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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의 정자들, 그 감탄과 실망

영지니 2008. 2. 24. 22:51

경포대 해수욕장을 찾아 와 겨울바다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

 

경포호의 정자들, 그 감탄과 실망  

 

경포호는 원래 호수 둘레가 20리가 넘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상류 하천으로 토사가 흘러들면서 호수 면적이 줄어들어 10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늦가을부터 몰려드는 철새들이 찾아와 월동을 하는 겨을 경포호는 또 다른 운치를 준다. 경포호의 주위에는 과거 12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경포대(鏡浦臺),  금란정(金蘭亭), 경호정(鏡湖亭), 호해정(湖海亭), 석란정(石蘭亭), 창랑정(滄浪亭), 취영정(聚瀛亭), 상영정(觴詠亭), 방해정(放海亭), 해운정(海雲亭), 월파정(月波亭) 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포대 해수욕장 입구 로터리 쪽에 보면 천하정(天河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이 정자가 왜 소개하는 곳마다 빠져있는지 궁금하다.  

 

경포호는 자연 석호로 잉어, 붕어, 가물치, 새우, 뱀장어 등 각종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부새우가 많이 잡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입맛을 돋우어 주기도 한다. 또한 적곡(積穀)이라는 조개는 흉년이 드는 해는 많이 나고, 풍년이면 적게 난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결국 경포호는 주변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존을 해온 소중한 자연자원의 보고임을 알 수 있다. 명주의 옛 도읍지가 바로 지금의 경포호 자리였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포호는 달과 애환을 같이 했다. 그래서인가 경포대에서는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늘의 달이요,
둘은 호수의 달이요,
셋은 바다의 달이요,
넷은 술잔의 달이요,
다섯은 님의 눈에 비친 달이란다.


이 경포호 주변의 정자 중에서 경포대와 해운정은 소개를 했기에 남은 정자를 찾아보려고 하루를 꼬박 경포호 주변에서 보냈다. 경포대해수욕장의 푸른 물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음미를 하면서.


경호정 

 

경호정, 상영정, 금란정, 방해정

경포대에서 경포호를 끼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달리다가 보면 2차선도로 안쪽에 산 밑으로 난 길이 있다. 그 길로 접어들면 경호정과 상영정, 그리고 금란정이 경포호를 바라다보고 있다. 다시 2차선 도로와 합쳐지는 곳으로 들어서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인 방해정이 있다. 네 곳의 정자가 길을 따라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이곳 경포호가 얼마나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인지 실감이 간다.


경호정은 강릉시 저동 19-2번지에 소재한다. 경호정은 이곳의 주민들이 결계(結契)하여 건립을 하였다. 경호정은 정면 2칸, 측면2칸의 규모이며, 해서(楷書)와 전서(篆書)로 작성된 액자가 게판되어 있다. 경호정의 옆에는 들창이 달린 또 하나의 건물이 있다. 두 건물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면서 경포호를 바라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옛 시인, 묵객들이 경호정에서 경포를 바라다보며 시 한 수를 읊조리는 멋을 마음껏 누렸을 것 같다.

 

상영정


상영정은 경호정 옆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상영정은 고종23년(1886) 고향의 상영계(觴詠契) 계원 16인에 건립되었다. 현재는 경포대 동쪽의 호수를 향하고 경호정과 금란정의 사이에 있으나 처음에는 오봉산과 영귀암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순종 2년(1908)에 금산의 낙안전의 건너편에 옮겨졌다. 그 후 1938년에는 사천면 박포로 이건되었고, 196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정자의 전면에는 해사 김판서(金判書)가 쓴 <觴詠亭>이라는 액자와 주련이 걸려있다.

