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옥선이란 무엇인가?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하여 대선·중대선·중선·쾌선·맹선·별선·추왜별맹선·추왜별선 등 여러 종류의 군선들이 증강되어 있었으나, 이들 군선들이 일정한 제원없이 건조되어 군선으로서 쓸모가 없었다. 군선에 대한 문제는 1461년(세조 7) 10월에 신숙주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는 각지의 군선을 개량하여 군용과 조운에 겸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여 1465년에 병조선(兵漕船)이 개발된 것이 맹선의 전신이 되었다. 병조선은 세조대에 개발되어 《경국대전》 반포를 계기로 하여 대·중·소맹선으로 개명되어 1세기 동안 조운과 전공에 겸하여 사용되었다. 《경국대전》에서의 맹선에 대한 제반 규제는 수군의 군비감축이라는 뚜렷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군선이 829척에서 739척으로, 선군이 5만 177인에서 4만 8천 80인으로 줄었다. 한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조운선 829척 가운데 무군선이 57척뿐인데, 《경국대전》에는 737척의 군선 가운데 249척이 무군선이다. 세조대에 군용선의 감축이 있고, 오히려 조운의 사용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복원된 한선의 이물 비우
맹선은 군선으로서 너무 무겁고 둔하여 쓸모가 없다는 논란이 성종대에 이미 거론된 바 있다. 중종과 명종대에 계속 발생한 삼포왜란·사량왜변·을묘왜변 등에서도 맹선은 군선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였다. 1555년(명종 10)에 대형군선인 판옥선이 개발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어서 종형군선인 방패선이 등장한 이후로 맹선은 군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여 맹선이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춘 것은 아니었다. 그 구조와 선체의 모양은 일반 조운선으로 계승되어 조선말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명종대에 개발된 판옥선이나 거북선도 그 하체구조는 맹선과 다를 바 없었다. 맹선은 조선전기의 전형적인 한선(韓船) 구조의 배로서 고려시대의 조운선인 초마선(哨馬船)은 조선후기의 조운선과 같은 계통으로 평저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넓고 평탄한 저판을 밑에 놓고 그 좌우 현측에 외판을 세워 붙였으며, 선수에는 ‘비우’라고 하는 평면선수재, 선미에 평면으로 된 선미재를 세워서 선체를 꾸며 놓았다.
고려말 조선초 극성을 부리던 왜구가 대마도를 정벌한 세종이후 한동안 잠잠하였는데 중종 5년 삼포왜란을 일으키는 등 다시 창궐하기 시작한다. 이 난은 그동안 조선의 막강한 수군 세력에 잠잠하던 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데, 본래부터 조운을 겸하도록 제작된 맹선등의 구식 조선 전함들이 쓸모가 없어진 것도 이때 이다. 즉 왜가 점차 중국의 해적들과 접촉하여 화포로 무장하고 당시 조선 최대 전함인 대맹선 만한 배 까지 동원하는등 점차 현대화 되는 왜를 당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맹선이 본래부터 평화시의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을 겸하도록 만들어진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조선은 맹선은 그대로 버려두고 한동안 소형 경쾌선으로 왜를 대적하려 했으나 왜가 보다 개량된 화기와 큰배로 침입함에 따라 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서후는 중종 16년에 "지금 수군에서는 소선(小船)만 쓰고 있지만 소선은 아무리 민첩 하더라도 접전에서는 쓸모가 없고, 적이 칼을 빼어 들고 뛰어 들 수 없는 고준(高峻)한 대함을 가지고 적을 내려다 보며 제압해야 합니다"라는 진언을 했다. 또한 중종 39년에도 같은뜻의 상소가 판중추부사 송흠에 의해 올려졌다. 명종 10년 판옥선을 처음 시험하게되었고 이후 판옥선은 우리나라의 주력함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판옥선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가? 판옥(板屋)은 판자로 만든 집'이란 뜻이다. 판옥선 이전의 주력 군함인 대맹선은 갑판 위가 평평한 평선형(平船型)인데 비하여, 판옥선은 갑판 위에 다시 갑판(상갑판)이 추가되어 있고, 장대(將臺)도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판옥선'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판옥선의 구조 및 특징
판옥선은 우선 다층 전함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시대의 전함들이 모두 평선이기 때문에 갑판위에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인 노꾼이 함께 있게 되어 전투효율이 떨어지는데 비해 판옥선은 비 전투원인 격군(노꾼)을 판옥내에 숨기고 전투원은 상장위에서 적을 내려다 보며 공격할 수 있게 된것이다. 또한 판옥선의 상장 위 넓은 갑판은 대포를 설치하기에도 좋으며 사정거리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당시 대포는 지금처럼 쉽게 사각을 올릴 수 없고 고임목을 끼워넣어야 하는 불편한 방식이었다) 이외에도 판옥선의 구조적인 특징은 우선 서양선박의 특징과 판옥선 만의 특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우선 서양선박의 특징인 용골과 늑골이 없는 점이다.
용골 대신 본판이라는 구조가 용골을 대신한다. 때문에 바닥이 평평하다.용골에 가로 놓여 배의 횡강력을 유지하는 늑골도 없다. 대신 가룡목이 이를 대신 하는데, 가룡목은 좌우 현판 부재 하나 하나를 지지 한다. 따라서 한선은 공법상 외각을 먼저 만드는 shell first 공법으로 만들어 졌다. 선수(이물) 역시 넓적한 판재로 만들어 배의 모양이 상자형이 된다.
