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장생포 고래박물관

영지니 2007. 3. 6. 13:10

지구상 최후의 거대 동물, 고래의 흔적을 찾아

울산 장생포 고래 박물관에서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람들은 동해안을 떠다니는 거대한 신화를 생각한다. 그리고 꿈을 꾼다. 희디 흰 고래가 푸른 물줄기를 허공에 뿌리며 유유히 바다 위를 떠다니는 꿈을. 고래는 신화처럼 숨을 쉬고, 병태와 윤락가 여인 춘자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동해안으로 고래를 잡으러 간다. 그러나 고래는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 거대한 몸체에서 흘러 나왔던 짙은 향을 아스라이 남긴 채.

 

 

 

 

▲ 고래박물관 전경

 

 

고래 중에 귀신고래라는 종이 있다. '귀신'이라는 말이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바다의 밑바닥을 입으로 훑으면서 먹이를 찾는 귀신고래는 우리나라 동해안에 살고 있다. 아니 예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귀신고래가 울산 장생포 앞바다에 살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 휘황한 무리를 지금은 볼 순 없다. 오메가 일출이 만들어내는 붉은 색소의 바닷물을 헤집던 그 아름다운 무리를 지금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울산 장생포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고래 박물관을 찾아가면 이 귀신고래를 실물크기로 만날 수 있다. 그것도 몸 전체에 따개비와 조개껍질이 군데군데 붙어있는 기괴한 모습의 귀신고래를. 뿐인가? 1층에 위치한 어린이 체험관에 가면 고래 뱃속을 재현한 모습도 볼 수 있고, 2층에 가면 웅장한 몸체를 뒤척이며 물줄기를 내뿜는 고래의 모습을 3면 영상관을 통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층에 가면 '귀신고래'를 일종의 테마 형식으로 꾸며놓은 귀신고래관도 만날 수 있다.

 

▲ 박물관 내부

 

장생포 고래 박물관은 지난 2005년 5월31일에 개관하였다. 지상 4층에 부지면적 2천 평, 연면적 790평으로 이루어진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박물관 앞에는 '극경회유해면'이라는 특이한 곳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바닷물이 넘실대는 일대가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경이란 말은 귀신고래의 일본식 한자인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귀신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닌 바다라는 의미이다. 그 만큼 장생포 앞바다에는 귀신고래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왜 하필이면 이름이 귀신고래였을까? 사실 이 말의 정확한 어원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 귀신처럼 신출귀몰하게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 120m의 깊은 바다까지 잠수한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이 있다.

 

▲ 고래를 잡았던 기록사진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상업적인 포경이 금지된 해는 1985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포경선은 제6진양호인데, 이 진양호 역시 고래 박물관에 가면 실물크기로 만날 수 있다. 야외 데크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진양호는 고래를 잡았다는 포경선에 걸맞지 않게 아주 아담한 몸체를 자랑한다. 높이 2.6m, 길이 31m의 진양호가 10m는 수월찮게 상회하는 고래를 잡았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안 가지만, 앞 갑판에 설치된 예리한 작살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아무리 큰 고래라도 살갗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살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 박물관 앞바다

 

고래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0종이 있다. 소형의 것은 돌고래(혹은 물돼지)라고 하며 몸길이 1.5m짜리도 있지만 보통 4m이상의 대형종류를 고래라고 부른다. 고래 중에서 가장 거대한 종류는 흰긴수염고래로써 최대 33m에 170톤짜리도 있다고 한다. 170톤이라! 성인 몸무게로 따지면 2800명에 해당되는 엄청난 무게이다. 이 거대한 몸체가 물 위를 떠다니고 있으니 그 존재 자체가 너무 경이롭다. 그것도 어류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포유류라고 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밖에.

 

▲ 밍크고래 태아 실물사진

 

고래의 이런 거대함은 옛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안겨준 모양이다. 그래서 고래는 예로부터 수많은 벽화와 소설, 노래 등에 자주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사시대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다양한 고래그림들이 등장한다. 그 벽화에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고래를 포획하였다는 증거가 명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고래를 주제로 한 가장 유명한 소설은 허만 멜빌의 '모비 딕'이다. '백경'이란 이름으로 번역되는 이 소설은 고래에 관한 한 백과전서적인 소설이며 바다와 고래, 인간의 관계를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현학적으로 그려냈었다.

 

▲ 포경선, 제6진양호

 

 

영화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고래는 이제 생생한 육질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각종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주제가 있는 영화로, 방송사에서 밀착 취재한 자연환경 시리즈로 고래는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점차 사라져가는 고래의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전 세계적인 보호정책으로 인해 개체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귀신고래를 장생포 고래 박물관 앞바다에서 볼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그래, 꿈을 꾸어보자. 지난 1984년 배창호 감독이 만든 '고래사냥'이란 영화에서 동해안으로 고래를 잡으러 간 병태의 꿈을 같이 꾸어보자. 고래는 잃어버린 우리의 꿈을 안고 오늘도 짙푸른 동해의 심연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