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韓紙)는 닥나무 등의 섬유를 원료로 하여 만든 한국 고유의 종이로 창호지, 혹은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한지와 같은 종이를 중국에서는 한지(漢紙), 일본에서는 화지(和紙)라고 부르는데, 조선시대에는 중국에 조공(朝貢)으로 보내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한지는 그 품질에 따라 백지(白紙)·장지(壯紙)·각지(角紙) 등으로 나뉜다. 또한 용도에 따라 그 질과 호칭이 다른데, 문에 바르면 창호지, 족보·불경·고서의 영인(影印)에 쓰이면 복사지, 4군자나 화조(花鳥)를 치면 화선지(畵宣紙), 연하장·청첩장 등에 쓰이는 솜털이 일고 이끼가 박힌 것은 태지(苔紙)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백지·창호지·배접지(褙接紙)·장판지(壯版紙) 등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것이 제조되고 있다. 치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2.4m×0.6m의 것이 주종을 이룬다. 한지는 주원료인 닥나무 외에도 소나무·대나무·버드나무·볏짚·갈대 등에서 뽑아낸 섬유질도 사용된다. 제조공정은 먼저 닥나무 껍질을 늦은 가을에 뿌리 위를 조금 남기고 잘라 채취한다. 이것을 큰 가마솥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겨 말린다. 이렇게 건조시킨 것을 흑피(黑皮)라고 하며, 이 흑피를 흐르는 물이나 통 속의 물에 1주일 담가 불린다. 표피를 제거하여 며칠 동안 햇볕에 바라 표백시키는데, 이것을 백피(白皮)라 한다. 이 백피를 물에 다시 담가 완전히 부풀게 한 다음 석회와 목회(木灰)를 넣고 끓인 뒤, 자루에 넣어 흐르는 물에 담가 씻는다. 이렇게 만든 펄프를 햇볕에 바래어 표백시킨 다음 반죽을 풀어 풀을 섞은 뒤 대발로 물질해서 묽은 반죽을 떠낸다.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 껍질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되었는데, 후한의 채륜에 의하여 품질이 좋은 종이가 생산되어 보급이 확대되면서 종이제조기술이 향상되었다. 우리나라에 종이가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과 통일신라시대의 종이는 매우 희고 섬유질이 균일하며 표백기술 등이 훌륭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종이는 빛깔이 비단같이 희고 두껍고 질겨 찢어지지 않으나, 거칠어 글씨 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단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대 제왕들은 고려종이를 우수하다하여 즐겨 사용했다고 문헌에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활판 인쇄술의 재발명으로 종이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종이 제조를 담당하는 기구도 생겼다. 조선시대 종이는 종류가 다양하며, 나뭇결이 생기고 식물섬유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적인 제지기술은 김옥균에 의해 1884년에 도입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발전하였다.
닥을 물에 씻는 모습
한지의 제조과정은 크게 여덟 단계로 나누어진다. 주원료 만들기·삶기·씻기 및 햇볕 쐬기·두드리기·종이뜨기·물빼기·말리기·다듬기 과정이다. 청송 한지장인 이상룡씨는 5대조부터 청송에서 제지업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왔으며, 7세 때부터 가업을 도우면서 익혔던 기술로 한지생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큰아들 이자성씨와 함께 전업하고 있으며, 주로 2합지, 1합지, 소재지 등을 생산한다.
한지를 만드는 장인을 지장(紙匠)이라고 하는데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625-8에 거주하는 장용훈옹은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16호로 1996년 12월 24일 지정이 되었다. 지장이란 전통 한지 제조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부친 장세권 때부터 한지 생산으로 중요한 지역인 전북 전주 부근과 경기도 가평에서 대를 이어 한지를 만들고 있다.
한지를 이용한 지승공예품
전통 한지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가평군의 설악면·상면 등 주변 산의 양지바른 곳에서 채취한 야생닥을 가마솥에 넣고 약 6시간 정도 쪄서 껍질의 겉껍질을 벗겨 낸다. 섬유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닥을 깨끗한 찬물에 하루 동안 담갔다가 꺼내, 메밀짚을 태운 재로 만든 잿물에 넣어 3∼4시간 삶은 다음 다시 깨끗한 물에 씻어 5∼6일간 햇빛에 말려 표백한다. 이것을 건져 내어 잡티를 일일이 제거한 다음 다시 잘 두드려서 곱게 빻은 후 지통에 닥풀과 함께 넣어 잘 젓는다. 그런 다음 발틀 위에 발을 얹어 놓고 종이를 뜨는데, 외발식과 쌍발식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지로 만든 옷
외발식은 앞뒤 좌우로 10여 차례 흘려 뜬 종이를 번갈아 앞뒤를 바꾸어 놓아 두 장이 하나의 짝이 되도록 한다. 쌍발식 뜨기는 두 배로, 20번 정도 흘려 한 번에 한 장씩 뜬다. 300장정도 뜬 다음 이를 모아 압축기에 넣어 물을 빼고 낱장으로 분리한 다음 건조기에 한 장씩 놓고 비로 쓸면서 말린다. 말린 종이를 다시 20장씩 모아 약간 물을 뿌려 눅눅해진 상태에서 도침기(搗砧機)에 넣고 다지는데 이 과정을 두 번 반복한 후 다시 낱장씩 말리면 하나의 닥종이 한지가 완성된다.
대형 종이나 장씨가 개발한 요철지를 만들 때는 별도의 판을 짜서 말려야 하며, 하루 생산량은 많을 경우 전지 400장 정도의 분량이다. 우리의 전통 멋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한지. 그러나 현재에 들어서 한지의 수요가 줄고 수출이 저하되면서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어 한지의 생산과 보존, 판매에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출처 : | 누리의 취재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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