 

금란정

 

금란정은 조선 후기 선비인 김형진이 지은 집으로, 경포호가 바라보이는 경포대 북쪽 시루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매화를 심어 학과 더불어 노닐던 곳이라 하여 매학정(梅鶴亭)이라 이름 하였다가 그 뒤 주인이 바뀌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이름을 금란정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재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건물 규모는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앞면에는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옆면에는 <경중별업(鏡中別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방해정

 

방해정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저동 8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산 밑으로 난 길을 따라 경호전, 상영정, 금란정을 지나 합쳐지는 길에서 조금 더 가면 방해정이 길가에 보인다. 방해정은 원래 삼국시대의 사찰인 인월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조선 철종 10년(1859) 통천군수 이봉구가 객사 일부를 옮겨 짓고 만년을 보낸 곳으로 그의 증손 이근우가 1940년에 중수한 바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ㄱ자형 팔작 홑처마 지붕으로 크고 작은 2개의 온돌방과 마루방이 있고 부엌을 달아 살림집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다. 앞면은 모두 분합문으로 만들어, 문을 열면 경포호의 정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가까이 모여 있는 네 곳의 정자를 돌아보면서 2월 6일 다녀 온 해운정에서 맞은 불쾌감은 싹 가셨다. 비교적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고, 가는 정자마다 경포호를 바라다보는 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자 뒤편 노송 숲도 그러려니와, 호수 가를 걷는 사람들의 한가한 모습에서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로움이 생긴 탓이리라.

 

경포대 치안센터 옆에 자리한 천하정


♣ 천하정(天河亭)

경포 치안센터 바로 옆에 보면 천하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 하나가 보인다. 그러나 경호동 동사무소 홈페이지에도, 강릉시청 홈페이지에도 천하정이라는 정자는 나타나지를 않는다. 다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천하정의 사진이 보이는데 그 앞에 한 사람이 해설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관광객들인 양 줄지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있다. 그렇다면 저때만 해도 천하정은 깨끗하게 보존이 되어 있었다는 소리인데 지금은 모습은 흉물 그 자체다.

 

인터넷 검색에서 찾은 천하정 모습 - 설명을 하고 듣는 모습으로 보아 역사가 있는 정자라 생각

천하정 현판에 보면 을해년 여름에 쓴 것으로 나타난다. 13년 전은 아닐테고 그럼 73년 전이다.


지붕은 다 깨져 흙이 쏟아지고 방안에는 너저분하게 쓰레기가 굴러다니며, 바람을 막으려고 마루에 쳐 놓은 바람막이는 찢겨 너불거리고 있다. 마당 한편에는 이동식 화장실과 음료 저장고가 서있고, 집 주변에는 쓰레기가 뒹굴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도깨비 하나 튀어나올 듯하다. 이곳이 문화재이건 아니건, 오래된 정자이거나 아니거나, 지정문제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최고의 관광지라는 경포호 주변에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모처럼 좋아진 기분은 다시 씁쓸해지고 다음 정자를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겨울바다를 찾아 경포대해수욕장의 정취를 만끽하는 사람들. 

 

ㄱ 자형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석란정

 

♣ 석란정

천하정을 돌아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시원한 동해바다와 신선한 공기가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강문동 7번지·경포 호반의 동쪽 송림 가운데 건립된 석란정은 남향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갑인생 동갑계원 21인이 1956년에 건립하였으며, 돌과 같이 견고하고 란(蘭)과 같이 청아함을 계의(契誼)로 상징하여 석란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석란정에는 옥산 이건석과 송파 최견선이 지은 석란정기(石蘭亭記) 등 무려 19개가 되는 시판이 걸려있다.

 

두개의 석란정 현판은 모두 떨어지고, 창호지는 찢겨 너덜거린다. 창살은 깨져버렸다.


