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가장 높은 언덕위로 올랐다.
창덕궁으로 드는 함양문이 굳게 잠겨 있다.
담장따라 저만치
길이 아닌 길사이에 열려진 작은 쪽문
동사한 낙엽들을 밟으며 그 안쪽 세상을 훔쳐다 보았다.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통제가 있음에도
그 유혹을 차마 떨쳐버릴 수가 없어
쪽문안으로 몸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언덕아래로 창덕궁 낙선재 지붕이 보이고
그 후원인 석복헌과 수강재가 거기 있었다.
인적이 아예 없는 곳.
눈이 녹는 뜰에 역사의 흔적들이 밟히고
다채로운 창살과 고건축의 새로운 조형과 문양.
그 고적함속에서 살며시 뒤따르는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 황후와 덕혜옹주의
발길과 숨결이 느껴진다.
지난 역사속에 기대어 선 안위감.
나는 그 행운의 날에
쉽게 들어 갈 수 없는 땅을 밟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