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이 크고 살결이 시커멓고 온 몸이 퉁퉁 부었으며 머리통이 쟁반만한 남자가 휠체어를 타고 사무실로 왔다.
나이는 마흔 쯤 되어 보였으며 보라색 한복 비슷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언뜻 그 남자가 북한의 수령 김일성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휠체어를 밀고 온 사람은 나이가 일흔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고 그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그 집의 가정부쯤으로 보이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같이 왔다.
이들은 태극 무늬 비슷한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도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세 사람은 휠체어에 앉은 환자를 극진하게 모시는 것 같았으며 방 안에 들어오자 마자 세 사람이 함께 휠체어에 앉은 남자한테 합장을 하고 90도 각도로 구부려 절을 했다.
그 다음에 나한테도 똑같이 절을 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도전님께서 선생님의 책을 읽고 선생님한테 치료를 받겠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도전님이라구요.
그게 뭡니까?"
곁에 있던 할머니가 대답했다.
"도전님은 옥황상제님한테 계시를 받는 분이십니다.
상제님한테 가르침을 받아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시는 큰 어른이십니다.
도전님은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하셨으며 하늘과 땅에 사람에 관한 일을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옥황상제님한테서 계시를 받아 경전도 많이 쓰셨지요.
우리 같은 까막눈은 잘 알 수 없지만 대학의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이 그 책을 보시고는 옥황상제님한테서 계시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귀중한 말씀이 실려 있다고 하시더군요.
선생님, 우리 도전님의 병을 꼭 고쳐 주십시오."
모르는 것이 없고 못 하는 것이 없다고?
그럼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가.
그런데 왜 제 병은 못 고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나한테는 왜 왔나?
내가 물었다.
"어디가 불편합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ㅇㅇ 대학병원에서 지금까지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는데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성신부전증이고, 다리를 못 쓰십니다.
그리고 누워만 계셔서 욕창이 심합니다.
아프셔서 바로 누워서 못 주무시고 엎드려서 주무십니다.
그리고 불면증도 있으십니다.
혈압도 높고 당뇨병이 심합니다.
선생님만이 도전님을 고칠 수 있다고 도전님이 말씀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기가 막혔다.
이건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다.
이 온갖 염병에 다 걸린 인간이 옥황상제님의 계시를 받는 교주라고?
이런 사람을 내가 고칠 수 있다고?
이건 화타, 편작이 살아와도 고칠 수 없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내가 물었다.
"몸이 나빠진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교주는 말이 없고 할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도전님은 제 아들이니까 제가 더 잘 압니다.
3년 전에 기침을 많이 해서 병원에 모시고 가 보았더니 천식이라고 하더군요.
도전님은 그 때 인왕산에서 백일수도를 하고 계셨는데 오랫동안 잠도 안 주무시고 음식을 제대로 못 드셔서 몸이 약해지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식약을 먹었으나 낫지 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당뇨병은 그전부터 있으셨구요.
그 얼마 뒤부터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걸음을 잘 못 걸으시더라구요.
못 걸으시니까 누워서 글만 쓰시고 이젠 영영 못 걸으시게 된 겁니다.
요즘 혈액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씩 하고 있는데 혈압이 몹시 높고 몸이 자꾸 붓습니다.
도전님은 진리를 깨치시고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무리를 해서 병이 나신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도전님의 병을 꼭 고쳐 주십시오.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이제 보니 할머니는 교주의 어머니고 할아버지는 교주의 아버지구나.
제 아들을 신처럼 떠받들다니.
희한한 사람들이며 희안한 종교로다.
자신이 없지만 이 교주의 병을 한 번 고쳐 보자.
하다가 안 나으면 할 수 없고, 돈은 많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교주의 몸을 자세히 진찰했다.
맥박은 빠르고 가늘고 매끄럽다.
결대맥이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군.
말기 신부전증, 천식, 하반신 마비, 욕창, 고혈압, 말기 당뇨병, 불면증, 간경화증, 협심증, 녹내장, 동맥경화증, 말초혈관장애......
그리고 과대망상증?
대체 이 사람한테 무슨 처방을 해야 하나.
이 괴물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으나 묘안이 없다.
내가 말했다.
"병이 몹시 깊어서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다만 편안하게 빨리 죽을 수 있는 약이 있을 뿐입니다."
할아버지가 애원을 했다.
"우리 도전님은 꼭 나으셔야 합니다.
옥황상제님의 계시와 명을 받아 앞으로 세상을 인도하고 구하실 분입니다.
도전님이 받은 계시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 도전님이 인류를 구하고 우리 나라를 천국으로 만드실 것이라고요.
세상을 개벽하실 분이 이렇게 돌아가실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죽게 될 환자를 많이 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도전님이 옥황상제님한테 계시를 받으셨는데 선생님한테 가면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
생님이 꿈에도 나타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선생님이 도전님을 꼭 살리실 것이라고 믿고 왔습니다."
점입가경이로군.
내가 교주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옥황상제한테 계시를 받았다고?
뭐 내가 꿈에 나타났다고?
나는 아무 사람의 꿈 속에도 들어간 적이 없거늘....
할 수 없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처방을 해 보자.
귀신이 돕고 하늘이 도우면 기적이 일어나서 이 사람이 살아날 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도 아니면 몇 달 안에 죽게 될 이 사람이 1-2년쯤 더 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지 사람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다 하면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여러 가지 병이 한데 얽혀 있어서 한꺼번에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합니다.
먼저 하반신 마비와 욕창부터 치료를 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어느 것이든 나을 것이라고 장담은 못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시든지 꼭 고쳐만 주십시오.
선생님이 치료하시면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잠자코 있던 교주한테 물었다.
