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적 , 역사서

규원사화-6 만설

영지니 2008. 3. 4. 21:12

漫說

天其運乎, 地其處乎, 日月其爭於所乎? 孰主張是, 孰維綱是? 孰居天地之內, 恒推以行是? 意者, 其有機氣之不得已耶? 其運轉而不能自止耶? ! 夫大界列宿,   燦爛明朗, 其光自何, 其大幾何? 觀乎! 千 之岡而行人如豆; 望乎! 百里之海()歸帆似葉; 仰乎! 九萬里之遙而星辰如燭, 其大幾何, 其光何幾?  ! 地天之隔, 非但九萬者里耶! 人行于市而肩尻摩, 車轉于通衢則其 搏. 星辰麗于穹蒼, 則昭昭耿耿, 齊齊整整, 井然有序, 罔或有侵. 孰引是, 孰主張是? 日遠於星, 月近於星耶? ! 亦星居乎最遠耶? 日月之大, 較於列宿, 何如? 洪爐之火, 隔丈而燎之, 則不過微溫; 滿車之氷, 距尋而當之, 則只感微凉. 日月之氣, 來自九萬里而凉熱逼人, 其熱幾何, 其寒凡幾?

하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땅이 멎어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고, 누가 이를 붙잡아 다스리며, 어느 누가 하늘과 땅에 머물며 항상 이를 밀어서 움직이게 하는가? 생각건대 그 곳에는 바탕이 되는 기운이 있어 마지못해 그리되는 것인가, 그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 넓은 세계에 늘어서 있는 별자리를 바라보노라면 멀디멀고도 찬란하게 밝으니, 그 빛은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 크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천 길 높은 산마루에서 살펴보노라면 지나다니는 사람은 마치 콩알만하고, 백리의 바닷길을 바라보노라면 돌아오는 돛단배가 마치 잎사귀 같은데, 9만리의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늘어선 별들은 마치 촛불과도 같으니, 그 크기는 얼마나 되며 그 밝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항차 땅과 하늘과의 간격이 단지 9만리 만 될 것인가? 사람들이 저자거리를 지나다니자면 어깨와 꽁무니가 맛닿이게 되고, 수레가 번화한 네거리를 지나가노라면 곧 그 바퀴가 부딪치게 되는데, 늘어선 별들은 높고 푸른 하늘에서 빛을 발하면서 밝디밝게 반짝거리고 가지런히 질서가 있어 행여나 침범하는 일도 없으니, 누가 이를 이끄는 것이며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는 것인가? 해는 별보다 멀고 달은 별보다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별이 가장 멀리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의 크기는 별들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큰 화로의 불도 열 자 떨어져 불길을 쬐면 단지 따뜻할 뿐이요, 수레에 가득 실은 얼음도 얼마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으면 단지 서늘할 뿐인데, 해와 달의 기운은 9만리의 먼 곳으로부터 오면서도 춥고 더움이 사람을 다그치니, 그 열기는 얼마만한 것이며 그 냉기는 또한 얼마만한 것인가?

且夫! 山岳之莊雄, 河海之汪洋, 萬象森列, 兆物備載, 岳頂一()[]之石, 谷底一莖之草, 自得其所, 互誇厥美; 糞堆蠢 之蟲, 長渚飄泊之藻, 各安其所, 互弄厥質; 孰撑是而不崩, 孰護是而不決? 孰守是, 孰掩庇是? 意者, 宇宙之內蒼茫之外, 別有眞神之主宰歟? 東人則曰桓因主神, 漢土之人則曰上帝, 西域之人則曰佛 , 大秦之人則曰天主, 皆以主宇宙 統萬象爲言. 其造物者之爲性也, 隨民而各異耶? 同 而異用耶? ! 同一而異觀耶? 同一之元首而, 我曰()[], 漢曰帝王, 倭曰命或尊. 諸民之名造翁也, 亦若是而已耶? 飛螢有光,  木放氣,  梨之木能接枝而致盛, 鳧鷄之屬能抱卵而 育. ,  質之外, 別有精力耶? 物物之精力, 能相交而致生耶? 宇宙之內蒼茫之外, 別有精靈, 貫流周包, 推運其體質耶? 漢人之說, 盤古.三皇之開闢創始者, 實耶? 東人之言, 三神之肇判開創者, 眞耶? 余不敢校其善否. 宇宙之內 蒼茫之外, 別有一大精靈, 維綱是, 主張是, 能推運而經營之, 則信矣.

또한 산악의 웅장함과 강과 바다의 광대함 속에는 만 가지의 모습들이 늘어서 있고 억 가지의 사물들이 갖추어 실려 있으며, 산마루의 한줌 돌과 골짜기의 한 뿌리 풀도 스스로 자리하는 곳을 얻어 그 아름다움을 서로 뽐내고, 거름더미에서 꿈틀거리는 벌레와 늘 물가를 떠다니는 풀들도 제각기 자기 자리에 깃들여 그 모양을 서로 희롱하고 있으니, 누가 이를 떠받쳐서 무너지지 않게 하고 있으며, 누가 이를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으며, 누가 이를 지키고 누가 이를 감싸안아 돌보고 있는 것인가? 생각건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참된 신이 있어 이를 주재하고 있는 것인가? 동방의 사람들은 곧 '환인주신(桓因主神)'이라 하고, 한나라 땅의 사람들은 '상제(上帝)'라 하며, 서역 사람들은 '불타(佛陀)'라 하고, 대진 사람들은 '천주(天主)'라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바로 우주를 주재하고 만물을 통치함을 말로서 드러낸 것이다. 그 조물주의 성품은 백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인가, 바탕은 같으면서 드러남만이 다른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온전히 같으나 달리 볼뿐인가? 같은 우두머리를 두고 우리는 '임금'이라 하고, 한나라는 '제왕'이라 하고, 왜는 '' 혹은 ''이라 하니, 모든 민족이 조물주를 이름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을 따름인가? 날아다니는 반딧불에도 빛이 있고 썩은 나무에서도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감나무 배나무는 가지에 접을 붙이면 능히 과실이 무성해 지고, 오리나 닭 등은 알을 품어 능히 새끼를 낳아 기르니, 이것은 몸의 바탕 외에 따로 응결된 힘이 있는 것이며 그러한 사물과 사물들의 응결된 힘이 서로 교접하여 능히 생명을 낳는 것인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정령(精靈)이 있어 일관되게 흐르고 두루 감싸안으며 그 몸의 바탕을 밀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겠는가? 한나라 사람의 말에는 반고(盤古)와 삼황(三皇)이 세상을 처음으로 연 창시자라 하는데 이것이 진실인가? 동방 사람의 말에는 삼신(三神)이 세상을 처음으로 가른 창조자라 하는 데 이것이 진실인가? 내가 감히 그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한 큰 정령(精靈)이 있어 이 세상을 잡아 유지하고 이 세상을 주재하여 펼치며 능히 밀어 움직여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이 될 것이리다.

