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삶이란 이런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지니 2007. 3. 3. 17:26

(사진이 있는 삶의 이야기)


한 여름 뙤약볕이 따갑다. 요즈음은 극성스럽게 비도 많이 내린다. 국지성 집중호우라고 하여서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고 아예 물을 붓는 것 같은 비가 자주도 내린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인 장마 중에도 하루 정도 반짝 해가 들 때가 있다. 옛날 어머니들은 이 날을 빨래를 하는 날이라고 하셨다. 날이 맑게 갠 날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의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 갖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등은 활처럼 휘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되고 힘이 들어도 자식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난 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힘들고 지쳐 보이지만 지팡이를 짚고 등에 바지락 자루를 걸머진 할머니의 모습에는 삶의 의욕이 배어있다.

 

신기리란 신발을 깁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장 한편에 좌판을 벌이고 앉아 신발을 깁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는 검정 고무신이나 운동화 등을 주로 기웠으며, 신발을 수선할 때는 본드 등을 이용해 그럴듯하게 고쳐놓으면 그것도 감지덕지해서 신바람 나게 신고 다녔다. 지금의 아이들이야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다 절약의 상징이었으니 세월이 참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이야 구두의 수선도 대형매장에서 서비스가 가능해 시장이나 마을을 다니면서 신을 깁는 신기리도 볼 수가 없다. 지난 달 날이 추워 동동거리고 찾아간 화성시 사강장은 대목 밑의 장인데도 날이 추워서인가 사람들이 붐비지를 않는다. 그 한편에 앉아 구두를 수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연륜이 쌓인 어르신의 손길에서 아버지의 정을 본다.

 

연탄은 무연탄, 석탄, 숯, 코크스 등의 분말을 뭉쳐서 원통형의 적당한 크기로 만든 고체연료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연소가 잘 되도록 세로로 구멍을 여러 개 내어서 만들기 때문에 구멍탄, 혹은 구공탄이라고도 한다. 또 구멍의 수에 따라 9공탄, 19공탄, 32공탄, 49공탄 등으로 구분하는데, 가정용은 대개 구멍이 22개의 구명을 갖고 있으며 주로 무연탄가루로 만든다. 연탄은 1950년대 이후 가정·학교·식당·점포 등에서 취사 및 난방용으로 널리 사용하게 되어 쌀과 더불어 대표적인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한 연탄을 사용함으로써 나무와 숯 등의 제조로 인한 산림의 훼손을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좁은 갱도 안에서 작업을 하는 광부들은 건강을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난방을 위해서, 또 가족들을 위해서 죽음의 그림자와 늘 함께하고는 했다. 보령시 석탄박믈관의 모습이다.

 

지난 해 5월 한낮에 충북 제천 금수산 기슭의 밭에서 밭갈이 하는 모습을 담았다. 밭갈이는 지금처럼 영농이 기계화가 되기 전에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노동의 일종이다. 쟁기를 메고 밭을 가는 어미 소의 뒤를 쫒는 송아지의 모습이 정겹다. 농사란 일 년을 지어야 한다. 2월 시작을 하면 10월 추수를 다 마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날이 덥다고, 혹은 비가 많이 온다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미 소 곁을 따라가는 송아지를 바라보며 나이 많은 농부는 집에 둔 자식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을 내었을 것 같다.

 

여주 도자축제장에서 한낮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뙤약볕에서 짚신을 삼고 있는 어르신은 땀을 훔칠 시간도 없이 연신 침을 발라가며 짚을 엮어가고 계시다. 한 때는 우리 민초들의 신으로 유일하였던 짚신. 많은 사람들이 그 짚신이 없으면 운신을 못했을 테니 그 한 올 한 올을 정성을 다해 단단하게 잡아당기면서 엮어 가신다. 그렇게 꼼꼼히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만들어진 짚신은 우리에게 남을 위한 희생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저녁시간, 마을의 노인 한분이 절로 올라온다. 가쁜 숨을 고르고 나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종을 울리기 시작한다. 산을 돌아 협곡을 울리는 종소리에 마음이 편해진다. 그저 두 손을 합장하고 이 어려운 시국을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무한의 힘이 솟기를 염원한다. 점차 소리가 멀어지면서 저녁 해가 서산으로 숨는다. 땅거미가 드리우는 산 아래 마을에는 종소리만이 마을을 휘돌아 멀리 달려 나간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올 한 해 제발 더 이상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안성 칠장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평화롭다. 

 

어린 아이가 돌탑을 쌓고 있다. 어린 아이가 무엇을 염원하면서 돌을 쌓고 있는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탑을 쌓아 올리는 그 표정이 진지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 아이가 탑을 쌓는 마음으로 세상에 덕을 쌓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아이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이상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만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정말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주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런 공동체가 가득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어느 해 8월 오후 용인 와우정사에서 이 아이를 보다.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