쇄토작업이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지고 논의 수평을 잡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래서 남의 농기계(트랙터나 경운기)와 일손을 빌려 써레질을 하는 농가에서는 곱써레질을 잘하는 일꾼을 선호한다.
적절한 곱써레질과 장써레질을 통해 논은 앞뒤 좌우로 수평이 맞게 되고 콩죽처럼 되어 자연누수를 차단하게 된다.
써래질의 종류
써레질로 논을 삶아 모내기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논물을 관리하는 방식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논물을 많이 대면 물이 많아 써레질하기는 쉽다.
그러나 수위가 깊어 논바닥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수평을 잡기가 어렵다.
논의 수평을 잘못 잡으면 나중에 모를 심은 후 논물관리가 어렵다.
반대로 물을 적게 대면 써레질을 하는 데는 다소 힘이 든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흙덩이들이 잘 으깨지지 않아서 써레질에 힘이 든다.
하지만 논바닥의 수평을 잡는 작업은 용이하다.
적은 양의 물로 수평을 잡기 때문에 논바닥이 쉽게 드러나서 어디가 높고 낮은지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써레질에 적절한 논물 양은 ‘자박하게 대는’ 것이 필요하다.
자박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느낌이 오지 않지만 논흙의 묽기를 너무 질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논을 써레질하기 전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논둑가래질이다.
이는 다른 말로 ‘논두렁뜨기’ 혹은 ‘논두렁하기’라고도 한다.
간략히 논둑을 새로 수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목적은 물 빠짐을 줄이기 위해 논둑을 논흙으로 새로 만드는 것인데, 논흙과 논물을 끼얹어가면서 삽으로 맥질하듯 한다. 이 일은 무척 힘이 드는 것으로 예전에는 서너 명이서 가래질로 하였기 때문에 논둑가래질이라고 한다.
특히 논둑 안쪽은 일일이 발로 밟아 가면서 땅을 다져 물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논둑을 정리해두면 진흙이 말라서 논둑이 맥질한 벽처럼 말끔하고 물빠짐도 적으며 풀도 덜 난다.
이와 더불어 논 뒤쪽에서 찬물이 나는 산간지역의 논은 찬물돌림도랑인 뒷도구도 매어 놓아야 한다.
이후 뒷도구는 큰비가 오거나 하면 수시로 치고 또 새로 매기를 거듭한다.
이는 향후 관개와 배수 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모내기를 하기 전에 준비해두어야 한다.
써레질을 마친 논은2~3일 논을 굳힌 다음 모내기를 한다.
금방 써레질을 한 논은 흙이 물러서 모가 제대로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들 벼는 모내기만 끝내면 큰일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제초제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관행농법에서나 그렇다.
논매기를 통해 제초를 하던 전통 사회에서는 아직 쌀밥을 먹기까지는 지난한 일들이 무수히 남아 있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김매기에서부터 수확까지의 논물 관리법을 살펴보자.
4) 논매기와 물 걸러 대기
모내기를 끝내자마자 산골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뒷도구(뒷도랑, 찬물도랑)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논 뒤쪽에서 나는 찬물이 본답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이 뒷도구는 논 뒤쪽으로 설치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문질러 가면서 매기에‘손도구 맨다’라고도 한다.
이렇게 뒷도구를 맨 이후에 큰비만 오면 다시 이 일을 반복한다.
비가 오면 논둑의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 도랑을 메우기 때문이다.
만일 뒷도구를 치지 않아 찬물이 본답으로 들어가면 모의 생육에 좋지 않아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수시로 논 뒤쪽의 벼가 어떻게 자라는지 눈여겨 살핀다.
만일 다른 곳보다 잘 자라지 않았다면 찬물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핀다.
전통적으로 논매기는 모를 내고 한 달 정도 뒤부터 적으면 2회, 많으면 4회까지 했다.
논매기의 시기와 횟수의 차이는 토질과 잡초의 정도, 그리고 노동력 동원 능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대개 산간 지역일수록 논매기의 횟수가 적고, 저지대 평야 지역일수록 많다.
저지대 평야 지역일수록 사질토가 많아 물이 잘 빠지기에 잡초도 더 무성한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논마다 사정은 다르나 아이매기(초벌매기)는 옮겨 심은 모가 사름(뿌리를 완전히 내려 생생한 상태)이 되고 지심(풀)이 서서히 돋기 시작할 무렵에 한다.