人生則 溫而動, 靈能慧明; []()()[]殼厥()[], 骨肉梗固, 腐爛而散滅, 不數年而膚肉不留, 不百年而骨骸莫存. 天地之氣, 聚而爲物 爲質, 散則復爲空 爲氣歟? 靈性發於氣質, [氣質]散亡則靈性亦隨而滅歟? ! 天地靈秀之性, 鍾而爲靈, 貞明之氣, 聚而爲體,  沒而靈自不滅耶? 靈旣不()[]則返朝于天耶? 悠悠然, 縱遊乎六合耶? ! 如佛氏之說, 時墮輪回之苦, 重疊而爲人耶? ! 夫蟲蠶卵者, 能知其爲母蛾所産耶? 卵化爲 ,   然索餌而走動, 能知其[從爲](爲從)卵而出者耶?  旣成長, 造繭脫毛而爲 , 暗眠於其中, 使人觀之,   然樂矣. 雖然, 渠能知其方夢而覺夏 之爲 耶?  旣 滿, 則脫殼爲蛾, 穿繭而出, 翩翩然飛()舞於林 , 渠能知其自 而變化者耶? 使人高脫乎其外, 歷觀變化之迹, 則其序瞭然, 曾無毫末之疑. 使蛾自量, 則是個未知從來底一生涯也, 寧知其四變之序耶? 使造翁超脫乎塵外, 達觀乎人生變化之迹, 則是亦若是而已耶?

사람이 살아 있으면 곧 몸은 따뜻하며 움직이게 되고 영혼은 능히 총명하고 밝지만, 사람이 죽으면 곧 몸덩이는 싸늘해져 뼈는 굳어지고 육체는 썩어 문드러져 흩어 없어지게 되니,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피부나 육체는 남아 있지 않고 백년이 못 되어서 뼈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모이면 사물의 바탕이 되고 흩어지면 다시금 공허로운 기운이 되는 것인가, 영혼의 본질은 기운이 모습을 갖춘 다음에 그 곳으로부터 생겨나며 그 기운의 모습이 흩어져 없어지면 영혼의 본질 또한 그에 따라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하늘과 땅의 신령스럽고도 빼어난 본질이 모여 영혼이 되고 곧고도 밝은 기운이 뭉쳐 몸이 되는 것이니 몸은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게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곧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유유히 천지 사방을 떠돈다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부처의 말처럼 운명에 따라 윤회의 괴로움에 떨어져 거듭되게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인가? 살펴보건대, 무릇 한낱 벌레인 누에의 알이 어미인 나비가 낳음으로 해서 자신이 생겨난 것임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알이 부화하여 벌레가 되어 꿈틀거리며 먹이를 찾으러 쫓아다니면서 그 자신이 알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벌레가 자라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그 속에서 깊이 잠드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면서도 즐거워하는데, 그 자신이 곧 잠을 잘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것이며, 여름날의 벌레가 그 자신이 곧 고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고치가 잠에서 깨어나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숲속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그 자신이 고치에서 변화하였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은 멀찌감치 벗어나 그 밖에 있으면서 변화하는 자취를 낱낱이 보게 되니 그 순서가 분명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다. 나비는 스스로를 헤아린다 하더라도 한 생애를 다하도록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도 알지를 못하니, 네번이나 변하는 그 순서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조물주는 세상의 바깥에 벗어나 있으면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자취를 멀리서 두루 바라보면 그 또한 이와 같을 따름이 아니겠는가?

范縝有言曰: [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也. 神之於形, 猶利之於刀. 未聞, 刀沒而利尙存, 豈容形亡而神在哉!] 是說眞耶? 儒曰: [魂升而魄降], 佛曰: [靈魂不滅]而涅槃 地獄 輪回 解脫之說, 最繁. 乃檀儉則曰: [功完而朝天, [歸神鄕.] 又曰: [扶萬善, 滅萬惡, 性通功完乃朝天.]] 佛說可耶, 儒說不 耶, ()[]儉之訓眞耶? ! 范縝神滅之論, 乃發前人所未發者耶? [人何由生], 人何由死? 人生自何, 人死歸何? 生是寄也[]死乃歸耶? 生乃起也[]死則落耶? 生也有涯而死則無涯耶? ! 亦死而後始有, 無限眞善之境耶? 摩利之塹城壇, 則經四千載而健存, 漠南之長城, 歷二千餘歲而猶崇墉屹屹, 慶州之瞻星臺, 過千數百年而尙巍巍然特立. (特立然), 人之所肩擔手磨, 規矩繩墨之者, 能閱累千載而不滅, , 肩擔手磨, 規矩而繩墨()[]之人生, 則與腐血 肉, 盡消永滅於黃沙腐土之中, 不曾精靈之有留耶?

