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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正宮 - 덕수궁

영지니 2007. 3. 6. 17:49

韓國의 正宮

덕수궁






덕수궁 정관헌

德壽宮 靜觀軒








고요함을 바라보는 곳.

정관헌.

함녕전 뒷뜰 낮은 동산위에 1900년에 지은 서양풍의 왕실 휴식처

고종이 다과를 들며 쉬거나 외교관 연회처로 사용.
벽을 트고 서양식 주방을 놓았으며 지붕은 구리판으로 장식하였다.

古宮속에서 느끼는 역사의 흐름.
고대와 근대와 현대.
그 시간 흐름을 한 눈에 보고 느끼며 작은 숲을 거닌다.

숲속에서 흐르는 음악소리에 도심의 소음이 사라지고 한여름의 더위가 사라진다.
































 





덕수궁 석조전과 미술관










짙은 초록빛 잔디와
푸른빛 분수가 있는
덕수궁 서쪽 뜰에 섰다.

현대라는 현실속에서 살다가
지나간 역사속으로 들어가 머물면
오랜 시간의 세월속에 묻혀 들어가서
더 오래 살아가는 느낌을 갖는다.

시간은 쉬지도 않고
변함없이 흘러가고
어느땐가 나도 이처럼 과거가 될 터인데
아직 무엇하나 뚜렷하게 남긴 것이 없다.
그래서 슬프다.






 




 




 








덕수궁 미술관




 








석조전





석조전 <石造殿>

대한제국 고종황제 집무실및 접견실.
10년에 걸친 공사끝에 지어진 서양식 3층 궁궐

서양 신고전주의양식의 국내 최초의 근대 건축.
광복후 미소공동위원회장, 국립박물관,
국립 현대미술관을 거쳐
1992년부터 2004년까지 궁중 유물전시관으로 사용









광명문과 자격루





광명문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남서쪽으로 옮겨져 홍천사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의 전시처가 됨.



보루각 자격루

국보 229호
창덕궁에 있던 자동 물시계로
조선의 국가 표준시계

시간에 따라 쥐,소,범등의 12띠 동물이 나타남.
세종때 장영실이 만든 뒤
중종때 다시 만든 세계 最古 시계.




 

 





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사적 제124호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붙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였다.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규모도 넓혔다. 그리고 고종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2일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및 석조전등이 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심으로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자료글 참조...








중화전

중화전은 즉위식과 조회를 비롯한 주행사를 치르는
덕수궁의 正殿.

본래는 2층이었으나 1904년에 불에 타서,
새로 1906년에 1층으로 다시 지어짐.
일월오악 그림병풍 앞에 어좌가 놓이고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있음.

보물 제 819호








서울에 있는 궁궐 건축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종묘.
그 중에 <땅의 回想>에서 빠진 곳이 한 곳이 있었다.
경운궁이라 불리우던 덕수궁.

설계업무에 관련된 일로 조선일보 사옥 근처와 동아일보 사옥 맞은 편에 수시로 드나들 때, 새벽4시에 기차에서 내려 남대문 시장을 헤메돌다,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리며 대한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산책을 하던 곳.

덕수궁.

시청쪽으로 향한 돌담길을 많이도 거닐어서 다른 궁궐들에 비해 많이 친숙한 덕수궁이다.

나의 머리속에 각인된 덕수궁 산책은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덕수궁 돌담길때문일까 ?
흐린 날씨속에 간간히 소낙비가 내리던 날. 서초동에서 부지런히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덕수궁으로 달려 갔다. 비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내리는 덕수궁을 구상하며....

그러나 회색빛 하늘에서 분사되어 번지는 광선. 사진을 찍기에는 최악의 기후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마지막 궁궐 건축 산책을 계속 했다.

이제는 어디로 갈까 ?
고려의 황도인 개성.
그리고 평양으로 가야겠다.






 




 




 




 




 




 




 




 





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사적 제124호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붙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였다.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규모도 넓혔다.
그리고 고종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2일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및 석조전등이 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심으로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자료글 참조...








중화전

중화전은 즉위식과 조회를 비롯한 주행사를 치르는
덕수궁의 正殿.

본래는 2층이었으나 1904년에 불에 타서,
새로 1906년에 1층으로 다시 지어짐.
일월오악 그림병풍 앞에 어좌가 놓이고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있음.

보물 제 819호








서울에 있는 궁궐 건축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종묘.
그 중에 <땅의 回想>에서 빠진 곳이 한 곳이 있었다.
경운궁이라 불리우던 덕수궁.

설계업무에 관련된 일로 조선일보 사옥 근처와
동아일보 사옥 맞은 편에 수시로 드나들 때,
새벽4시에 기차에서 내려 남대문 시장을 헤메돌다,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리며
대한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산책을 하던 곳.

덕수궁.

시청쪽으로 향한 돌담길을 많이도 거닐어서
다른 궁궐들에 비해 많이 친숙한 덕수궁이다.

나의 머리속에 각인된 덕수궁 산책은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덕수궁 돌담길때문일까 ?
흐린 날씨속에 간간히 소낙비가 내리던 날.
서초동에서 부지런히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덕수궁으로 달려 갔다.
비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내리는 덕수궁을 구상하며....

그러나 회색빛 하늘에서 분사되어 번지는 광선.
사진을 찍기에는 최악의 기후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마지막 궁궐 건축 산책을 계속 했다.

이제는 어디로 갈까 ?
고려의 황도인 개성.
그리고 평양으로 가야겠다.






 




 




 




 




 




 




 




 





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사적 제124호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붙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였다.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규모도 넓혔다.
그리고 고종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진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2일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덕수궁에는 지난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및 석조전등이 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심으로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자료글 참조...








중화전

중화전은 즉위식과 조회를 비롯한 주행사를 치르는 덕수궁의 正殿.

본래는 2층이었으나 1904년에 불에 타서, 새로 1906년에 1층으로 다시 지어짐.
일월오악 그림병풍 앞에 어좌가 놓이고 돌마당에는 문무백관의 위치를 나타낸 품계석이 있음.

보물 제 819호








서울에 있는 궁궐 건축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종묘.
그 중에 <땅의 回想>에서 빠진 곳이 한 곳이 있었다.
경운궁이라 불리우던 덕수궁.

설계업무에 관련된 일로 조선일보 사옥 근처와 동아일보 사옥 맞은 편에 수시로 드나들 때, 새벽4시에 기차에서 내려 남대문 시장을 헤메돌다,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리며 대한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산책을 하던 곳.

덕수궁.

시청쪽으로 향한 돌담길을 많이도 거닐어서 다른 궁궐들에 비해 많이 친숙한 덕수궁이다.

나의 머리속에 각인된 덕수궁 산책은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덕수궁 돌담길때문일까 ?
흐린 날씨속에 간간히 소낙비가 내리던 날. 서초동에서 부지런히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덕수궁으로 달려 갔다.
비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내리는 덕수궁을 구상하며....

그러나 회색빛 하늘에서 분사되어 번지는 광선. 사진을 찍기에는 최악의 기후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마지막 궁궐 건축 산책을 계속 했다.

이제는 어디로 갈까 ?
고려의 황도인 개성.
그리고 평양으로 가야겠다.






 




 




 




 




 




 




 




출처 : 땅의 回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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