두번째로 판옥선만의 특징은 갑판 전체에 걸쳐 설치되는 선루이다.
선수로 부터 선미까지 배 전체에 선루가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마련된 선루를 상장이라고 한다.선체폭 보다 훨씬 넒은 선루를 가지고 있어 노를 선체와 선루 사이에 내밀게 되어 있어 전투시 노역에 종사하는 비전투원을 보호한다. 상장위의 넓고 평평한 공간은 대포를 설치하기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전투 효율을 높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순수 전투용 함선이다. 이전의 전함들은 평화시 세곡을 운반하는데 쓰이는등 수송선 기능을 겸하게 되어 있으나 판옥선은 순수한 전투용 함선이다. 선체 보다 넓고 평평한 선수부 상장은 전함의 선수쪽 화력을 높여적을 추격할때 유리하다. 배를 건조한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배 전체를 해체하여 새로 조립한다. 이는 판옥선 뿐만아니라 한선 전체의 특징으로 한선은 나무못으로 끼워 맞춤식으로 건조 되었기 때문에 일정 기간 경과후, 배를 해체 수리 할 수 있다. 배밑이 평평하고 두꺼워 썰물때 갯뻘에 배가 안정되게 안치할 수 있고, 육지에 끌어 올려 풍랑에 대비할 수 있다.
판옥선의 해전술
이와 같은 판옥선의 장점은 특히 왜와의 전투에서 매우 큰 효과를 가져오는데 옛날 해전은 대개 적함에 나란히 기대어 적함으로 넘어가 칼싸움을 하는 전술로 로마해군은 이를 위한 사다리까지 준비하고 다녔다. 이런 전술은 16세기 유럽은 물론 전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흔한 전법이었다. 물론 왜군도 당연히 이런 전법을 쓴다. 예를 들어 중종실록의 기록에 "왜적이 칼을빼어 들고 배안에 뛰어들면 맹사(猛士)가 아무리 많아도 당해낼 수없다"라고 한 대목이나, 임진왜란때 왜의 큰 전함인 대흑주에는 대포가 겨우3문, 그것도 구경 3cm짜리가 장치된 반면 일본도가 200자루나 되는점 들은 역시 왜 수군이 접전에 능하며 단병접전 전술을 채택한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해전술은 주로 궁시에 의한 적선의 소각이 첫번째 전법이었다. 따라서 우리 수군은 많은 함포를 사용했는데, 그 구경도 왜의 것보다 커서 보통 90 ~ 130 mm 정도였다.(16세기 당시로는 초대형 함포라 할 만하다)
때문에 적이 우리 배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게 중요 했다. 따라서 고려말에 뱃전에 칼을 꽂아 만든 검선이라든가 과선(戈船)등이 나오게 된것도 검술에 익숙치 못한 우리의 해군을 보호하고 활로 공격하기 위함이다. 이런 전통의 결정체가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우선 선체가 이층으로 되어 노역에 종사하는 비전투원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2층의 높은 곳에서 적을 공격한다. 따라서 적은 판옥선의 2층 높이에 오르기가 어렵고 반면에 판옥선의 입장에선 적을 내려다 보며 공격할 수 있다. 이처럼 적의 장기인 접전을 막고 우리의 장기인 궁시에 의한 공격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판옥선 이다. 배가 2층 이라서 적함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함부로 뛰어들 수 없고(이점은 왜 수군의기록에 잘 나온다) 많은 화포로 무장하고 있으며, 그 포의 구경도 왜의 함포보다 월등히 커서 천자총통의 경우 13cm, 지자총통 10cm, 현자총통 7cm정도 이다. 전통적인 궁술이 포격으로 발전하여 판옥선의 천자총통은 산탄 200발을 현자총통은 산탄 100발을 쏠 수 도 있었다. 당연히 사정거리도 월등히 길어서 왜군의 조총이 대게 200m사거리에 유효사거리 50m인데 비해 세종때 기록을보면 천자포가 1500보 지자포가 900보 현자포 800보 정도이다. 비교가 안될만큼 큰 것이다.
이처럼 판옥선은 우리의 장기의 궁술과 포격전을 유리 하게 이끌기 위한 충분한 장소 제공과 적의 단병접전을 방지할 높은 보루의 역할을 할 판옥을 배위에 만들음로서 적의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아군을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O 임종인 위원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이지스함 1척을 하기 위해서 드는 돈이면 400~500억 하는 차기고속정 25척 이상 건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임종인 위원
이지스함 1대면 그 정도의 배 200척도 만들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해군참모총장 문정일
비교/분석 아직 못 해 봤습니다.
◯임종인 위원
한번 해 보십시오.
◯해군참모총장 문정일
예, 알겠습니다
지금 수군에서는 소선(小船)만 쓰고 있지만 소선은 아무리 민첩 하더라도 접전에서는 쓸모가 없고, 적이 칼을 빼어 들고 뛰어 들 수 없는 고준(高峻)한 대함을 가지고 적을 내려다 보며 제압해야 합니다"
- 중종 16년 승지 서후가 올린 상소문 -
뱀 발 : 이전에 쓴 포스트 댓글에 조선조 대선/소선논쟁이 있었기에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출처는 디씨 역사갤러리 아마존 왕수달님이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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