범신(范縝)이 한 말에 이르기를 [모습은 정신의 바탕이요 정신은 모습의 활용이다. 모습에 있어서 정신은 마치 칼에 있어서 날과도 같은 것이니 칼이 없어지고 나서도 날이 남아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어찌 모습이 없어지고 나서도 정신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이 말이 참된 것인가? 유가에서는 [()은 오르고 백()은 내린다] 하였고, 불가에서는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하여 열반·지옥·윤회·해탈 등의 말이 가장 많으며, 단군 임금은 이르기를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으며, 또한 [모든 착한 것을 북돋우고 모든 악한 것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오르게 된다] 하였다. 불가의 말이 맞는가, 유가의 말이 충실한 것인가, 단군 임금의 교훈이 진실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범진의 '정신 소멸론'이 앞선 사람들이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새로운 것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사람은 어찌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사람은 어찌하여 죽는 것인가? 사람은 어디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란 잠시 의지하는 것이요 죽음이 곧 본질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 바로 본질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고 죽음은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인가? 삶이란 것에는 끝이 있지만 죽음에는 곧 끝이 없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역시 죽고 나서야 비로소 무한한 참된 선의 경계가 있게 되는 것인가? 마리의 참성단은 4천년이 지났지만 굳건히 남아 있고, 사막 남쪽의 만리장성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쭈삣하게 서 있으며, 경주의 첨성대는 1천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즉 사람이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긴 것은 능히 수천 년이 지나고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유독 그것을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겼던 사람의 생은 부패한 피와 썩은 살과 함께 모두 사라져서 누른 모래와 썩은 흙 사이로 영원히 없어져 버렸으니, 일찍이 정령(精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宇宙之內 蒼茫之外, 旣有一大精靈,  滿而推運之. 則人之生也, 非但血肉骨骸之, 從氣質中受者也, 更有精神魂魄之, 自精靈而稟者也. 余於儒.佛及檀儉之說, 雖不遑其辨證, 而人生自有不滅之靈, 扶善滅惡, 通性完功, 則身固有死, 而英靈不泯, 能朝天而入神鄕, 則可信矣.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이미 하나의 큰 정령이 있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밀어 움직이는데, 곧 사람의 삶이란 것은 비단 피와 살과 뼈를 그 기운의 바탕에 따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정신과 혼백을 정령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나는 유가나 불가 및 단군 임금의 말에 대해 비록 증명할 만한 겨를이 없으나, 사람의 삶에는 없어지지 않는 영()이 있어 착함을 북돋우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온전히 하면, 곧 신체는 굳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영령(英靈)은 없어지지 않고 능히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昔者永郞, 恨人生之無幾, 慕先聖之化神, 乃棄其率, 入向彌山中, 修道行, 年九十有 兒之色, 鷺羽之冠, 鐵竹之杖, 逍遙于湖山. 神女寶德, 歎  之殘命, 惜朝露之易消, 乃求師學道, 抱琴以歌, 音若靈 之玉簫, 貌若秋水之芙蓉. 是固, 仙之達者也. 若夫, .景公, 泣牛山之落日; 秦皇, 嘆東南之雲氣; 漢武, 有悔於汾水之秋風; 阮籍, 乃哭於窮道落日蒼蒼者, 是人生之悲處耶? 秦皇而無死, 則東南之雲氣竟得無驗耶? 漢武而遇仙, 則建章柏()[]終免黃塵耶? 阮籍而寄生於虞舜之世, 則擊石 石, 率百獸以舞耶? 人之說生者, 是惑耶? 惡死者, 是弱()[]而不知歸者耶? 方其夢而不知夢者耶? 余與人, 皆夢耶? (人之死者)[人之死者]人之說死者, 信可悔, 其始之 生耶? 此世則苦海也[], 人之生也是墜落於苦海者耶? 兒出胎門則便哭, 眞有愁於人世而然耶?

예전에 영랑(永郞)이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고 앞선 성인들이 신이 되었음을 사모하다가 그 식솔을 버리고 향미산(向彌山)에 들어가 도를 닦더니, 나이 아흔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 색을 하고서 백로의 깃으로 만든 관에 철죽(鐵竹) 지팡이를 짚고 호수와 산을 거닐었다. 신녀(神女) 보덕(寶德)이 하루살이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한탄하고 아침 이슬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 하더니, 이에 스승을 찾아가 도를 배우고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는 마치 영묘한 하늘의 옥퉁소 같았고 그 모습은 마치 가을 연못의 연꽃과도 같았다. 이러한 것이 진실로 신선에 이른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우산(牛山)에 떨어지는 해를 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진나라의 시황제는 동남의 구름 기운을 보고 한탄하였으며, 한나라의 무제는 분수(汾水)의 가을 바람결에 후회함이 있었으며, 완적(阮籍)은 갈 길은 어려워지는데 해는 기울어 어둑어둑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니, 이것이 인생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진시황에게 죽음이 없었더라도 동남에서 피어난 구름의 기운에 결국에는 그 영험스러움이 없었을 것인가? 한무제가 신선을 만났더라도 새로운 문장(文章)을 만들어 내었던 백량대(柏梁臺)가 결국에 가서는 누런 먼지로 변함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완적이 순임금의 태평 세대에 더불어 살았더라면 옥쟁반을 두드리며 온갖 짐승을 거느리고 춤을 추었겠는가? 사람으로서 삶을 좋아하는 것은 삶에 미혹되어서이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돌아 갈 곳을 몰라서인가? 한참 꿈을 꾸면서도 꿈인 줄을 모르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사람의 죽음이란 살아 있음을 참으로 한스러워 하다가 죽음으로서 비로소 참된 삶이 된다는 말인가?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이며 사람의 삶이란 것이 바로 고통의 바다에 추락한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아이가 뱃속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진실로 세상에 대해 근심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 夫市朝, 宏樓層疊, 士女繁鬧, 肥馬大道, 長嘶花朝. ! 夫北邙, 古墳衰敗,   荒落, 寒鴉古木, 悲鳴秋風. 前何是熱, 後何是冷耶? 人之生也, 竟若是而已耶? 雲捲而山空, 潮落而海虛, 日月落, 星辰蔽而天地居然()[], 人之死也, 竟若是而已耶? 觀乎! 窮 飢男 女, 屋漏而 裂,  浸 , 雪打戶, 破衣襤褸, 頭蓬面垢. 何樂之樂, 何生之生! 人生而難得公侯豪傑之勢, 高人烈士之趣, 寒 衣, 飢呼食,   役役而終一生, 寧投海而死者可耶? 觀乎蜂蟻! 將者卒者 守者 戰者 役者 産者, 雄雄(窺窺)[雍雍], 來來去去, 運花搬()[], 探腐捨死, 勞勞役役, 勤勤孜孜. 意者, 微物亦有, 久遠之大計耶? ! 旣有生則, 必求其存而不能自止者耶? 人之於生也, 亦若是而已耶? 世如苦海, 夭者爲福而壽者爲禍, 夭而無寃易, 壽而作善難, 人可赴海而死, ()[]其壽者善耶? ! 亦忍痛耐苦, 長其生而積其善, 以入于涅()[], 爲最善耶?

