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성(河南省: Henan) 용문석굴(龍門石窟: Longmen Shiku)
용문석굴(龍門石窟: Longmen Shiku, 룽먼시쿠)
용문석굴은 하남성(河南省: Henan) 낙양(洛陽:Luoyang)시 남쪽 12km에 위치한다. 이하( 伊河: Yi River)가 동서로 가르는 향산(香山: Xianshan)과 용문산(龍門山: Longmenshan)기슭에는 수많은 불교적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하가 북쪽으로 흘러 이궐(伊闕: Yique)이라고도 하는데, 석굴의 남북의 길이는 1km이다. 막고굴( 莫高窟: Mogao Caves)과 운강석굴(雲崗石窟: Yungang Grottoes)과 함께 3대 석각예술(石刻藝術)의 하나이다.
북위(北魏: Bei wei, 386-534) 효문제(孝文帝: Xiaowen, 467-499)가 낙양으로 천도한 493년부터 용문석굴의 불상들이 조각되기 시작하여 북송조(北宋朝: 960-1127)때까지 400여 년간 지속되었다. 경관지역 내에는 2,300여 개가 넘는 석굴과 벽감(壁龕), 2,800개의 석비(石碑), 40개의 사리탑 1,300여 개의 동굴과 10만여 개의 불상이 있다.
이런 조각들의 대부분은 북위 때 조각되어 당나라 때 황금기를 맞았다. 이 곳에는 예술, 음악, 종교, 서예, 의술, 의상 그리고 건축과 관련된 수많은 역사적인 소재들이 있다.
봉선사(奉先寺: Fengxiansi)
봉선사는 당조(唐朝: 618-907)에 조각된 가장 큰 석굴인데, 폭 34m에 깊이 36m 이다. 다양한 모습의 9개의 대불은 불교적 관습과 일치하게 조각되어 있다.
8각의 연꽃무늬 옥좌에 다리를 포개 않아 있는 본존불 비로차나불( 毘盧遮那佛: Vairocana) - 약(略), 노사나대불[盧(卢 )舍那大佛] - 의 높이는 17.14m인데, 머리부분만 4m 이고 귀는 1.9m 이다. 비로차나는 경전에서 “모든 것을 밝게 비춘다”는 의미이다. 본존불상에는 위엄이 잘 표현되어 있고 우아한 미소에는 다정함도 표현되어 있다.
비문의 기록에 의하면, 무측천(武則天: Wu Zetian, 측천무후)가 신하들과 연등절(부처가 영혼의 빛을 열어 중생에게나누어 준다는 부처의 은총)의 축제에 참가했다.
비로차나불 곁에 있는 두 제자 가협(迦協: Kasyapa)과 아난(阿難: Ananda)의 모습은 신중함과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 옆으로 보살(菩薩: Bodhisattvas)과 천왕(天王: Devas), 역사(力士)상이 있는데, 위엄과 다정함 그리고 장엄함과 사나움을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모습과 섬세한 조각은 당나라의 강력한 요소와 종교적 능력을 표현한 지혜의 결정체다.
만불동[萬(万)佛洞: Wanfodong]
680년 완성된 만불동은 평평한 지붕에 2개의 방과 뜰을 갖춘 전형적인 당나라 시대의 석굴이다. 남쪽과 북쪽의 벽에는 15,000여 개의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본존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 Amida)은 연꽃 문양의 수메루(Sumeru)옥좌에 앉아 차분하고 근엄한 표정을 짖고 있다. 아미타불 뒤쪽의 벽에는 54개의 연꽃 위에 각기 다른 54명의 보제살타(菩提薩陀: Bodhisattvas)가 조각되어 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악사와 무용수 조각은 살아 있는 것 같다. 악사는 다양한 종류의 악기로 연주를 하고 무용수는 음악에 따라서 가볍고 우아하게 춤춘다. 동굴 전체의 모델은 생생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동굴 밖의 남쪽 벽에는 85cm의 관음(觀音: Kwan yin)상이 새겨져 있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오른손에는 사슴꼬리(영혼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상징)를 들고 있다. 이런 형태는 용문석굴에서 당조(唐朝: 618-907) 보살(Bodhisattava)상 조각의 한 예로 주목 받는다.
