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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청학정에서 속초 학무정까지

영지니 2008. 2. 24. 22:48

강원도 고성에 있는 천학정.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고성 청학정에서 속초 학무정까지


7번 국도는 우리나라의 동해안을 끼고 형성된 도로다. 하기에 7번 국도는 우리나라의 모든 도로 중에서 가장 절경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을 하여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수많은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보면 정자가 나온다. 많은 정자가 있는 곳. 그 곳이 7번 국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군에서 시작을 하여 부산까지 동해안과 접해 있는 지역에는 어떤 경치에 어떤 정자가 있을까? 그리고 그 정자에는 어떤 의미와 역사가 전해지고 있을까?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가 본다.


우선은 국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대(臺)와 정(亭), 그리고 루(樓)로 구분이 된다. 그렇다면 같은 정자의 개념인데 명칭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가 없으나, 정과 대는 단층이거나 건물의 밑으로 사람들이 통행을 할 수가 없게 축조가 되어있는 곳을 말한다. 대개는 바다나 강, 바위 위나 언덕 위 등에 위치를 한다. 정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통용을 할 수 있고, 즐기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면 대는 관청 등에서 주로 사용을 하였다. 즉 정은 아무나 출입을 할 수 있으나 대는 특정인만이 출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과 대는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주변의 경관을 관람하는 데는 적소였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루는 2층으로 된 건축물이다. 사방은 막혀있고 아래로는 사람들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루는 공적인 공간이며, 정이 동적인데 비해서 루는 정적인 공간이다. 그렇다면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에는 어떤 정자가 절경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해변만이 아닌 도로 10리 안팎에 있는 정자까지 두루 살펴보기로 한다.


천학정(토성면 교암리 소재)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천학정

 

천학정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기암괴석의 위에 자리하고 있다. 천학정은 1931년에 한치응(韓致鷹)의 발기로 최순문, 김성운과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 겹처마 팔각지붕의 단층 구조로 지어졌다. 교암리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낮은 산을 벗어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산에는 노송이, 밑으로는 기암괴석이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고 있다. 오르는 길에 보면 마을에서 시를 적어 계단 양편에 줄지어 진열을 하였으며 위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면 그 풍광이 가히 일품이다. 천학정은 사시사철 일출이 장관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쪽으로는 청간정, 북쪽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는 이곳은 동해 푸른 바다의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고 하여 천학정(天鶴亭)이라고 하였단다. 하늘에서 학이 내려온다라는 뜻인가 보다. 천학정 위로 오르니 동해의 푸른 물이 넘실대고 2월 초의 찬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기분이 상쾌해진다. 누가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를 짓고 자연과 벗 삼아 살아왔을까? 옛 선인들의 멋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천학정과 동해, 그리고 바위

 

동해를 향해 기암괴석들은 푸른 물과 멋을 견주기라도 하는 듯 펼쳐져 있고 좌측 편 백사장은 겨울 날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며 밀려드는 파도를 맞이한다. 그저 그렇게 수없이 오랜 시간을 파도와 함께 한 백사장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아스라이 먼 옛날 그 모래밭을 달리는 꿈을 꾸고는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몸과 마음은 작은 깃털이 되어 푸른 동해 위를 날아 구름 위로 오른다.

 

중층 누각으로 꾸며진 청간정

     

청간정(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토성면 청간리 소재)

청간정은 관동8경중 하나요, 설악일출 8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청간정은 일반적인 정자가 밑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것에 비해 중층 누각으로 만들어져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청간정은 본래 청간역의 정자였다고 하나 그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조선시대 중종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崔淸)이 중수한 기록이 있어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이후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하였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당시 좌상 송시열(宋時烈)이 금강산에 머물다가 이곳에 들려 친필로 '청간정(淸澗亭)'이란 현판을 걸었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친필이라는 청간정 현판

 

청간정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에 2층 중층 누각으로 지어졌으며, 1884년인 고종 때 전소되었던 것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 등의 발의로 현재의 정자를 재건하였다. 1953년 5월 15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정자를 보수, 다음 최규하 전 대통령의 순시 때 지시에 의해서 예산을 책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의 현판은 이대통령의 친필로 개판하여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청간정은 정자를 에워싼 울창한 송림사이로 넘실대는 동해의 파도와 백사장, 기암괴석 주위를 비천하는 철새 떼. 그리고 주변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산죽이 바람결에 날리는 모습 등 가히 관동팔경 중 수일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청간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동해와 철새 떼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찾은 청간정. 바람에 휘날리는 송죽 사이에 의젓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청간정은 관동팔경 중 일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청간정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벗 삼아 노니는 철새 떼와 기암괴석들. 누구라 경치를 논하겠는가? 감히 누구라 일경이라 함에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청간정은 그렇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동명항 인근에 있는 영금정.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정자다.

 

영금정(속초 동명항 인근) 

속초시 동명항 인근 절벽 위에 자리한 등대 곁에 보면 영금정이라 이름붙인 정자가 있다. 원래 영금정이란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암반 지역을 부르는 말이다. 영금정은 지금보다는 높은 바위산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바위산의 모양이 정자 같아 보였고, 또 파도가 이 바위산에 부딪치는 소리가 신비해 마치 거문고를 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영금정(靈琴亭)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때에 속초항을 개발할 때 이 바위산을 부숴 이 돌로 영금정 옆의 방파제를 쌓아서, 바위산은 없어지고 현재의 널찍한 바위들로 형태가 바뀌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지한 이들에게서 자연은 그렇게 파괴가 되었는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영금정 앞에 있는 바위에는 철새들이 날아든다.