저자거리를 살펴보노라면 거대한 누각은 층층이 겹쳐져 있고, 선비와 계집들은 북적북적 시끄러우며 살찐 말은 큰길가에서 꽃이 피는 아침에 길게 울음을 운다. 그러다 북망산천을 바라보노라면 옛 무덤들은 허물어 쓰러지고 해골은 버려져 흩날려 있으며, 을씨년스러운 까마귀는 고목 위에서 가을 바람에 슬피 울고 있으니, 이곳은 어찌 이리도 활기차며 저곳은 어찌 저리도 을씨년스러운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구름이 걷히면 산은 텅 비게 되고, 조수가 밀려가면 바다는 허전해지며, 해와 달이 떨어지고 늘어선 별들이 가려지면 천지는 꼼짝없이 어둠으로 닫혀지게 되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가릴 것도 변변찮은 굶주린 남녀를 보노라면, 새는 집에 창은 찢어지고 장마에는 부엌이 물로 잠기고 눈발은 집안으로 휘몰아치며 남루하게 떨어진 옷에다 흐트러진 머리와 때가 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즐거움이 무슨 즐거움일 것이며 삶이 무슨 삶이겠는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다 어렵게 공후(公侯)나 호걸(豪傑)의 권세와 고인(高人)과 열사(烈士)의 풍취를 얻어서, 추우면 옷을 입고 주리면 밥을 먹으며 전전긍긍하며 한 생을 마치게 되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 버리는 것이 낳지 않겠는가? 벌과 개미를 보라! 앞선 놈과 따르는 놈, 지키는 놈과 싸우는 놈, 일하는 놈과 새끼 낳는 놈들이 사이좋게 윙윙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꽃의 꿀을 따 옮기고 죽어 버려진 것을 찾아 모으며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생각건대 미물에게도 먼 앞날을 생각하는 큰 계획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삶이니 오로지 그 생존만을 갈구하여 스스로 그치지를 못할 뿐인가? 사람이 삶에 대한 것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인가? 세상이 마치 고통의 바다와 같다면 요절하는 자는 복이 되고 장수하는 자는 재앙이 되며, 요절하면 억울한 것이 없기 쉽고 장수하면 착함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되니, 사람마다 모두 바다로 달려나가 죽음으로서 생명을 단축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역시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그 삶을 늘이고 선을 쌓아 이로 열반에 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가?

余于人之生死, 不敢妄斷而, 宇宙之內 蒼茫之外, 儼存者主宰, 欲扶眞養善, 滅惡消凶, 以率萬物而生人也, 則信矣. 人之於生也, 樂道安分, 忍辛耐苦, 勤孜而毋敢怨, 則善矣. 存性養志, 行善而不怠, 使得俯仰而無愧, 則雖死而無()[], 亦足矣. , 於是乎, 歎聖訓之無 , 而知震域之壽祿能致其久遠也.

내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감히 망령되게 단언하지는 못하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분이 세상을 주재하며 진실을 북돋우고 선을 기르며 흉악함을 소멸시키고자 하면서 만물을 통솔하고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도리를 좋아하고 분수를 지키며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힘써 일하면서 함부로 원망을 하지 않는다면 곧 착하다 할 것이며, 품성을 보존하고 뜻을 기르며 착한 일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아서 하늘을 우르러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기에 비록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다면 역시 족할 것이다. 내가 그러한 까닭에 우리 성인들의 가르침이 없어지고 드물어 진 것은 한탄스럽지만, 우리 진역(震域)의 장수와 복록은 능히 오래도록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莊子》曰: [天道運而無所積, 故萬物成. 帝道運而無所積, 故天下歸. 聖道運而無所積, 故海內服.] 此三者, 皆藉物之性而無所牽滯也. 夫帝王之德, 以天地爲宗, 以道德爲主, 以率萬民 順萬事爲用. 昔者, 神市氏旣開創萬始, 垂範萬類, 體天道而導物性. 及夫檀儉之世, ()[]建都立國, 分邦設牧, 純誠抱一, 以則天範, 秉天心以及于人心, 扶萬善, 滅萬惡. 於是萬民以化, 天下以靖, 及其功完, 則竟朝天而入神鄕. 昭格陟降, 子懷我民, 聖澤神律, 洽被萬世,  歟盛哉! 夫婁承統, 益修德政, 廣采賢能, 啓學而廣敎, 聲聞大彰. 嘉勒續位, 能繼父祖之道, 西 失德, 仗善征惡, 威被天下, 兆民慕化. 於是振振神孫, 繩繩繼位, 歷千二百載而, 國無弑逆簒奪之變, 民無魚肉塡充之禍. 定南夷, 平  兪, 討夏征殷, 建侯于禹域; 逐 肅, 平阿叱, 縱有 骨之肆毒, 乃竟服乎帝德, 細民有犯, 卒化於神韻, 震域萬年之鴻基, 旣原於此也.

《장자》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만물이 다스려지게 되는 것이고, 제왕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천하가 돌아와 의지하게 되는 것이며, 성인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나라 안이 모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물의 본 모습에 의지하는 까닭에 막히는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제왕의 덕은 천지를 근본으로 삼고 도덕을 으뜸으로 삼으며, 만민을 통솔하고 만사를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쓰임으로 삼는다. 예전에 신시씨가 세계를 열고 만물을 비롯하게 하여 모든 무리에게 본보기를 드리우고, 하늘의 도를 체득하여 사물의 본 모습을 계도하였다. 단군 임금의 시대에 이르러 다시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지방을 나누어 제후를 두니, 순수한 정성은 하나로 뭉쳐 곧 하늘 모범이 되었으며, 천심을 잡아 지켜 이로 민심에 미치게 하고 모든 선을 북돋우고 모든 악을 없앴다. 모든 백성이 이로써 교화되고 천하가 이로써 편안히 다스려 지니, 그 맡은 바를 다함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밝디밝게 하늘을 오르내리며 우리의 백성들을 아들과 같이 품으니 성인의 은택과 신인의 법도는 만세에 미치게 되는지라, 오호라 그 융성함이여! 부루가 그 전통을 이어서 더욱 덕스러운 정치를 닦으며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널리 가려뽑아 학문을 계도하고 널리 가르치니 명성이 자자하였다. 가륵이 임금의 자리를 이어 능히 부왕과 조부의 도를 계승하였는데, 서방의 하나라가 덕을 잃음에 좋은 것은 권장하고 나쁜 것은 정벌하여 없애니 그 위세가 천하에 미치고 만백성이 모두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렇게 쟁쟁한 신인의 후손들이 12백년을 면면히 그 보위를 이어가니, 나라에는 임금을 시해하고 보위를 찬탈하는 변고가 없었으며 백성에게는 무참히 짓밟히는 재난이 없었다. 남이와 설유를 평정하고 하나라를 토벌하였으며, 은나라를 정벌하고 제후를 그 땅에 두었다. 또한 앙숙을 쫓아내고 아질을 평정하였으며, 비록 앙골의 방자한 해독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제왕의 덕에 복종하였으며, 가난한 백성이 죄를 저지르기는 하였으나 마침내 신인의 운치에 교화되고 말았으니, 진역(震域) 1만년에 이르는 커다란 기초가 이미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方外之人, 名之以君子國, 言其俗則曰[衣冠帶劒, 好讓不爭.] 郭璞贊之則曰: [有東方氣仁國, 有君子 薰華, 雅好禮讓, 禮委論理.] 胥餘避周, 則慕化歸依, ()[]一枝, 綿延千年, 遺裔尙繁.《王制》則記曰: [仁而好生, 萬物 地而出.] 仲尼歎其道之不行, 則欲乘 浮海而居九夷, 以君子所居爲說. 許愼作《說文》則曰: [唯東夷人人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 不死之國.] 以孔子之乘 欲去, 謂有以. 東方朔著《神異()[], 則以恭坐而不相犯, 相譽而不相毁, 見人有患, 投死救之, 名曰[善人]. 此則言, 能仁而復能勇, 能恭而復能烈, 敬美而不妄言. 具眞人之美德, 兼剛柔之良能也. , 於是乎, 誇爲東夷之人也.