석란정은 경포호 주변의 정자 중에서도 뛰어난 정자다. 그러나 석란정을 바라다보니 참 어이가 없다. 걸려있어야 할 두 개의 현판은 모두 마루 위에 놓여있고, 문틀은 다 깨져 나무판으로 막아 놓았으며 문창호지는 성한 곳이 없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석란정 앞에다가 임시 화장실을 놓아두었다. 돌출된 정자 툇마루가 떨어질 것을 걱정해 받쳐 놓은 쇠기둥하며 아무리 비지정 문화재라고 하여도 그래도 경포호 주변 정자라고 버젓이 소개를 하면서 이런 몰골을 만들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정리가 잘 되어있는 창랑정 


창랑정

석란정 바로 옆 숲 속에 서있는 창랑정은 보존이 온전히 되어 있다. 창호지는 찢긴 곳이 없고 주변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다. 창랑정은 임자생 동갑계인 영춘계와 십구동경계(十九同庚契), 그리고 임자계(壬子契) 등 세모임이 합의하여 1962년 건립하고 단청(丹靑)하였다. 현재의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정자의 바닥은 나무로 깔아놓았다. 안은 깨끗이 정리가 되어있고, 단청도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이 되어 있다. 이웃하고 있는 석란정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창랑정의 내부는 깨끗하며, 문창호지도 찢긴 곳이 없이 말끔하다. 

  

이 두 곳의 정자를 한눈에 바라보면서 참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혼자 뇌까린다. 같은 경포호를 바라다보는 정자에 같은 지역, 그리고 운치가 있는 두 곳의 정자가 어찌 이리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걸음은 다시 무거워만 진다.

 

경포호 한 가운데 새바위 위에 서 있는 월파정 


♣ 월파정

창랑정을 돌아 차도로 나오니 경포호 한가운데 정자가 하나 보인다. 지붕과 기둥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을 뿐 벽이 없다. 경포대를 제외한 모든 정자는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방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곳 경포호 주변 정자의 특징인데 월파정은 사방을 다 둘러볼 수 있다.  월파정은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새바위에 위치하며 1958년 기해생(己亥生) 동갑계원 28인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경포호가 겨울이 되어도 얼지를 않아서 월파정을 들어 갈 수가 없지만, 마을 주민들 이야기를 빌리면 30여 년 전에는 얼음 위로 걸어서 월파정에 갔다고 한다. 월파정이 서 있는 바위를 새바위라고 하는 것도 바위에 <鳥島>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란다. 저곳 월파정에 들어가 밝은 달밤에 너른 호수를 바라보는 취흥은 어떠하였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외부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는 취영정


취영정

월파정에서의 상상 속 감흥에 취해 찾아간 취영정. 고종29년(1892)에 취영계 계원들에 의해서 건립된 취영정은 현재 경호동 쪽의 죽도(竹島)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근암과 무릉암의 반석에 계원들의 이름을 각자하였다. 정자의 이름은 사취어영(士聚於瀛)의 뜻에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강문동 269번지에 소재한 취영정 앞으로는 경포호로 유입되는 바닷물길이 있다.


방 한 칸과 마루 한 칸인 취영정은 이곳에서 경포호로 들어가려는 물고기를 낚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다보니 해서체로 쓴 <聚瀛亭>이라는 현판과 많은 시판들이 걸려있다.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자들과는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킬 것 같은 취영정. 걸음을 서둘러 취영정 앞으로 가니 세상에 이게 웬일인가?

 

외부와는 달리 상과 재털이 등이 널려있어 눈쌀을 찌프리게 만든다.


깨끗하게 손질이 된 외부와는 달리 마룻바닥에는 비닐 장판이 깔려있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장판 위에는 상 두 개가 엎어져 있다. 한편에는 재떨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음식을 먹는 장소로 이용을 했는가 보다. 취영정이 개인의 재산이라고 하면 어쩔 수가 없지만 외부에서 이곳 경포호의 정자를 찾아오는 탐방객들은 아마 나처럼 커다란 실망을 하고 돌아설 것이다.


취영정을 나서면서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하다. 결국은 하나 남은 호해정을 찾아가질 못하고 경포호를 떠났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 우리 선조들과, 이곳을 찾아 온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사랑하던 곳. 경포호의 정자들은 그렇게 감탄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경포호를 떠나면서 괜스레 비 맞은 사람처럼 속으로 중얼거린다. “제길 동계올림픽 유치실사단이 이곳에 와서 저런 정자를 보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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