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초당이다. 다신이 떠난뒤 무너져 폐가가 된 것을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다. 다산은 18년의 강진 귀양살이중 10년을 강진 다산초당에서 지냈으며 이곳에서 학문과 사상을 꽃피었다. 정약용이 사학 (천주교)에 물든 죄인이라는 명목으로 강진에 귀양 온 것은 순조 (1801) 11월이다. 그해 봄에 조정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신유교육에 연루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경상도 장기로 유배 되었다가, 가을에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서울로 불려가 문초를 받았다가 별다른 협의가 없었으므로 유배지를 옮겨 강진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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