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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제일의 정자 피향정.

영지니 2008. 2. 24. 22:27

호남 제일의 정자 피향정.

 

 

‘관동에 죽서루가 있으면, 호남에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난 피향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정도로 피향정은 첫눈에 나를 그 모양새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1-2~6에 소재한 피향정. 자연을 벗 삼아 쉼터로 사용하고자 지은 피향정은, 호남지방에서 으뜸가는 정자이다. 통일신라 헌안왕(재위 857∼861) 때 최치원이 세웠다고 하지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이 다시 짓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가 건물을 넓혔으며, 지금 크기로는 숙종 42년(1716) 현감 유근(柳近)이 넓혀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부분적으로 고쳤으며, 단청은 1974년에 다시 칠한 것이다.

피향정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는 새 부리가 빠져나온 것처럼 꾸민 형태로 간결한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 4면이 모두 뚫려 있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난간은 짧은 기둥을 조각하여 주변을 촘촘히 두르고 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지만, 천장 일부를 가리기 위해 건물 좌우 사이를 우물천장으로 꾸민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이 누정을 거쳐 간 시인, 묵객들의 시가를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어 건물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피향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자 중 하나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피향정 현판(위) 한편에 줄지어선 비석들(가운데), 보물임을 알리는 표지석(아래)


3월 20일, 태인면 고천리에 소재한 옥천사를 보러가는 길에 발길을 멈추게 한 피향정. 첫눈에 그 자태에 매료되어 갈 길을 못가고 한참이나 머물러 있었다. 피향정은 태인면 큰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정읍 칠보 쪽에서 태인면으로 들어가다가 보면 시가지가 시작되는 사거리 좌측에 서 있어,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몇 번이고 이 길을 지나쳤으면서도 왜 그동안은 피향정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정자 기행을 하면서 논 가운데 서있는 그늘 막도 정자로 보이는 버릇이 생긴 덕분에, 오늘 피향정을 만날 수 있었다. 피향정을 보는 순간 관동 죽서루에 버금간다는 생각을 한 것도 많은 정자를 찾아다니면서 처음으로 ‘아~’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가 이곳에 있었다니. 아마 시가지 안에 자리하고 있어 그동안 암 생각 없이 지나쳤는가 보다.


급히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들고 피향정 앞으로 다가섰다. 한편에는 하마석(下馬石)이 있고 피향정을 두른 낮은 담이 있다. 담은 최근에 둘러 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289호인 피향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두른 것인가 보다. 낮은 담 밖에서도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피향정의 모습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지나는 행인들이 그저 웬 정자 하나 서있거니 하고 바라보는 모습들이다. 좀 더 가까이 가서 그 운치를 느끼고 싶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다. 저쪽 한편 터진 곳으로는 들어갈 수가 있겠으나, 약속을 한 시간이 있어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낮은 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정자를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은 둥그런 돌기둥을 이용하여 마치 누의 형태처럼 축조하였다. 돌계단을 이용해 오르게 되어있는 정자는 그 자태 하나만으로도 지나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자 한편에 줄지어 선 많은 비석군들은 또 다른 멋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장날 좌판상들로 인해 완전히 가려진 보물 제289호 피향정 안내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한편에 서있는 취향정의 내용을 적은 안내판을 찍으려고 안내판 앞을 가보니 세상에 이를 어쩌랴. 안내판은 길을 가득 메운 장사꾼들로 인해 완전히 가려져 있다. 태인 시가지를 훑어보니 아마 오늘이 장날인 듯 하다. 옷을 파는 노상점포가 안내판을 완전히 가려 어느 곳으로도 비집고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럴 경우 짜증도 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란 속담이 오늘 나에게 이렇게 맞아 떨어질 줄이야.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그 짧은 속담 하나가 웃음을 준다. 참 이 좋은 피향정을 찾아 기분 좋게 모든 것을 다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 속담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를 알려주려는 것 같다. 장사를 하는 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무엇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장날에 맞추어 찾아온 것을 후회할 밖에. 장날마다 이곳에 포장을 치느냐고 물으니, 거의 장날은 이곳까지 노점 포장을 친다는 대답이다.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야 문화재 안내판인줄 알아도 그 소중함을 모르니, 그 앞인들 좌판을 벌여놓지 못할 것도 없다.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오늘 속담 한번 기가 막히게 경험을 했다고 자위를 하며 돌아선다. 다음부터 혹 태인면에서 장날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안내판 앞을 조금 비켜놓기를 바라는 수밖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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