하지만 시기를 놓쳐 벼가 너무 자라면 뿌리가 많이 뻗어 호미질이 어려워진다.
논을 맬 때 논물은 대개 빼고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짝 말리지는 않고, 자작자작한 상태로 물높이를 조정한다.
그래야 일하기가 좋다.
논바닥을 너무 말리면 호미질하는 데 힘이 들고, 물이 많아도 흙탕물이 져서 일하기에 적절치 않다.
논매기가 끝날 때마다 풀이 죽으라고 논을 더 말리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김을 매고 나서 다시 물을 깊게 댄다.
논매기 중에는 두벌매기를 가장 신경 써서 한다.
아이매기는 아직 풀이 성하지 않은 때이고, 세벌매기는 이미 모가 많이 자란 상태에서 더 이상 새로운 풀이 나기 어려운 때이다.
그래서 두벌매기 때 두레패들이 동원되는 등 마을 공동 노동조직을 이용한다.
거의 두 달 정도 지속되는 논을 매는 시기의 논물은 주기적으로 뺏다가 대는 일을 반복한다.
벼의 성장 단계와 관련짓는다면, 초벌매기 때는 착근기着根期를 지나서 가지를 벋는 분얼기分蘖期에 해당한다.
착근기는 모를 낸 뒤 모가 본답에 제대로 살아 붙는 시기라고 하여 이 시기를 ‘사름시기’라고도한다.
‘ 사름’이란 ‘모낸 지 6~7일 뒤로 뿌리가 땅에 내려 모가 생생한 푸른빛을 띠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때 농가에서는 대개 웃비료를 주는데, 그것 역시 사름이 된 이후에 치는 비료라고 하여‘사름 비료’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논매기가 끝나는 세벌매기 시점은 나락의 줄기 속에 이삭이 만들어지는 수잉기受孕期를 지나 이삭이 패는 출수기出穗期직전이 된다.
수잉기를 풀이하면 ‘모가 알을 배는 시기’이다.
모의 대궁(줄기) 아래가 유난히 통통해짐을 통해 ‘알을 배는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모내기를 끝낸 모가 본답에서 자리를 잡아 사름이 되면 수잉기까지는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물이 많을 경우에는 모가 뿌리 내리는 것을 어렵게 하고, 이후 새끼치기(분얼)를 많이 하지 않는다.
뿌리가 약해지면 태풍을 비롯한 비바람에 쓰러지기(도복倒伏) 쉬운데, 그런 점을 고려하여 착근이 된 이후 논물은‘중간 물떼기’를 하거나 열흘이나 1주일 간격으로‘물 걸러 대기’를 한다.
늘 논에 물을 대어 놓기보다는 적어도 한 번쯤은 물을 대지 않고 논을 말리는 것이 오히려 벼의 성장에 좋다고 하여‘중간 물떼기’를 하는데, 이를 두고 농부들은 ‘논은 꿈에 말려도 한 번은 말려야 한다’고들 한다.
물 걸러 대기의 구체적인 방식 역시 논의 토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사흘 정도 물을 댔으면 이틀 정도는 물을 빼는 것이 좋다고 하여,‘ 3관灌 2배排’ 방식으로 물대기를 한다.
이는 물이 부족할 때 식물은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튼튼하게 자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산간 지역의 수리불안전답에서는 ‘물 걸러 대기’를 하기 어렵다.
한다고는 하더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농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풍부한 물과 수리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간 지역의 경우 평야가 많은 하천 유역보다 일반적으로 소출이 적은데, 일조량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물 걸러 대기’를 적절히 할 수 없기에 그렇기도 하다.
물론 수리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옛날에는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모내기부터 벼가 사름이 되기까지 물은 벼의 생명을 전적으로 담보하는 기능을 행한다.
하지만 사름이 된 이후에 과다 공급된 물은 오히려 벼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수시로 논을 말리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물 공급을 끊어 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과다 공급된 물은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반생명성反生命性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찬물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여겨 특별한 조처를 했다.
뒷도구나 찬물돌림도랑은 바로 냉해 방지를 위한 것이다.
