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돈사지 전경
천년동안 잠자던 신라의 고찰이 바로 이웃을 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부론면에는 10여분 거리를 두고 거돈사지와 법천사지가 있다. 거돈사지는 이미 발굴을 마친 후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으며, 법천사지는 한창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적 제168호인 거돈사지(居頓寺址)는 부론면 정산리에 자리하고 있다. 부론면 소재지를 지나 좌측으로 고개를 넘으면 좌측에 정산 2리와 3리를 거쳐서 지금은 폐교인 정산분교를 우측에 두고 1,000년 묵은 노송과 석축이 있다. 이 절터는 현재 남아있는 보물 제750호인 3층 석탑으로 보아서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750호 삼층석탑
1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거돈사지는 높은 축대 위에 중문을 세웠던 자리가 남아있으며 그 뒤로는 3층 석탑과 금당터, 강당터가 남아있다. 대웅전인 금당은 절의 중심 건물로 규모가 전면 6칸, 측면 5칸으로 되어있으며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이 자리마다 배치를 하고 있어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금당 안에는 자연석으로 올린 2m 정도의 화강암 불대좌가 있다. 금당의 오른쪽과 뒤로는 석축을 쌓고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있으며 우물터도 발견할 수 있다. 길 뒤편 언덕 위에는 원공국사승묘탑이(보물 제190호)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다.
보물 제78호 원공국사 승묘탑비
원공국사 승묘탑비는 보물 제78호로 절의 오른쪽 끝에 자리하고 있으며 탑비를 바치고 있는 귀두부분을 보면 등은 거북인데 비해 얼굴은 용의 얼굴로 양편 귀부분에는 물고기의 비늘과 같이 솟아있다. 이 탑은 원공국상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025년(현존16년)에 건립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신라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세부적인 기법과 모습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서 고대 탑비의 형태를 관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문에 따르면 원공국사는 8세에 출가를 하여 955년(광종 6년)에 오월국으로 유학한 뒤 그 곳에서 불교를 강의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역대 왕들이 그를 숭상하여 대선사왕사 등으로 모셨다고 한다. 거돈사는 임란 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주말을 이용해 본 필자가 속해있는 모임인 우공이산회의 회원들과 함께 찾은 거돈사지. 고개를 넘어 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향해 들어가다가 보니 정산 2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길 가에 석물로 된 장승 2기가 마주하고 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석장승으로 깎아 세우고 양 편 장승을 금줄로 연결했다. 장승 앞에는 언제 켰는지 초가 남아 있으며, 솟대를 꽂는 자리까지 만들어 정리를 해놓았다. 조금 더 들어가면 좌측으로 거대한 고목이 보인다.
정산3리 폐교 담장 곁에 있는 장승군
석축 위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천년 기나 긴 세월을 온갖 풍상을 다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고목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오가는 길손들에게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절 터 입구 우측에는 폐교인 정산분교 자리가 있다. 그 담장 옆에는 양편에 목장승 군이 나란히 서 있어 이 마을은 대대로 마을제를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거돈사지를 보면서 이리 좋은 위치에 서 있던 가람이 전화로 인해 한줌 재로 화하고 돌무지만 남아있다는 것에 새삼 역사의 잔인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날은 추운데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우공이산회 회원들도 떠날 줄을 모른다.
발굴 후 정리가 되어 있는 거돈사지
3층 석탑의 곁에는 발굴 때 나온 각종 석물을 가지런히 정리를 해 놓았다.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보물 제750호인 3층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웠으며, 전형적인 신라 3층 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사각의 돌로 된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 것이 특이하다. 1월의 짧은 해를 탓하랴. 마음이 분주해진다. 천년 세월을 지내오면서도 저리도 변함없이 서 있는 그 장한 모습을 인간들이 조금이나마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체 법천사지로 향한다.
지방유형문화재 법천사지 당간지주
부론면 소재지로 거슬러 나와 문막 쪽을 향하다가 보면 법천리가 있다. 현재 3개 마을에 걸쳐있는 법천사지는 한창 발굴이 진행 중이다. 강원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법천사지는 그 규모가 엄청나 과거 얼마나 대단한 가람이었는가를 가늠케 한다. 법천사는 최초의 기록은 928년(경순왕 2년)으로, 신라 말기에 이 지역의 대표적 사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에는 대표적인 법상종(法相宗) 사찰로 명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국보 제59호 지관국사 현모탑비
이곳에는 국보 제59호인 지광국사현모탑비가 있으며 당간지주가 있다. 발굴이 진행된 곳은 각종 기와편과 석축 등이 쌓여져 있고 비를 피하기 위해 발굴터는 모두 덥혀져 있다. 지광국사현모탑비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특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으며 경복궁에 있는 국보 제101호 현모탑과 함께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속명이 원해린(元海隣)인 지광국사는 삼중대사승통왕사국사의 칭호를 받았고 1070년(문종 24) 이 절에서 입적을 하셨다. 뒷면에는 1,370여명의 국사의 제자 이름 및 인원수를 적고 있다. 1085년에 세운 이 비는 비석의 윗부분은 하늘을 나는 천녀, 해, 달 등과 함께 불교의 이상 세계인 수미산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비석을 업고 있는 이수부분은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을 조각하였다.
한 나절 시간으로 돌아본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천년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들어 낸 두 곳의 절터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의 것을 지키지 못한 아픔과 함께 제 자리를 떠나 먼 곳에서 외롭게 서 있을 수 많은 문화재의 한탄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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