바깥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군자의 나라'라 이름하고, 그 풍속을 일컬어 [의복에 관을 쓰고 검을 차고 다녔으며, 양보를 좋아하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하였으며, 곽박은 찬탄하여 이르기를 [동방에 기운이 어진 나라에는 군자가 있고 훈화(薰華)가 있으니, 우아하면서도 예절과 사양함을 좋아하고 예의로서 이치를 논한다] 하였다. 서여(胥餘)는 주나라를 피해 물러나와 임금의 교화를 사모하여 귀의하고 나라의 한쪽 편에 편안히 머무르니, 면면히 1천년 동안을 그 후예들이 항상 번창하였다. 《왕제(王制)》에 기록되어 이르기를 [어질고도 기르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그 땅에 뿌리를 두고서 나온다] 하였으며, 중니는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여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땅에 머물고 싶다 하였으니, 이는 군자가 거처하는 곳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허신이《설문(說文)》에서 말하기를 [오직 동이만이 큰 것을 쫓으니 대인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며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리니 '군자의 나라'·'불사의 나라'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하였으니, 이로서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고 싶어하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동방삭이《신이경(神異經)》을 지으며 [공손히 앉아 서로를 거스러지 않고 서로 칭찬할 뿐 서로를 헐뜯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보면 목숨을 바쳐 이를 구해 주니, 이름하여 '선인(善人)'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곧 어질고도 또한 용감하며, 공손하고도 또한 굳세며, 아름다움을 공경하면서도 망령된 말은 하지 않으니, 참된 사람으로서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강인함과 유순함의 좋은 점을 두루 겸비한 것이 된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동이인이 됨을 자랑하는 것이다.

《尙書·堯典》曰: [分命羲仲, 宅 夷, 曰暘谷.] 禹貢曰: [()[]惟靑州,  夷旣 .] 則是, 東人之占()[]於海()[]之間也. 冀州有皮服之島夷, 則是, 東人自渤海西北諸島, 遷居冀州近海之地也. 揚州有卉服之島夷, 則是, 東人自揚州以東諸島, 徙居乎江淮之間也. 更有, 作牧之萊夷, 商 珠纖縞之淮夷, 則是, 又東人之相地審勢, 應便營生之一端也. 上古, 人心素樸, 雖異族隣處, 非非常之際, 則必各守其業, 不甚相侵而互觀其勢, 若强弱懸殊而治亂相反, 則必生征戰之端. , []達遣兵 ., 勿理建侯殷地也. , 於是乎, 歎上古我先民之武勇也.

《상서》의 <요전(堯典)>에 이르기를 [따로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 夷)의 땅에 머물며 다스리게 하니 그 곳이 바로 양곡(暘谷)이다]라 하였으며, <우공(禹貢)>에 이르기를 [해대(海岱)는 바로 청주(靑州)인데 우이( 夷)가 이미 그 곳을 다스렸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동방의 사람들이 해대 사이의 땅을 차지하여 살았다는 것이다. 기주(冀州)에는 가죽 옷을 입은 도이(島夷)가 있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발해 서북의 뭇 섬으로부터 기주 바닷가의 땅으로 옮겨가서 거처한 것을 말한다. 양주(揚州)에는 풀 옷을 입은 도이(島夷)가 있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양주 동쪽의 뭇 섬으로부터 강회 사이의 땅으로 옮겨가 거처한 것을 말한다. 또한 목축을 하는 래이(萊夷)와 진주나 비단 명주 등을 거래하는 회이(淮夷)가 있었는데, 이는 또한 동방의 사람들이 양편 지역의 형세를 살펴 가며 편한 곳을 따라 삶을 꾸려 가던 한 모습이다. 상고 시대에는 인심이 소박하여 비록 다른 종족이 이웃하여 있어도 비상시가 아니면 반드시 자기들의 생업을 지키며 서로 침범하지 않고 서로 그 형세를 보고 있다가, 만약 힘의 균형이 두드러지게 차이나거나 정치가 어지러워 반목하게 되면 곧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흘달 임금이 군사를 빈·기로 보내고, 물리 임금이 은나라 땅에 제후를 세운 것 등이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상고 시대 우리 선민들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幸無偏, 技不專, 故天下之物, 無獨享其安而專擅其威者也. 何以知其然耶? ! 瓜牙者, 虎 豹之幸也, 而牛 鹿之不幸也, 頭角者, 牛 鹿之幸也, 而虎豹之禍也.    之捷, ()[], 而鼠 雀之迅, 亦一()[]. 鷹  之擊, 固所難避, 而密林深竇, 可藏鳥 鼠. ()[ ] 鳧鴨, 旣無銳瓜利嘴, 則或高飛遠翔以避 敵, 或迅飛淵潛, 圖脫刑禍.   鶴之嘴, ()[]長誇銳, 則蛇藏穴,  沒泥, 蟹入孔, 蛤掩甲. , 乃鷹    鶴之屬, 各有一()[]一幸(), 而鳥 鼠  鴨 蛇   蟹 蛤之類, 亦各有一()[]一幸[]. 且夫, 蛇鈍於回轉, 則蛙鼠之幸也, 豺 狼無攀木之能, 則猿 之幸也. 斷而能生, 則 蛭之幸也, 全身毒毛, 則夏( )[]之幸也. 及若蜂 之有 , 蟾 之吐液, 龜鼈之縮首, ( )[ ]  之脆尾, 皆於探餌防敵, 禦侮逃命, 莫不爲一()[]一幸也. 於是焉, 以虎豹之强而, 不免轉逐之勞 飢渴之苦, 牛鹿之柔而, 亦得保殖之幸 眠 之樂. 其他, ()[ ]   鷹     鶴之屬之爲强, 鼠 雀 鴻   鳧 鴨之屬之爲弱, 罔或不然. 天下豈有, 不勞之功 無難之安耶?