5) 배동바지 때 물 깊이 대기
착근기나 분얼기의 뿌리 성장을 위해서는 물 걸러 대기가 필요하지만, 이삭이 맺기 시작하는 배동바지(수잉기) 때는 물을 깊이 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 시기는 벼가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물이 부족하면 벼이삭이 잘 패지 않고 개화∙수정도 저하되어 이삭이 줄어든다.
그래서 벼가 알을 배는 배동바지 때는 물을 깊게 대어 주어야 한다.
논물을 깊게 댄다는 것을 개량적으로 제시하면 대략 수심 10㎝ 안팎을 가리키고, 반대로 얕게 대는 것은 3~4㎝ 이하를 가리킨다.
배동바지를 일러 농민들은‘벼 대궁이 여식아들 종아리처럼 통통하게 알을 배는 시기’라고 한다.
실제로 벼 대궁이 통통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대는 물은 벼이삭이 패는 데 필요한 물이라고 하여 ‘꽃물’이라고도 한다.
이후 벼가 고개를 숙일 때까지 충분히 물을 대야 한다.
이때의 물은 이삭을 패게 할 뿐만 아니라 영글게 하기도 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삭이 패어서 벼꽃인 자마구가 일면 농민들은 전혀 논에 들어가지 않는다.
논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일단은 나중으로 일을 미룬다.
물론 이삭이 패기 전에 논농사에 필요한 큰일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벼 자마구가 피는데 논에 들어가 일할 경우 꽃가루가 떨어져 수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논에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꼬 높이를 최대한 높이고 논물이 충분한지를 수시로 확인한다.
이때의 농사일은 대개 논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농사일이 잠시 한가할 때이다.
벼꽃 자마구
전통적으로 ‘하지 전3 후3’이라고 하여 하지를 중심으로 모내기를 끝내고, 그로부터 스무날에서 한 달 뒤 논매기를 시작하여 대략 음력 7월 백중 이전에 마무리하고서 농민들은 잔치를 벌인다.
이름하여 ‘호미씻이’이다.
이 호미씻이는 지역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다.
두레, 백중, 농장원, 나다리, 두레장원, 장원례, 음주례, 길꼬냉이, 술멕이, 파접, 파결이, 풋굿, 꼼비기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비록 이름은 달라도 논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들을 마치고 난 이후 행하는 농민 축제라는 점은 똑같다.
이 호미씻이를 할 때 벼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가 된다.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논물을 이용해 이삭을 맺고 패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따라서 이 무렵 논물은 생명수의 역할을 단단히 한다.
그리고 풀은 논에서 더 이상 새로 나기 어렵다.
벼의 그늘이 논 전체를 덮고 있기에 잡초가 새로 싹이 트기가 어렵다.
물이 행하던 제초 효과의 기능은 완전히 끝난 상태이다.
이삭이 패고 자마구가 피는 시기에는 논물이 충분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비가 내리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만일 비가 잦으면 자마구가 빗물에 떨어져 수정률이 떨어진다.
늦벼의 경우 벼 자마구가 가장 한창일 때가 대개는 처서 무렵이다.
그래서 옛말에‘처서에 비가 오면 단지의 곡식이 준다’고 했다.
벼 자마구가 가장 왕성한 시기에 비가 내려 벼꽃이 수정되지 못하고, 그 결과 이삭을 제대로 맺지 못해 쭉정이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벼 자마구가 한창일 때 내리는 비는 단지의 곡식까지도 줄이는 해가 되는 물이다.
6) 수확과 물 빼기
수확기는 더 이상 물을 대지 않고 논에 남아 있는 물도 빼서 논을 말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벼의 완전한 등숙登熟, 곧 낱알이 마지막까지 잘 여물고 또 일정 부분은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벼를 더 쉽게 벨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논을 말리는 것이 필요하다.
물이 고인 논은 콤바인과 같은 기계로 작업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또 손으로 벼를 베더라도 발이 빠지는 등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락이 여물고 익는 시기인 가을에 내리는 비는 논농사의 경우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이다.
쓸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수확기에는 관개시설을 모두 차단하고 기존의 배수시설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조처한다.
찬물돌림 도랑인 뒷도구는 벼의 성장기에는 급수시설이지만 수확기에는 배수구로 전환된다.
