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암자.정자

오리정

영지니 2008. 2. 24. 22:29

 

「<아니리> 방자 충충 들어오더니 "아 도련님 어쩌자고 이러시오? 내 행차는 벌써 오리정(五里亭)을 지나시고 사또께서 도련님 찾느라고 동헌(東軒)이 발칵 뒤집혔소. 어서 갑시다." 도련님이 하릴없이 방자 따라 가신 후 춘향이 허망하야 "향단아. 술상 하나 차리여라. 도련님 가시는디 오리정에 나가 술이나 한잔 디려보자."


<진양조> 술상 차려 향단 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농림숲을 울며불며 나가는디 치마자락 끌어다 눈물흔적을 씻으면서 농림숲을 당도허여 술상 내려 옆에 놓고 잔디땅 너른 곳에 두다리를 쭉 뻗치고 정강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쩔거나.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이며, 독수공방 어이 살고. 내가 이리 사지를 말고 도련님 말굽이에 목을 매여서 죽고지고!"


<자진모리> 내행차(內行次) 나오난디 쌍교(雙轎)를 거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쌍교 독교 나온다. 마두병방(馬頭兵房) 좌우나졸(左右邏卒) 쌍교를 옹위하야 부운같이 나오난디 그 뒤를 바라오니 그 때여 이 도령 비룡같은 노새등 뚜렷이 올라앉어 제상(制喪) 만난 사람 모냥으로 훌적훌적 울고 나오난디 농림숲을 당도허니 춘향의 울음소리가 귀에 언뜻 들리거날 "이 얘 방자야 이 울음이 분명 춘향의 울음이로구나 잠깐 가보고 오너라." 방자 충충 다녀오더니, "어따 울음을 우는디 울음을 우는디..." "아 이놈아 누가 그렇게 운단 말이냐?" "누가 그렇게 울겄소? 춘향이가 나와 우는디 사람의 자식은 못 보겄습디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오리정 이별대목이다. 판소리에서 아니리는 사설을 대화조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하고, 진양조는 가장 늦은 장단이다. 진양조는 조선조 명창 김성옥이 여산(전라북도)의 야산 동굴에서 독공을 하다가 처음으로 만든 장단으로, 늦은 장단을 이용해 최대한으로 소리꾼이 기교를 부릴 수 있다. 김성옥은 관절염의 일종인 학슬풍으로 고생을 했으며, 동굴로 찾아온 가왕(歌王) 송흥록에게 진양을 전수하였다. 판소리와 산조 등 민속악에서는 이 진양이 생기면서 멋을 더하게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자진모리는 빠른장단이다.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던 이몽룡과 춘향이가 이곳에서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과 통한의 이별을 했다는 곳이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나오는 오리정은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국도 곁에 자리하고 있다. 아마 이곳이 지난 날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기에, 이몽룡도 바로 남원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이 길을 거쳤을 것이다. 비록 판소리의 한 대목이지만 이곳은 남원에서 족히 20여 리나 떨어져 있다. 그 먼길까지 배웅을 나온 춘향이는 이곳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목이 메어 이도령과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니 그 사랑하는 마음이 오죽하였으랴.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듣더니 말아래 급히 나려 우루루.... 뛰어 가더니 춘향의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춘향아! 네가 천연히 집에 앉어 잘 가라고 말허여도 나의 간장이 녹을 턴디 삼도 네 거리에 떡 버러진데서 네가 이 울음이 웬일이냐!" 춘향이 기가 막혀 "도련님 참으로 가시오 그려 나를 아조 죽여 이 자리에 묻고 가면 여영 이별이 되 지마는 살려두고 못가리다. 향단아! 술상 이리 가져 오노라." 술한잔을 부어들 고, "옛소 도련님 약주잡수! 금일송군 수진취(今日送君須盡醉:오늘 임을 보내니 실컷 취하여보자)니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도련님이 잔을 들고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천하에 못 먹을 술이로다. 합환주(合歡酒)는 먹으려니와 이별허자 주는 술은 내 가 먹고 살어서 무엇허리!" 삼배를 자신 후에 춘향이 지환(指環)벗어 도련님께 올리면서,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빛과 같은지라 니토(泥土)에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으오리까!" 도련님이 지환 받고 대모석경(玳瑁石鏡:거북 등껍질로 만든 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빛과 같은 지라 날본 듯이 네가 두고 보아라" 둘이 서로 받어 넣더니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을적에 방자 보다 답답하여라고. "아 여보 도련님 아따 그만 좀 갑시다." 도련님 하릴없어 말 위에 올라타니 춘향이 정신을 차려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또 한손으로 도련님 등자디딘 다리잡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한양이 머다말고 소식이나 전하여주오! " 말은 가자 네굽을 치는디 임은 꼭 붙들고 아니놓네.

 


 


오리정에서 이별을 한 춘향이는 전주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서 있는 춘향이고개 위에서 멀어져가는 이몽룡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을 춘향이버선발이라고 하는데 아마 춘향이가 이몽룡의 뒤를 �i다가 신이 벗겨진지도 모르고 �i아갔는가 보다. 오리정은 그런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오리정은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층 목조건물로 축조된 오리정은 1953년이 지어진 것이다. 오리정 맞은편에는 오리정 휴게소가 있고, 오리정은 노송 한 그루를 품안에 안고 당당히 서 있다. 앞으로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아직은 철이 일러서인가 수련 두 송이가 수줍은 듯 피어있다. 정자는 이층으로 되어있으며, 이층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없어지고 출입을 할 수 있는 공간만 입을 벌리고 있다. 정자는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운치가 있는데, 이곳이 춘향이와 이몽룡이 이별을 나누며 통곡을 했던 곳이라고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듯하다. 춘향가 오리정 대목을 알게되면 이 오리정의 이별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실감이 난다.

 

 

오리정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며 뒤돌아본다. 금방이라도 춘향이가 도령님을 부르며 버선발로 뛰어올 것만 같다. 아마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오리정을 떠났다면 나 역시 이몽룡과 같은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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