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회나 문화권에서도 구성원의 나이에 따른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초기와 말기에는 누구나 '희박한 역할', 즉 '역할 없는 역할'을 맡는다.
노인은 비생산적이며 젊은이처럼 총명하지 않고 연애나 성(性)과 관계없는 사람으로 종종 인식된다. 그런데 일본 후생성은 후생백서에서 이러한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말년의 건강과 생활의 질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의미요, 선진복지사회의 척도다. 지금 나이가 30대건 40대건 간에 언젠가는 찾아올 그날을 생각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치매, 중풍 등 장기요양을 위주로 하는 노인전문병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종합병원에 '소아과'는 있어도 '노인과'는 없기에 다소 생소하다. 하여튼 평소 올바른 섭생(攝生)으로 자식이나 병원에 신세를 지지 않는 게 상책이다.
노인병 치료와 연구는 노인의학회나 노인병연구회 등에서 다방면에 걸쳐 이뤄진다. 하지만 현대의학체계는 너무 세분화돼 노인병이라는 전인(全人)적인 테마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서구에서조차 전통의학이나 대체의학으로 눈을 돌려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미 체계화된 전통 한의학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큰 자산이다.
한방에서는 노인병을 분석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살핀다. 그리고 내적 생명력을 근본적으로 배양하는 치료를 위주로 한다.
노인의지병(持病)으로는 고혈압, 동맥경화, 중풍, 치매, 당뇨, 퇴행성관절염 등이 있다. 노인성난청, 노안, 백내장, 우울증, 저혈당, 빈혈, 소화기능 저하와 노쇠 자체도 노인병이다. 북한에서는 노인병을 노쇠(老衰)병이라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혁명성과 기백이 없어 일도 제대로 못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노인은 젊은이와 달리 오장육부가 쇠약하다. 양생(養生)에 있어 포식을 금하고, 조금씩 자주 먹되 따뜻하고 잘 익힌 연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노인은 의복과 거처 잠자리도 세심한 배려를 해드려야 큰 병을 막을 수 있다.
노인 치료는 일단 기혈(氣血)을 도와야 한다. 동의보감에도 "노인은 질병이 침범해도 땀을 내거나 토하거나 설사시키는 등 공격적인 치료법은 금한다. 너무 쓰거나 찬 약도 금하며 화평(和平)한 약으로 조치한다. 노인은 오장육부의 진액이 고갈돼 있어 자윤(滋潤), 즉 자양분으로 적셔주는 약재가 좋다"고 했다.
한방에서 노인을 전문으로 다룬 최초의 의서로 1천년 전 진직이 쓴 '양로봉친서(養老奉親書)'가 있다. 요즘 같은 가을철 노인설사에는 '칠보단' '섭비환'이 좋다고 나온다. 가래 기침에는 '위령선환' '생강탕' 그리고 정신이 권태롭고 음식생각이 없을 때는 고량강 목향으로 만든 '신수고청환'이 좋다고 했다. 그 외 음식을 위주로 한 노인의 의식주 관리 및 사계절 양생법까지 두루 수록돼 있다. 한방노인과는 양로봉친서 의미 그대로 경로효친 사상을 치료의 근본에 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