고양동[古陽洞: Guyangdong]
고양동은 용문석굴의 초창기 동굴이다. 동굴의 남쪽과 북쪽에 3층의 벽감(壁龕)이 있는데, 수백 개의 부처상 대부분에 조각가의 이름, 날짜 그리고 조각한 이유를 새겨 넣었다. 각기 다른 형태와 모양을 가진 조각상들은 낙양(洛陽: Luoyang)에 석굴예술이 전래된 후 간다라(Gandhara)미술의 형식을 나타내 준다. 중간에 위치한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상은 7.82m의 높이다. 가장 유명한 서체 20개 중 19개는 고양동에서 볼 수 있다. 20개 서체는 위(魏)형식의 석비를 나타내는데, 용문석굴에서 석비 서체의 정수이다.
빈양중동[賓阳中 洞: Binyangzhongdong]
고양동을 조각하고 난 후 북위(北魏)의 왕족들은 연속해서 북쪽, 남쪽, 중간의 빈양동 등의 대규모 동굴을 건설했다. 중간의 동굴은 가장 오랜시간(500-523) 건설되었고, 셋 중에서 북위의 통치기간에 끝마친 유일한 동굴이다. 이곳에는 11개의 커다란 불상이 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상은 위엄 있고 평화스러운 모습이고, 제자와 보살들은 날씬하고 우아하게 보이는데, 북위 후기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바닥에는 연꽃모양이 새겨져 있고 천정에는 만개한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빈양남동[賓阳南 洞: Binyangnandong]
빈양남동에는 159개의 동굴이 있다. 북위(北魏: Bei wei, 386-535) 선무제(宣武帝: Xuanwu, 499-515)가 그의 부모 효문제(孝文帝: Xiaowen, 471-499)와 문소황후(文昭皇后: Wenzhao)를 기리기 위해 건설을 명령했으나, 수(隨: Sui, 581-618)나라 때까지 완공하지 못했다.
본존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abha)은 북위의 엄숙함과 장엄함이 변화되어 당조(唐朝: 618-907)의 보다 사실적인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빈양북동[賓阳北 洞: Binyangbeidong]
빈양북동에는 104개의 동굴이 있다. 북동도 북위(北魏: Bei wei, 386-535) 선무제(宣武帝: Xuanwu, 499-515)가 그의 부모 효문제(孝文帝: Xiaowen, 471-499)와 문소황후(文昭皇后: Wenzhao)를 기리기 위해 건설을 명령했으나, 당(唐: Tang, 618-907)나라 때까지 완공하지 못했다.
입구의 측면의 용머리 모양의 기둥은 북위 때의 것이다.
잠계사동(潜溪寺洞: Qianxisidong)
잠계사동에는 20여 개의 동굴이 있다. 청조(淸朝:1644-1912)에 목조구조의 처마를 설치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1990년 당나라 형식의 외실(外室)이 재건되고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다.
본존불인 좌대(座臺) 위의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abha)은 가슴이 드러난 헐거운 옷을 걸치고 통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Abhaya Mudra)의 손 모양은 근심없음을 상징한다.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 관세음)과 마하스타마프라프타(Mahasthamaprapta: 대세지) 보살이 양쪽에 서있고, 천왕(天王)이 갑옷을 입고 입구를 지킨다. 동굴 바깥의 남쪽 벽의 벽감(壁龕)에는 2열로 부처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연화동[蓮(>莲)花洞: Lianhuadong]
자연적인 석회동굴에 조각한 것이 연화동이다. 이곳의 석가모니 불상은 서 있는 형태인데, 인도에서 중국까지 불교를 전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형상이다. 잘 조각된 천정의 연꽃은 돋을 새김인데, 중앙에 꼬투리가 있고, 바깥쪽에 꽃잎을 인동덩굴 형태로 감싸고 있다. 연꽃 주변에는 하늘을 나는 6명의 음악가들이 마치 음악의 선율에 따라 춤을 추는 듯한 생생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동쪽의 향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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