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백제시대 절터이다. 지정면적 10만 2886㎡로 상왕산 남서쪽 계곡의 보원마을에 있었으나 마을주민은 이주하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보원사지에는 10세기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조(石槽, 보물 제102호)와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103호),·5층 석탑(보물 제104호),·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호) 등의 유물과 초석이 남아 있다. 1968년에 백제시대의 금동여래입상(높이 9.5㎝)과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높이 7.5㎝)이 발견되었다. 사적 제316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지난 해 12월 말경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인가 길을 선 듯 떠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을 먹고 떠난 길이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려고 고속도로로 올랐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서산 나들목으로 들어가 보원사지로 찾는다. 초행길이라 몇 번을 길을 물어 갔지만 날이 추워서 길에는 사람들이 많지를 않아 묻기조차 어렵다. 한 겨울에 길을 떠날 때는 항상 곤욕을 치루는 것이 길을 물을 사람들이 길에 있지를 않다는 점이다. 이 날고 마찬가지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들려야했고 단 하나 음료수라도 구입을 해야 하니 그 또한 번거로움이라. 운산면으로 들어가 보원사지를 물으니 먼저 국보 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을 찾으면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하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니 좌측 산 중턱에 세워진 전각 안에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고 직진을 해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광활한 보원사지가 나타난다. 넓은 절터에는 여기저기 비석이며 석조, 탑, 당간지주 등이 서있고 아직도 발굴 중인 듯 아직은 채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돌무더기며 흙더미 등이 보인다.
보물 제102호 석조
사지 입구 다리를 건너면 길가 우측에 제일먼저 눈에 띠는 것이 바로 보물 제102호인 석조다. 석조란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용기로서 원형, 팔각형, 장방형 등이 있는데 이 석조는 장방형의 것이다. 길이 3.48m, 너비 1.75m, 높이 0.65m의 크기로 된 이 석조는 당시 사찰의 규모를 알려주는 좋은 유물이다.
이 석조는 고려 경종(景宗) 3년(978)에 제작된 보원사의 석조로서 화강석의 통 돌을 파서 만든 돌그릇이다. 중앙부분이 갈라지기는 했어도 그 그릇의 용도로 보아 이 절에는 많은 승려와 사람들이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돌은 단단하게 보여 천년이 넘는 세월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지켜보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 모습은 한 치 흐트러짐이 없어 보인다.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
석조 앞쪽에는 보물 제103호인 당간지주가 서 있다. 발길을 옮겨보니 당간지주 아랫부분은 새로 만들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는 사지(寺址) 동쪽 원위치에 원상대로 양지주가 동서로 상대하여 서 있다. 지주 주위는 갑석과 수매의 장석으로 석원을 구축하고 있을 뿐 기단부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새로이 조각하였다고 한다.
당간지주는 여러 가지 주위의 석재로 보아 당초에는 장방형의 기단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양지주의 각 면에 조각 장식된 종대나 지주 정상부에 가공된 유려한 기법과 특징 등은 주목되는 것이다. 당간을 받치는 간대도 방형의 2중 기대를 조각한 원좌이며 상면의 원공을 갖추었다. 이러한 발달된 형태와 정연하고 장식적인 양식수법을 보이는 점에서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04호 보원사지 오층석탑
안내판을 둘러보고 건너편을 보니 탑과 비 등이 보인다. 작은 내를 건널 수 있게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돌들은 이 곳 어느 곳에서 발견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이런 석조물을 갖다 놓았는지 여느 돌과는 다르다. 내를 건너 우뚝 솟아있는 보물 제104호 지정된 5층 석탑을 본다. 주위를 돌면서 찬찬히 사진을 찍어가며 조각들을 살핀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선 방형의 5층 석탑으로 지대석과 상하 기단면석에 상하 기단갑석을 구비하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우주와 2개의 탱주로 3등분한 다음 각각 한 마리의 사자상을 양각하였다.
탑의 하단부에는 사방에 걸쳐서 양각이 되어있으나 오랜 풍광에 마모가 되어 많은 부분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탑 주변에는 사적지를 정리하는데 쓰여 진 돌인 듯 많은 연화대 등이 널려있다.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위)와 보물 제106호 법인국사보승탑비
탑 안쪽 산 밑에는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과 보물 제106호인 법인국사보승탑비가 서 있다. 법인국사(法印國師)는 신라 효공왕 4년인 900년에 출생하여 고려 광종 26년(975)에 입적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고승으로 이 부도의 건립은 국사가 입적한 때부터 탑비가 건립된 경종 3년(978)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진다. 너른 보원사지에 바람이 일어 흙먼지가 인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매캐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뒤돌아 나오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전에 소멸된 것으로 전하는 보원사. 현재의 사찰 터로 보아 당시 보원사에는 크고 작은 암자 100여개가 운집했었으며, 법인 국사 보승비의 기록문 내용에 의하면 승려 1천여 명이 기거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제인가 이곳에 다시 보원사가 복원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우리 정신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석양에 비쳐진 마애삼존불의 전각이 한 폭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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