행운은 치우침이 없고 재주는 독점되지 않는 까닭에 천하의 만물 가운데 홀로 편안함을 누리고 그 위세로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없다.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범이나 표범에게는 다행한 것이 되지만 소와 사슴에게는 불행한 것이며, 머리의 뿔은 소나 사슴에게는 다행이지만 범이나 표범에게는 화근이 된다. 고양이나 족제비의 날랜 사냥 솜씨가 하나의 재주라면, 쥐나 참새의 민첩함 또한 하나의 재주이다. 매와 송골매의 공격은 물론 피하기가 어렵지만, 우거진 수풀이나 깊은 구멍은 새와 쥐를 숨겨 주곤 한다. 기러기와 오리는 본디 날카로운 발톱이나 예리한 부리는 없으나, 혹은 높이 날갯짓하며 멀리 날아올라 적을 피하고, 혹은 재빨리 날거나 연못 속에 잠기어 화를 벗어나곤 한다. 황새와 학의 부리가 길고도 날카로움을 자랑한다면, 뱀은 굴에 숨고, 지렁이는 진흙 속에 잠기며, 게는 구멍으로 들어가고, 조개는 갑옷으로 가리니, 이는 곧 매·송골매·황새·학 등의 무리에게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음이 행운이듯이, ··기러기·오리··지렁이··조개 등의 종류에게도 역시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어 행운인 것이다. 또한 뱀이 몸을 갑자기 돌리는 것에 둔한 것은 곧 개구리나 쥐에게는 행운이요, 승냥이나 이리에게 나무를 타는 능력이 없음은 원숭이에게 행운이 된다. 끊어지고도 능히 살 수 있는 것은 지렁이와 거머리의 행운이요, 온몸에 독이 있는 털을 지닌 것은 여름 벌레의 행운이다. 벌과 전갈이 침을 쏘고 두꺼비가 액을 토하는 것과, 거북이와 자라의 움츠린 머리와 도마뱀의 무른 꼬리 등은 모두 먹이를 찾아다니면서 적의 해꾸지를 막고 도망하여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한 가지의 재주가 곧 한 가지의 행운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하기에 범과 표범이 강하기는 하지만 구르고 쫓는 수고와 주리고 목마른 고통을 면치 못하며, 소와 사슴은 연약하지만 생명을 보존하여 번식하는 행운과 잠자고 먹는 즐거움을 얻은 것이다. 그 밖에 고양이·족제비··송골매·황새·학 등의 강한 무리와 쥐·참새·기러기·오리 등의 약한 무리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늘 아래 어찌 수고하지 않고 얻는 공로와 어려움이 없는 안락이 있을 수 있겠는가!

嘗聞, 天竺有獅子者, 爲四足獸中獨步, 一切生類, 聞其吼則震驚, 魚沒深淵, 獸藏窟穴, 飛禽墜落, 莫不逃竄, 盖百獸之王也. [使][](), 添翼付 , 大小如意, 則必飛食鳥 走食獸 水呑魚 穴呑鼠雀, 跨水陸 通上下而不遺蠢物, 天下復有, 保生之類耶? 雖然, 造翁之意, 自無偏 , 寧有盡驅一世之生類, 獨充貪獅, 堅欲之惡理耶? 是以, 海容寸銖之魚, 山有指小之雀, 樹息飮露之蟬, 泥藏無目之 ,   微 , 亦同[]皇天之洪恩. 然則, 世間豈有,  權專富之家, 獨覇專强之國耶? 故諺曰[未有不亡之國, 曾無不敗之家.] , 於是乎, 知民物之不可無危難, 而覺家國之興亡不得免 覆無常也. 然則, 安可以眠前榮枯, 二三其心也哉!

듣건대 천축에는 '사자'라는 놈이 있어 네발 달린 짐승 중에 독보적이라 하는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그 울부짖는 소리만 듣고도 두려워 놀라서, 고기는 깊은 연못 속으로 잠기고 들짐승은 굴 속으로 숨어 버리며 날짐승은 놀라 떨어지는 등 도망하여 숨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릇 뭇 짐승의 왕이라 하였다. 만약 사자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비늘을 붙여 주며 몸을 줄였다 늘였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면, 날아다니며 새를 잡아먹고, 뛰어다니면서 짐승을 잡아먹으며, 물에서는 고기를 삼키고, 구멍에 들어가 쥐와 참새를 삼키는 등 물과 뭍을 깔고 앉아 상하를 통하며 반드시 움직이는 물건이라고는 남기지 않을 것이니, 하늘 아래 목숨을 보존하는 생물이 또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조물주의 뜻에는 본디 편벽됨이 없는데 어찌 한 세상의 생물을 모두 몰아 사자의 탐욕스런 욕심만 채워 주는 나쁜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다는 한치의 작은 물고기도 받아들이고, 산에는 손가락 만한 작은 참새도 있으며, 나무에는 이슬을 먹고사는 매미가 서식하고, 진흙 속에는 눈이 없는 지렁이가 숨어 있으니, 꿈틀거리는 하잘것없는 벌레 또한 하늘의 큰 은혜를 같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 어찌 권세를 도거리하고 부귀를 독점하는 집안과, 패권을 차지하여 외곬으로 강하기만 한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속담에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패하지 않는 집안은 없다' 하였으니, 내가 그러한 까닭에 백성과 사물에게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가정과 나라의 흥망이 되풀이되어 무상함을 면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므로, 어찌 눈앞의 영고성쇠에 마음이 흔들리겠는가!

天人之際, 覆育之化, 大矣, 未遑長說. 地人之際, 載安之德, 厚矣, 其陶冶感薰之功, 甚巨. 是以國相都民擇里, 未嘗敢忽. 夫相都 擇里者, 欲其選地理風氣之適善也. 盖定都占居, 固不可忽也. 至如闔國全族之於地理風氣, 其休戚之係甚重, 此不敢少忽也.

