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성주사지 - 보령시 성주면 - 옛날의 절터

영지니 2008. 7. 19. 22:24

 

성주사지 전경 - 서 있는 탑들을 보아 얼마나 컸던 가람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상촌 뒤로 옛날의 절터가 있는데 이 절터를 성주사지(聖住寺址) 라고 부른다.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곳으로 인근은 물론 전국적으로 번성했던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주사는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烏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법왕이 왕자일 때 삼국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령하는 뜻으로 세운 절이었으므로 창건 당시부터 백제의 중심 사찰이었던 셈이다. 성주사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것은 통일신라 말에.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인데, 성인은 신라 말기의 명승 무염국사를 일컫는다.

 

무염국사가 성주사의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이때 성주사에서 정진하는 수도승만 2,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절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하였는가는 지금 남아있는 사찰의 흔적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데 지금도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보물 19호인 오층석탑, 보물 20호 삼층석탑, 보물 47호인 서삼층석탑이 있고, 그 외에도 동삼층석탑, 석계단, 석등, 석불입상  등이 있다.


 

국보 제8호 낭혜화상보광탑비/사진 문화재청 자료

 

국보 제8호인 성주사낭혜화상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寶光塔碑)는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이 되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탑비로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성주사지에 소재하고 있다.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하였다.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사(烏合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 절에서 선(禪)을 널리 알리어 절이 점점 크게 번성하게 되자, 왕은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며, 진성여왕 2년(888)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하고, 탑 이름을 ‘백월보광’이라 내리었다.


절타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하였다. 얼굴의 일부분이 깨져 있는 거북은 머리 위쪽에 둥근 뿔이 나 있고, 뒤로 째진 눈에는 눈썹이 휘말려 있으며, 입은 마치 불을 내뿜으려는 기세이다. 등에는 선명한 이중의 육각무늬를 새기고, 중앙에는 제법 굵직한 구름무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구름무늬 위로는 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높게 마련하여 각 면을 장식하였다. 기다란 비몸은 앞면에만 비문을 새기고, 위쪽 양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놓았다. 맨 위에 올려진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두르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서로 뒤엉킨 장면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는데, 힘찬 용틀임과 웅장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앞면에는 받침돌의 거북머리와 같은 방향으로 용머리가 툭 불거져 나와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진골이던 낭혜화상의 가문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6두품의 신분으로 낮아지는 대목도 나타나 있어 당시 신라골품제도의 연구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썼으며, 비를 세운 시기는 적혀 있지 않으나, 낭혜화상이 입적한 지 2년 후인 진성여왕 4년(890)에 그의 사리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이 때 비도 함께 세웠을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 중에서 가장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솜씨가 작품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 여름날에 찾아간 성주사지는 초록이 우거져 시원한 느낌이 든다. 입구 길 건너편에 흐르는 도랑의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더위에 찌든 심신을 달래준다. 2천 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성주사지.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맑게 하기 위해 한번쯤 찾아가 보길 권하고 싶다. 인근의 대천해수욕장이며 석탄박물관, 그리고 오항과 서해에 있는 많은 섬들. 성주사지와 함께 돌다가 보면 더위는 수그러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