 

바위들을 부르던 명칭이었던 영금정을 따서 속초시에서 영금정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여, 남쪽 방파제 부근에 정자를 하나 만들어 영금정이라 이름하였다. 이 정자는 영금정 바위 위에 세워진 해상 정자로 50m 정도의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다. 해상 정자에서 바라를 바라보는 느낌은 방파제와는 또 다른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정자 자체는 콘크리트 정자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금정을 해돋이 정자라고 부르는데, 정자 현판에는 영금정(靈琴亭)이라는 글을 써 놓았다.

 

영금정에서 동해를 바라다보면 막힌 가슴이 시원하다.

 

지금의 영금정이 비록 바위 위에 볼품없이 지어진 시멘트 건물이라고는 하나 영금정에 올라 동해의 파도소리를 들으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면 옛 이야기가 허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오죽하면 거문고를 타는 소리와 비교를 했을까? 눈을 감고 소리를 들으면 그 안에 오묘한 갖가지 소리들이 사람을 현혹케 한다. 저 소리를 우리 선인들은 거문고를 타는 소리라고 표현을 한 것은 아닌지. 멀리 지나가는 배 한척이 낮은 파도에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고를 반복하면서 떠간다.

 

석호인 영랑호 범바위 위에 자리한 영랑정

 

영랑정(영랑호 속초팔경 범바위 위편) 

영랑정은 동해와 벗하고 있는 석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영랑호의 범바위 위편에 영랑호와 동해를 바라다보는 자리에 있다. 거대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영랑정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는 이곳에는 한국 전쟁 당시 속초지역의 수복에 공이 컸던 11사단장 김병휘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금장대를 건립해 1970년대까지 있었으나 퇴락하고 말았다.


속초시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영랑호에 옛 정자터가 있는데 여기가 영랑 선도들이 감상하며 놀던 곳이다’라는 기록하고 있어 이것을 기반으로 2005년 새로 금장대 터에 신축을 하여 시민공모를 하여 명칭을 영랑정이라고 하였다.

 

속초 팔경 중 하나인 범바위

 

범바위 뒤편으로 영랑정을 오르는 길이 있다. 영랑정을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영랑호와, 동해. 그리고 설악의 위용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평풍처럼 둘러쳐진 설악과 동해, 그리고 영랑호. 그래서 신라 화랑 영랑이 술랑, 안상, 남랑 등과 함께 금강산 수련을 마치고 이곳을 들렸다가 그 아름다움에 빠져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앞으로 보이는 화랑수련장과 화랑공원이 언젠가는 화랑 영랑의 기개를 어린 소년들에게 전해주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랑정과 함께 이곳이 우리 선조들의 기개가 되살아나는 곳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설악산을 들어가는 마을 안에 있는 학무정

 

학무정(속초시 도문동 소재) 

설악산 대청봉에서 발원한 쌍천(雙川) 옆 송림 속에 위치한 학무정은 조선 고종 9년(1872년)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일생을 학문연구와 인재육성에만 전념하신 매곡처사(梅谷處士) 오윤환(吳潤煥) 선생이 1934년에 건립하였다. 정자 모양이 육각으로 되어 있어서 흔히 육모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6면 중 4면에 각기 다른 정자 이름을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남쪽에는 학무정(鶴舞亭), 북쪽에는 영모재(永慕齋),북동쪽에는 인지당(仁智堂), 남서쪽에는 경의재(敬義齋)라고 쓰여 있다. 정자 안쪽으로는 한시를 적은 현판이 13개가 걸려 있고, 천장 중앙에는 용(龍)자가 육각으로 솟은 나무에 적혀 있다. 

 

천정에는 용자를 쓴 육각장식이 있어 이채롭다.

 

오윤환선생은 한학을 전공하였으며, 율곡선생을 가장 숭배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학문이 오묘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벼슬하기를 꺼려하고 향리에 묻혀 학문 연구와 제자 교육에만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효자이기도 한 선생은 3·1운동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무수한 매를 맞기도 하였다. 일제의 삭발령과 창씨개명에도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 상도문리 쌍천가 푸른 송림속에 친척들과 제자들의 협조를 얻어 학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많은 선비들과 함께 시를 읊고 글을 지었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도장으로 삼기도 하였다.


학무정은 동해를 끼고 있는 정자는 아니다. 속초에서 양양쪽으로 향해가다가 설악산을 향해 4km 정도를 들어가면 도문동에서 좌측 좁은 마을길로 들어가 쌍천가 노송 숲에 자리를 하고 있다. 글을 익힌 선비가 지은 정자답게 안에는 한시가 벽에 돌아가며 걸려있다. 천정에는 용(龍)자를 적은 육모형의 돌출된 장식이 있어 멋스러움을 더해 준다.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글을 익히고, 시국을 논했을 것을 생각하면 학무정 어느 하나 소홀히 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학무정 주변은 오래 묵은 노송 숲으로쌓여있다.

 

학무정 주변 숲길을 거닐며 심호흡을 해본다.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오는 신선한 설악의 공기가 싱그럽다.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니 동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정자들이 비교적 정리가 잘되어 있는 것에 비해 무언가 조금 부산하다. 아마 인근에 집들이 있어서인가보다. 부산까지 내리 달려야 할 여정.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속초에는 이외에도 청초정, 침산정, 용초정 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정자는 옛 모습을 하나 둘 잃어가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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