하늘은 사람에게 있어 감싸 기르는 조화가 위대함에 장황하게 말하지는 못할 바이며, 땅은 사람에게 있어 실어 편안케하는 공덕이 두터우니 인재를 기르고 교화에 물들게 하는 공적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도읍을 선택하고 백성들이 동리를 고르는데 있어서 감히 소흘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릇 도읍을 택하고 동리를 고른다는 것은 땅의 이치와 바람의 기운이 적합하고 좋은 곳을 고르고자 하는 것이니, 도읍을 정하고 살 곳을 결정하는 것은 진실로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온 나라와 온 가족이 땅의 이치와 바람의 기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의 연루됨이 매우 심하니, 이를 감히 가벼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夫天之於物, 不能無厚薄, 卽其地而觀之, 則兆物莫不同浴仁天之恩. 分其地而言(則之)[, ]兆物之得地之, 肥瘠寒煖, 高下 陋, 莫不有()[]. 是以物異南北, 人殊東西, 其盛衰榮枯, 茂殘繁沒之勢, 不可以人力而左右之也. 何以知其然耶? 夫耽羅之橘, 北渡則爲枳, 于山之桃, 越海則實矮, 湖南之竹嶺南之 , 植之[北關](關北), 于而不成, 咸興之梨 咸從之栗, 移之于漢山而味 . 且夫城上之蕨, 葉掩屋 , 架上之鼠,  高於牛背, 蓬生麻中而不扶自直, 葛出松田而直聳千尋. 至如渡淮之橘, 周原之菫()[ ], 莫不如是. 此皆, 物之因於得地之肥瘠 寒煖 高下   之適與不適 幸與不幸, 而其稟得也各殊也.

무릇 하늘이 사물에 대해서는 두텁고 엷음이 없을 수 없으나, 땅을 살펴보면 곧 억조 만물 가운데 어진 하늘의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땅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만물이 얻어 가지는 땅에는 비옥하고 메마르고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고 광활하고 좁음의 차이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물은 남북으로 다르고 사람은 동서로 틀리니, 그 영고성쇠(榮古盛衰)와 무잔번몰(茂殘繁沒)의 형세는 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대저 탐라 땅의 귤이 북으로 건너가면 탱자가 되고, 우산(于山)의 복숭아가 바다를 건너오면 열매가 작아지며, 호남의 대나무와 영남의 감나무는 관북 지방에 심으면 휘어지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함흥의 배와 함종의 밤을 한산(漢山)으로 옮겨 심으면 맛이 변한다. 또한 성벽 위의 고사리는 그 잎이 집의 처마를 덮고, 시렁 위의 쥐는 그 몸이 소 등 보다 높게 있으며, 쑥이 삼밭 속에서 자라면 북돋우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올라가고, 칡이 소나무 밭에서 나면 천길을 솟아오른다. 도회(渡淮)의 귤과 주원(周原)의 바곳이나 씀바귀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사물이 얻어 가지는 땅의 비옥하고 메마르며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고 광활하고 좁은 것 등이 그 사물에 적합한지 아니한지 혹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에 연유하는 것이기에 그 얻어지는 바탕이 각기 틀리게 되는 것이다.

昔者,   之地, 勁寒而不宜五穀, 民皆帶劒佩弓, 幷事遊獵, 其民之生也, 艱險儉嗇,  健勁悍, 長於武風而不()[]文事. 藍侯之地, ()[ ]平蕪, 幷施耕牧, 兼習戎事, 其民, 兼剛柔, 幷文武, 恒爲東國進攻之前驅. 靑丘之地, 風氣溫美, 五穀豊登, 民皆, 衣輕暖而食肥美, ()有冠帶衣履, 天下之槪, 而卒溺於華靡之弊. 且夫雍州之地, 土厚水深, 山岳 莊, 襟抱固密, 風氣勁 . 則秦人居之, 其俗悍然, 有招八州而朝同列之氣. 迫近戎狄, 修習戰備, 競事射獵, ()[]氣力, 於是猛將悍卒, 輩出[]其間. 乃延敵列國, 追亡逐北, 因利乘(使)[便], 宰割天下. 終至始皇之世, 振長策而馭宇內, 呑二周而亡諸侯, 制六合而鞭笞天下. 南郡百越, 北逐匈奴, 胡人(敢不)[不敢]南下而牧, 馬士不敢彎弓而報怨.

옛날 속진(  )의 땅은 매우 추워 오곡을 심기에 적당치 않아서 백성들이 모두 칼을 차고 활을 메고 어울려 일하며 사냥을 하니, 그 백성의 생활은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도 검소하며, 거칠고도 매우 굳세어 무사의 기풍이 빼어났으나 학문을 닦는 일은 소흘히 하였다. 남후(藍侯)의 땅은 광활하고 너른 벌판으로 경작과 목축을 아울러 베풀고 무술도 함께 익히니, 그 백성들은 굳셈과 부드러움을 겸비하고 문무를 아울러 갖추게 되어, 우리나라가 공격하여 나아갈 때는 항상 선구가 되었다. 청구(靑丘)의 땅은 바람의 기운이 온화하여 오곡이 풍성하니, 그 백성들은 모두 가볍고도 따뜻한 옷을 입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갓을 쓰고 띠를 두르고, 옷을 갖춰 입고 신을 갖춰 신는 등 자못 천하의 풍치가 있었으나, 마침내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의 폐단에 빠졌다. 또한 옹주(雍州)의 땅은 흙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산악은 거칠고 장엄함에 속속들이 울창하고 바람 기운 또한 매우 사나우니, 진나라 사람들이 그 곳에 거처하면서 풍속이 굳세어지고, 여덟 주()의 제후들을 불러들여 같은 반열에서 조문을 받는 기상이 있었다. 융적(戎狄)과 근접해 있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여 닦고 익히며 활 쏘고 사냥하는 것으로 기력을 높이니, 용맹한 장군과 굳센 군졸이 그 곳에서 배출되게 되었다. 이에 오랜 적들과 여러 나라가 연이어 망하고 북쪽으로 쫓겨가자 그 유리한 틈을 타고 천하를 나누어 다스렸으며, 결국에는 진시황의 치세에 이르러 오랜 책략을 떨치며 천하로 말을 몰아 종주(宗周)와 성주(成周)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키고는 육종(六縱)의 연합을 제압하여 천하를 채찍질하게 되었다. 남으로 백월(百越)의 땅에 군()을 설치하고 북으로는 흉노를 쫓아내니, 오랑캐들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목축하려 하지 않았고 병사는 감히 활을 당겨 보복하려 하지 못하였다.