따라서 수확기가 되면 특별히 뒷도구를 깊게 쳐서 물이 잘 빠지게 한다.
그것은 본답으로 들어가는 물의 유입을 좀 더 확실하게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존의 배수구인 물꼬의 높이도 아예 논바닥보다 낮게 만들어 완전히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고논의 경우는‘배도구’라고 하여 논의 뒤쪽에서 논둑 쪽으로 임시로 도랑을 내기도 한다.
주로 나락을 포기 째 뽑아서 옆으로 옮긴 다음 도랑을 만드는데, 물이 빠지는 정도를 보고 여러 개를 만들기도 한다.
‘ 배도구’라는 말은 배를 가르듯이 논을 가르는 도랑, 또는 배수하려고 만드는 도랑이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 수확 바로 전까지 물을 떼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그것은 미질을 고려한 것으로서 수확기 바로 직전까지 물을 대면 그렇게 하지 않은 쌀보다 밥맛이 좋아진다.
논에 물대기를 중단하는 것을 일러 농민들은 ‘물을 떼다’ 또는 ‘물을 뗀다’고 하는데, 일찍 물을 뗀 논의 쌀일수록 겉보기는 좋을지 모르나 밥맛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물을 일찍 뗀 쌀은 밥맛이‘까시리하고(점성이나 습기가 부족하여 까칠한 느낌이 있다는 말)’, 반대로 늦게까지 물을 떼지 않은 쌀은 밥을 지을 때 윤기가 나고 찰기도 있어 밥맛이 좋다.
수확기의 물은 벼의 낱알을 여물게 할 뿐만 아니라 미질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집에서 먹을 것(자가소비용)’은 가급적 물을 늦게 떼고, 정부 수매용 나락은 일찍 물을 떼서 나락이 잘 마르도록 조처한다.
정부 수매용 나락은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수분 함유율이 15% 이하인 것만 수매를 받기 때문이다.
햇볕이 좋은 가을날 대략 이틀 정도 말리면 집에서 먹는 나락은 충분히 말린 것이 된다.
7) 수확 이후 논 관리
가을걷이가 끝나면 이모작을 하는 논은 곧바로 가을갈이를 한다.
오늘날처럼 양파나 마늘 같은 환금작물을 이모작하기 전에는 주로 보리를 심었다.
보리는 식물의 특성상 습기를 싫어한다.
따라서 보리를 심는 논일수록 배수를 더욱 확실히 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에 만들어 놓은 도랑도 훨씬 더 깊게 친다.
하지만 모든 논이 이모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논 주변에 수렁이나 수원지가 있어 습기가 많고 물이 고여 있는 고논은 이모작을 할 수 없다.
이모작을 하기 위한 논의 최우선 조건은 물 빠짐이 좋은 곳이라야 한다.
그리고 벼와 이모작을 하는 곡식은 밭작물이자 월동작물이다.
따라서 월동의 조건은 습기가 없어야만 한다.
습기가 많으면 땅이 얼어서 당연히 작물을 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모작이 가능한 논의 토질은 배수가 잘 되면서도 토질이 좋은 사질양토가 된다.
하지만 이모작을 할 수 없는 고논은 전통적으로 겨우내 물을 담아놓는 것이 오히려 토질 개선에 좋다고 했다.
그래서 겨울철 빈 논에는 물을 빼는 것이 아니라 깊게 대었다.
겨우내 논에 얼음이 꽝꽝 얼면 이듬해 풍년든다는 옛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겨울철에 물을 담아 놓으면 제초의 효과를 봄과 동시에 논을 썩혀 토양을 개선시킨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의 과학적 영농법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담수의 효과보다 폐해가 더 크다고 보며, 그래서 가급적 논을 말리고 가능하다면 가을갈이를 해 놓는 것을 최고로 친다.
전통적으로도 가을갈이는 거름보다도 좋다고 했는데, 가을갈이를 한 논흙은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토양이 부드러워져서 거름 효과를 냈다.
그래서 상일꾼일수록 가을갈이를 열심히 한다는 내용이 고농서 들에도 자주 언급된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행한 논농사의 물 관리 방법을 벼의 성장 및 농사 일정과 연관하여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벼의 성장 과정에 따른 논물 조절과 농사 일정
*이 글은 계간 <귀농통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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