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은산별신재-충남 부여 은산

영지니 2008. 3. 2. 06:03

 

충청남도 부여에서 서북쪽으로 8km를 가면 은산면 은산리가 있다. 이 지역에는 오래 전승되어 오는 별신제란 향토신제(鄕土神祭)가 있다. 은산별신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은산면(恩山面) 은산리(恩山里)에서 열리는 향토제로 그 기원에 대해서는 고증할 만한 문헌이 충분하지 않다. 다만 이 지역이 백제 때의 전쟁터인 점으로 보아, 별신제는 전몰한 장병의 원혼을 위로하여, 액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는 주술적인 목적의 제사로 보인다.


일설에는 마을에 매년 질병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마을에서는 제사도 지내보고 여러 형태를 병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의 한 노인이 꿈을 꾸는데 장수가 나타나 이 마을에는 백제의 부흥을 꾀하다가 죽은 장졸들의 시체가 많아 그 원혼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그 시신을 잘 거두어 묻어주면 마을에 후환이 사라진다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주변에 널려있는 유해를 모두 거두어 장사를 치루어주자 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때부터 매년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별신제는 매년 지내는 것이 아니라 윤달이 든 해의 음력 정월 또는 2월의 좋은 날을 택해서 마을 북쪽에 있는 당산(堂山)의 산제당(山祭堂)에서 거행한다. 이 산제당에서 매년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있으며 별신제도 같은 당(堂)에서 지내게 된다. 별신제를 지내려면 마을 원로들이 그 해의 별신제 임원을 선정해서 동짓달 무렵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임원은 대장(大將), 중군(中軍), 패장(稗將), 사령(司令) 등 군대조직의 명칭으로 불려지는데 은산별신제가 장군제(將軍祭)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들은 부정이 없는 사람들로 선정하며 일단 임원으로 선정이 되면 겨울날에도 목욕재계를 하는 엄격한 금기를 지켜야 한다. 임원들은 문밖출입을 금하고 부인과 합방을 하지도 않으며 제를 지낼 때까지 집안에 달거리를 하는 여인이 있거나 환자가 있어서도 안된다. 제물을 장만하는 임원을 화주(化主)라고 하는데, 제물에 부정한 일이 있으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제사를 지낸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탈을 입게 되므로 심신을 단정하게 하고 부정을 멀리 한다. 그래서 제사에 쓰는 우물에는 멍석을 덮어두고 근처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놓아 부정의 접근을 막는다.


별신제는 먼저 제사에 쓸 술을 담그며 제사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 마을 동서남북에 있는 장승 옆에 세워둘 나무를 베는 의식인 진대베기가 있다. 이 의식은 은산에서 약 1∼20리 안에 있는 산에 가서 미리 나무를 물색해 두었다가 진대 베는 날에는 대장 이하 임원들이 말을 타고 행군해서 산신에게 고사하고 나무를 베어 돌아오게 된다. 진대 베러 갈 때는 요란하게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울리며 나무는 화주집에 임시로 세워둔다.


제사의 2, 3일 전에 꽃받기가 있다. 별신제에는 종이꽃을 만들어 큰 꽃다발을 신에게 올리는데 이 꽃을 수개월 전에 미리 주문해 둔다. 꽃은 인근 절이나 꽃을 만드는 화장(花匠)의 집에서 만드는데 어느 경우나 부정 없이 정성껏 만들어 올리게 된다. 제사는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데 강신(降神)을 위해서 무당이 별신축원굿을 하고 다음날에는 거리로 내려와 시장 복판에 있는 고괴목(古槐木) 앞에서 시장번영을 비는 거리제가 있고, 마지막 날에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행사는 끝난다. 별신제는 전설에 의하면 백제 장군과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그 덕으로 마을에서 병마를 퇴치해서 마을의 번영과 마을 사람들의 행운을 기원하는 향토신사의 하나이다. 은산이 지리적으로 부여에 가까워 백제사와 행사가 연결되었고 보름 동안에 걸친 큰 행사로 전승되었으며 별신제 때면 수만 명의 군중들이 운집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