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이 선택한 명당
●사연 많은 집성촌의 터잡기
일선리문화재마을의 풍경은 여느 한옥 마을과 사뭇 달랐다.
새로 조성한 듯한 정방형 도로를 따라 한옥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한옥 계획마을 같은 느낌.
알고 보니 1987년,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자 수몰위기에 처했던 전주 류씨가의 70여 호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주해 온 것이다.
그중 수남위종택, 만령초당, 삼가정, 용와종택, 침간정, 동암정, 대야정, 호고와종택, 근암고택, 임하댁 등 10여 채가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영남지역 양반가의 생활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니 발걸음이 사뭇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수몰보다 무서운 것이 젊은이 기근이다.
한옥 관리만으로도 힘겨운 노인들에게 손님맞이는 더 벅차기만 한 일.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지만 닫힌 대문이 많은 것이 아쉽다.
그 문을 활짝 열리게 하는 것은 적당한 눈치와 예절이다.
어느 열린 대문 사이로 비쭉 고개를 들이밀며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자 사랑채 안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인터넷 좀 하느라 바쁜데, 보고들 가시오!’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하시는 노인은 얼핏 봐도 칠순이 거뜬히 넘어 보였다.
무심하지만 편안한 환대였다. 툇마루에 앉으니 냉산을 등지고 낙동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일선善山은 선산의 옛 이름이고, 선산은 인재의 산실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했겠는가.
안동댐에 이어 임하댐 수몰까지 겪어야 했던 전주 류씨들도 결국은 심사숙소 끝에 일선리를 선택했다.
불안보다 강한 것은 운명론이었다.
다시 물가에 자리잡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버들柳은 물가에 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
냉산을 등지고 낙동강을 바라보는 명당의 지세를 느껴 보고 싶다면 뒷산으로 올라가면 된다.
짧은 산행이지만 마을 전체의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옮겨 온 마을의 역사는 짧지만 이어온 전통의 시간들은 이미 수백년이다.
튼튼하게 뿌리내린 가치들이 들판 사이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 전주 류씨 가문 70여 호가 안동에서 이주해 살고 있는 일선리문화재마을
↑쌍암고택雙巖古宅(좌) 과 북애고택北厓古宅(우)
●가족의 우애로 버틴 300년
일선리에서 멀지 않은 해평리에도 두 채의 고택이 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쌍암고택雙巖古宅, 중요민속문화재 105호은 사랑채까지만, 맞은편 북애고택北厓古宅, 경북민속자료 41호은 문이 잠겨 있어서 담벼락만 서성였다.
그 고택의 내력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은 사실 방송을 통해서였다.
어느날 아침 TV를 켜니 300년간 대대로 물려 온 쌍암고택을 이어받기 위해 돌아온 최재성씨의 이야기가 <인간극장>의 5부작 ‘오래된 아버지의 집’편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9대손인 최열 선생과 스물셋 나이에 고택을 물려받아 여든을 앞둔 지금까지 안방을 지켜 온 강계희 여사79세의 일상은 남다를 수밖에.
종가집의 온갖 대소사를 감당하는 것은 물론 1731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쌍암고택을 보존해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집을 개조할 수도 없고 화기 사용도 불편하다.
쌍암이라고 불렸던 두 개의 바위와 함께 다른 고택들도 소실되었지만 쌍암고택과 북애고택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우애 좋은 집안의 내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북애고택은 쌍암고택에 살던 형이 동생을 위해 북쪽 언덕에 살림집을 지어 준 것이다.
최열 선생도 몇해 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위쪽에 8채의 붉은 흙벽집을 만들고 8형제가 언제든지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비빌언덕’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고택은 그냥 집이 아닌 모양이다.
대를 거쳐 오래도록 전해지는 삶의 방식이었다.
↑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들이 양반가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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