"정말로 나를 꿈 속에서 보았습니까?
그리고 나한테 가면 나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까?"
그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분명하고 위엄 있게 말했다.
말하는 것을 보니 과연 교주다운 위엄이 있었다.
"네, 거사님의 책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기도를 하던 중에 상제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 번이 아니고 세 번을 연거푸 들었지요.
네 병은 거사님한테 가면 고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소리지만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동안 거사님이 나타나셔서 저를 고쳐 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거사님을 보니 꿈에서 본 모습과 꼭 같군요.
상제님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거사님이 틀림없이 저를 고쳐 주실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병을 고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이 한꺼번에 입을 맞추기라도 했는지 똑 같이 말했다.
"선생님은 도전님의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옥황상제님이 점지하신 분입니다.
꼭 좋은 처방을 해 주십시오.
선생님이 아무 처방이라도 해 주시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나을 것입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담!
빠져나갈 방법이 없네.
에이 갈 수 있는데까지 한 번 가 보자.
나는 욕창 치료약으로 생기액을 바르게 하고 하반신 마비에는 구룡목을 달여 먹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오원단을 처방했다.
나는 이것을 바르면 욕창이 차츰 낫고 또 이것을 먹으면 마비가 풀릴 것이며 또 다른 것을 먹으면 심장병이 낫고 불면증이 없어질 것이라고 한참 설명을 해 주었다.
아니 열심히 사기를 쳤다.
나도 믿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했으니 그게 사기가 아니고 무에랴.
이 교주가 혹세무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주를 미혹하는도다.
이 사람이 나을 확률은 천억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뭐 운이 억세게 좋으면 나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해도 이 사람이 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희망을 무참하게 깨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연거푸 고맙다고 절을 해대면서 큼직한 돈다발을 내어놓고 돌아갔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옥황상제님,
제발 자칭 당신의 제자를 살려 주시오.
그는 아무래도 며칠 안에 죽을 것 같소.
그 뒤로 나는 그들을 잊고 지냈다.
교주는 틀림없이 열흘 안에 죽을 것이고 죽고 나면 나를 찾아올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보름쯤 뒤에 교주의 아버지가 사무실로 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도전님의 병세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잠도 잘 주무시고 욕창도 거진 나았으며 걸어디니기도 하십니다!
선생님은 천하에 둘도 없는 명의십니다."
"헉! 뭐라구요?
나았다구요.
걸어다니기도 한다구요? ...그
럴 리가!"
"도전님이 선생님이 주신 약을 꼭 껴안고 '이 약이 나를 살릴 것이다,
이 약이 반드시 나를 살릴 것이다' 하시더군요.
그러시고는 늘 선생님 약을 품에 안고 계셨습니다.
주무실 때에도 약을 안고 주무셨지요.
약을 드실 때에는 찬물을 한 그릇 떠 놓고 30분 동안 정성을 드리고 또 제단에 바쳐서 상제님한테 감사를 드리고 나서야 드셨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선생님이 주신 약으로 반드시 도전님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했지요.
우리 신도들 20명이 10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철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선생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도전님의 병이 완전히 나을 수 있도록 다른 약을 더 주십시오."
"..................!"
내가 말했다.
"병이 나은 것은 내 약의 힘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기도와 정성 덕분입니다.
완전히 다 나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해 주십시오."
나는 교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은 약은 모두 챙겨서 주었다.
밥은 먹지 않고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만큼 많은 양이었다.
노인은 종이봉지에 싼 현금 다발을 내놓으며 말했다.
"우리 신도들이 마련한 돈의 전부입니다.
도전님을 살려주신 은혜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작은 정성으로 알고 받아주십시오."
4개월쯤 뒤에 교주의 병은 완전히 나았다.
넉 달 전에 휠체어를 타고 왔던 사람이 제발로 걸어서 내 방에 들어왔다.
교주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체격이 우람했다.
부기도 내리고 욕창도 다 나았으며 얼굴빛도 훤해졌다.
다른 모든 아픈 증상은 다 없어졌지만 혈액투석은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신부전증을 고칠 수 있는 6개월 동안 보내 주었다.
아마 교주의 병은 틀림없이 나았을 것이다.
그 뒤의 일은 연락이 없어서 모르겠다.
이 사람의 병은 내가 고친 것도 아니오,
내가 준 약이 고친 것도 아니다.
교주 스스로의 노력과 정성과 신념, 그리고 그 어머니, 아버지 신도들의 정성이 고친 것이다.
약이 고칠 수 없는 병을 마음으로 고친 것이다.
대개 병을 고치기는 쉽다.
다만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을 마음으로 고쳤다.
그리고 그 댓가로 내가 돈을 받았다.
그러니 다 좋은 일이 아닌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약초진리교 교주 운림선사는 약초신의 계시와 명을 받들어 지구의 온 육지와 뭇 섬에 사는 만백성들에게 거룩하고 엄숙한 약초신의 말씀을 선포하노니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나를 믿는 자는
도통하여 천상천하에 모르는 것이 없고
천하무적의 슈퍼 맨과 슈퍼 우먼이 되어
온갖 옘병과 지랄병과 미친 병과 기타 모든 만병이 예방, 통치되며
영원히 죽지 않고 병들지 않는 불사불멸의 신선이 되어
태평양과 히말라야가 천억 번을 마르고 닳도록 살면서
세계 모든 나라의 왕과 왕비가 되어
지상의 모든 부와 명예와 권세를
자손 억만 대까지 세세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인 즉
너희들은 진실로 진실로 나를 따르겠느뇨?"
운림도 교주 흉내 한 번 내어 봤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운림(wun123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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