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암자.정자

韓國의 正宮 - 경복궁

영지니 2007. 3. 6. 17:39

韓國의 正宮

경복궁






경복궁 경회루

慶會樓








국보 제224호

우리나라의 누각중 최고라 하는 경회루는
국가의 중요 행사시 연회장소로 사용되었던 곳.

태조 창건시의 경회루는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 않았다.
연못도 그리 크지 않았고
연못 가에 수수한 작은 누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을 태종12년(1412),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연못을 넓히고 못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어 대규모의 다락집을 짓도록 명하였다.
태종은 경회루가 완성되자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편액을 쓰도록 하였다.

이렇게 지어진 경회루는 수차례의 중수공사를 거치면서
그 모습이 조금씩 변하였다.
세종 11년(1429) 대폭적인 수리가 있었고,
다시 성종 6년(1474)에 또다시 수리공사가 있었는데
이때에는 아래층 돌기둥에 용을 조각하였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에 타 없어졌고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경회루의 모습은
고종 4년(1867)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어진 것이다.

이때 용이 새겨진 기둥은 쓸 수가 없어 모두 치워버리고,
지금처럼 문양없는 기둥을 세우고
연못 속에 중심이 되는 큰 섬 외에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작은 섬 둘을 더하였다.

흥선 대원군은
이 연못에 구리로 용을 만들어 가라앉혀 놓았는데
이는 나라의 위급 상황시 이들이 나라의 운세를
북돋워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이 용은 1997년 호수의 바닥에서 실제로 발견되었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침전구역의 바로 옆
서쪽에 위치한 경회루는 왕실 전용의 휴식공간이다.








다리를 건너 2층의 누각으로 올라가면
그 마루바닥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
높이는 3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장 바깥 쪽의 툇간이 가장 낮고
조금 안쪽이 그보다 조금 높아지고
가장 안쪽의 중심부가 제일 높게 되어있다.
이는 연회가 진행 될 때에
신분에 따라 앉는 자리에 차별을 두기 위함이었다.
왕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고
그 신분에 따라 상석과 하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왕의 권위와 신분 위계를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옛 기록에 따르면
여기에는 주역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한다.
중앙의 가장 높은 3칸은 天, 지, 인의 삼재를 상징,
그 주위를 둘러싼 8개의 기둥은 8괘(八掛)를 상징한다.
내측과 외측의 사이의 공간은 12칸으로 12계절을 상징하고,
이를 둘러싼 기둥 16개의 사이에는
각각 4짝식의 분합문이 달려있어
모두 64짝으로 64괘를 이룬다.

그리고 가장 외곽의 20칸은 회랑으로서
그 기둥수가 24개이며
이는 24절기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 하나를 지음에도 조선시대의 건축가들은
그것에 의미를 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경회루 자료글 편집....








집현전자리에 세워진 수정전






강녕전에서 본 경회루 지붕


 

 




경복궁 건축의 멋

匠人과 裝人







 





















경복궁 東宮

경복궁 동쪽








동궁은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의 궁전을 가리키는 말로서
세자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인다.

동궁은 세자를 제왕으로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모두 갖추도록 설계되었으니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 세자궁에 딸린 내관들의 처소,
세자가 신하들부터 조하를 받는 곳이다.
또 세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연이나 시강등의 강학을 받으며
세자를 위한 책고와 세자를 호의하는 곳등이다.

지금은 세자와 세자빈의 내궁인 자선당과
세자가 정무를 보는 비현각으로 남아있다.




경복궁의 東門인 건춘문에 올라가서 본 경복궁의 동측






동쪽 뜰에서 본 근정전






자선당과 비현각


















동궁뜰에서 본 융문루


 

 

 






경복궁 근정전

勤政殿








근정전 <국보 제 223호>

경복궁의 수조정전이며
문무백관의 조하를 비롯한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법전으로,
태조 3년(1394)에 창건하였다.
그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에 재건하였다.

근정전은 상,하 월대 위에 이층으로 지은 거대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는 아래 위층의 구분을 없이 하여 넓고 높다.
중앙에 임금이 좌정하던 어좌가 있다.
실내에 가득 의장기물이 장치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근정전 둘레에 이간통의 행각이 있고
남행각 중앙에 다락문인 근정문이 있다.
동행각에서 남행각으로 꺾이면서 두 번째칸 기둥 앞에 서서
약간 굽힌 자세로 바라다보면,
근정전의 우람한 자태와 처마곡선이 북악산의 흐르는 선과
조화되어 선율을 이룬다.
근정전을 바로 이 자리에 자리잡게 된 까닭이 느껴진다.

근정전은
정궁의 정전으로서 최고의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일제시대에 많은 부분이 훼손 되어졌지만
여전히 그 근엄함을 유지하고 있다.

근정전은 세계 어느 건물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최고 건축물인 것이다.























출처 : 땅의 回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