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암자.정자

공산성

영지니 2008. 2. 24. 22:39

공산성의 서문위에 자리한 금서루

 


오래 만에 공주 공산성을 찾았다. 공주는 대전에 있을 때 자주 들렸던 곳이라 전혀 낯설지가 않은 곳이다. 공산성 역시 바람을 쐬러 나갈 정도였으니 한두 번 오른 것이 아니지만 정자 기행을 하면서 새삼스럽단 생각이 난다. 하기야 그저 스치고 지나기만 했지 꼼꼼히 살펴보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공산성은 공주시 산성동 금강을 끼고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12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둘레는 2,200m이며 웅진성, 쌍수산성, 공산산성, 공주산성 등으로도 불린다. 백제 문주왕 원년(475년)에 한산성으로부터 이곳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축성 시기는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시대에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금서루를 오르는 길에 즐지어 서 있는 비석군들

잘 보수가 된 공산성의 성곽 

금서루 밑으로 난 통로. 이곳이 바로 공산성의 서문이다. 


공산성을 들어가다가 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서문 위에 세워진 금서루이다. 금서루는 공산성의 서문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용도로 보아 아마 지휘소였을 것 같다. 금서루 위에 올라보면 성곽으로 몰려드는 적병들이 한눈에 보였을 것 같다. 금서루 주변의 성곽들은 급한 경사 위에 세워져 있어, 이곳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적을 감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쌍수정 


금서루가 있는 서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걷다가 보면 만나는 것이 바로 쌍수정이다. 쌍수정은 공산성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위치한 전각으로, 문화재 자료 제49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쌍수정은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축조가 되었다. 원래  쌍수정 터는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공산성 파천시 머물던 장소이며, 이곳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인조가 이 나무에 기대어 근심에 쌓여있을 때,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두 그루의 나무에 정3품의 벼슬을 하사하였다. 이후 나무가 죽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영조 10년 관찰사 이수항이 정자를 건립하고 쌍수정이라 칭하였다. 쌍수정은 『공산지』에 보면 이층 누각으로 되어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나, 건물의 형태가 많이 손상되어 1970년에 전면 해체하고 새로이 복원하여 현재에 이루고 있다.

 

진남루 


쌍수정을 지나 조금 밑으로 난 길을 내려 가다가 보면 진남루를 만난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쪽 문의 누각으로, 문화재 자료 제48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원래는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조 초기에 석성으로 개축을 하면서 그 당시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진남루는 석축을 높이 쌓고 그 아래 통로를 만들었으며, 통로 위에 누각을 지어 이층으로 된 누각처럼 보인다. 지금은 깨끗이 보수가 되어 있는 진남루는 누각 아래를 지나면서 보면, 누각의 마루가 보이는 것이 양편 축대 위에 정자 하나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만하루 


공산성 안에 있는 영은사 앞으로는 금강이 보인다. 금강과 영은사 사이에는 연못인 연지와 만하루가 있다. 원래 공산성 안에는 연못이 세 개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쌍수정 남쪽에 있는 것 두 개만 확인이 되고 있다. 만하루는 공산성을 방비하는 기능과 함께, 금강의 아름다운 경승을 관람하는 기능을 가진 정자로 조선 후기인 영조 대에 건립이 되었다. 그간 홍수로 인해 매몰되었던 것을 1982년 건물터가 발견이 되면서, 1984년에 중건이 되었다.


만하루에서 바라보는 금강과, 일몰시에 금강에 여울지는 황금빛 색은 장관이다. 그래서 이곳에 정자를 짓고 금강 건너편의 적도 관찰을 하고, 함께 아름다운 금강의 낙조를 구경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하루에 오르니 난간 이곳저곳이 떨어져 나가고 심한 낙서가 되어 있다. 그 뒤 공주시청에 확인을 해보니 깨끗이 보수가 끝났다고 하니 다행이다. 문화재에 그저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다고 낙서를 하는 이들. 이제는 그런 유치한 짓은 좀 삼갔으면 좋겠다. 일 년에 그렇게 낙서하고, 파고, 부수고 하는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보수를 하는 비용만 해도 엄청나다고 하는데, 그 비용이 결국은 자신들과 부모님들의 피땀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공북루 


만하루를 떠나 금강변으로 난 성곽 위로 걷다가 보면, 금강을 바라보고 있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37호 공북루를 만나게 된다. 공북루는 1603년(선조 36년)에 축조한 공산성의 북문이다. 이곳은 원래 망북루가 서 있던 터였으나, 금강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문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밑으로는 금강으로 드나 들 수 있는 통로가 나 있다.


망북루는 공산성의 요지 중 한곳이다. 망북루 앞으로는 예전 수로교통과 내륙교통의 요지답게 금강을 건너는 옛 다리 유적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이 수심이 얕은 곳으로 적에 침입을 항상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하기에 이곳에 망북루를 올려 적의 동태를 살피고, 적을 나가서 섬멸하기 위한 문을 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니 벌써 해가 뉘엿하다. 옛 영화를 간직한 체 말없이 서 있는 공산성. 그리고 그 안에 오랜 시간을 저리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났을 누각들. 이제 또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 어느 누군가가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를 기대한다.

 

 

'고궁.암자.정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양 의상대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0) 2008.02.24
낙화암  (0) 2008.02.24
정자기행  (0) 2008.02.24
남간정사  (0) 2008.02.24
금란정  (0)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