班固歎常爲天下之劇, 晦庵推富强之業, 易興以江南之地, 原野底平, .漢分瀉, 風氣散漫, 天産豊饒. 於是民資川澤山林之饒, 食魚稻果  蛤之味, 食物常足, 不憂凍餓, 民生無艱, ()[]自足. 則民皆,    生而亡積聚, 信巫鬼而重淫祠, 是以人[], 輕 放散, 勇而不勁. 歷觀漢籍, 曾無一人, []()於南方而制天下者, 是皆地理風氣之, 所以[]陶冶感薰, 而人之所不能如何者也. 夫南方之濕熱, 北方[燥寒之](之燥寒), 太白.崑崙之廣 , .河湖澤之渟流, 誰安得以,  易而遷徙之哉! 余於天人之際, 固不敢長說; 余於地人之際, ()[]其執定而不能左右之. 夫天下不幸之, 莫大於失地利也.

반고(班固)는 천하가 항상 매몰차 짐을 한탄하더니, 회암(晦庵)이 부강의 기초가 되는 위업을 추진하여 장강 이남의 땅을 변화시키고 부흥시킴에, 낮고도 너른 들판에 장강과 한수가 나누어 넘쳐흐르고 바람의 기운도 매섭지 않아 천연 산물이 풍부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백성들은 강택과 산림의 풍요를 바탕으로 물고기와 벼며 나무와 풀의 열매와 함께 고둥과 조개 등의 맛깔스러운 것을 먹었다. 음식과 물자가 항상 풍족하여 춥고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삶은 어려움 없이 한가로이 만족해하였으나, 곧 백성들이 모두 나태하게 인생을 즐기니 쌓아 두고 모아 둔 것은 모두 없어지고 무당과 도깨비만 믿으며 부정한 사당만을 중하게 여겼다. 이로서 사람들은 모두 약빠르고 방자하며 용감하나 굳세지는 못하였다. 한나라 사적에 남방에서 일어나 천하를 제패한 자가 일찍이 한 명도 없음을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땅의 이치와 바람 기운으로 인해 능히 인재가 길러지고 교화에 물드는 까닭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남방의 습기와 무더위, 북방의 건조와 추위, 태백과 곤륜의 거대함, 장강과 황하 및 호수와 못 등 물줄기의 머무르고 흐름을 그 누가 어찌 바꾸고 옮기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감히 길게 말하지 못하고 또한 땅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단정지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음은 한스러우나, 무릇 천하의 불행 가운데 지리적인 이득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天下之物, 莫不具表裏 本末之異, 天下之事, 莫不兼利害得失之雜. 故觀物者, 不可絞於表末而棄其()[], 創事者, 不可拘於利得而忘其害失也. 是以聖人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 故隨時觀 , 從便行宜, 而天下之事, 始全利得而絶害失. 愚者膠守古法, 而不知 通以致其牽滯, 而家國以喪. 拙者弊[]然捨長取短, 自以爲察而反致其殃, , 天下萬世之弊也. 夫應時順 , 明天道而藉物性者, 惟聖者能之, 天下豈有 聖賢 萬世而無索者耶?

천하의 사물 가운데 표리(表裏)나 본말(本末)의 두 모습을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며, 천하의 일 가운데 이해나 득실의 번거러움을 두루 겸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사물을 관찰하는 자는 겉과 끝에 얽매여 그 속과 밑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일을 시작하는 자는 이득에 얽매여 그 해악과 손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함에 성인은 하늘의 도리에 밝음으로 해서 백성의 일을 살피게 된다. 그러기에 시기에 따라 변화를 관찰하고 편안함을 쫓아 마땅함을 행하니, 비로소 천하의 일은 그 이득이 온전히 되고 해악과 손실은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옛 법에 집착하여 지킬 뿐 그 변화와 융통을 모르니, 이에 구애되고 막히게 되기에 이르므로 집안과 나라는 이로서 쇠망하게 된다. 옹졸한 자는 몸과 마음을 기울여 힘쓰지만 장점은 버리고 단점만 취하므로, 스스로 살핀다고 하면서 도리어 그 재앙에 이르게 되니, 이는 천하의 만대에 걸친 폐단이다. 무릇 때의 변화에 순응하며 하늘의 도리에 밝고 사물의 본바탕에 의지하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천하에 어찌 성인의 어짐을 도거리하고서 그렇게 만세에 걸쳐 무궁무진할 수가 있겠는가?

昔者, 太公始封, 周公問[何以治齊.] 太公曰: [擧賢而尙功.] 周公曰: [後世必有簒殺之臣.] 其後二十九世, 齊爲()[]臣田和所滅. 周公始封, 太公問[何以治魯.] 周公曰: [尊尊[親親而](而親親).] 太公曰: [後世寢弱矣.] 後魯, 自文公以後, 祿去公室, 政在大夫, 陵夷微弱, 遂爲楚所滅. 夫太公 周公者, 世之所稱聖者也, 立業垂憲未嘗有差, [末流而](而末流)之弊猶然如此.  地殊其方, 人各厥族, 而互相對峙, 亘萬古, 爭雌雄而不知其極者, 株守陳古之法, 拘而不知 者, 安能向世間而求其勝也哉! 是故保其長而兼人之長者, , 棄其長而用人之長者, , 棄其長而用人之弊者, . 何以知其然耶? 昔者, .穆公問由余曰: [中國以詩.書法度爲政, 然尙時亂, 今戎夷無此, 何以爲治.] 由余笑曰: [, 中國之所以亂也. 戎夷則不然. 上含淳德以遇其下, 下懷忠信以事其上, 一國之政猶一身之治, 不知所以治, 此眞聖人之治也.] 夫上淳德而崇簡樸者, 戎夷之所以爲强也. 用是而乘中國之繁縟, 則勝; 用是而復學中國之繁縟, 則勞; 若舍是而專學中國之繁縟, 則亡, 此固然之勢也.

옛날에 태공이 처음 피봉될 때 주공이 [제나라를 어찌 다스릴 것인가]하고 물으니 태공이 말하길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공덕을 소중히 여기겠다] 하는지라, 주공이 이르기를 [후세에 반드시 임금을 죽이는 신하가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29() 후에 제나라는 그 땅의 신하인 전화(田和)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주공이 처음 피봉될 때 태공이 [노나라를 어찌 다스릴 것인가]하고 물으니 주공이 말하길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고 가까이할 사람은 가까이하겠다] 하는지라, 태공이 이르기를 [후세에는 침체되어 약해 질 것이다] 하였는데, 그 후에 노나라는 문공(文公) 이후로 녹봉은 공후(公侯)의 집에서 떠나고 정치는 대부(大夫)의 손에 들어가니, 점차 미약해져서 마침내 초나라에 멸망하게 되었다. 무릇 태공과 주공은 세간에서 성자(聖者)라 말하는데, 위업을 세우고 법률을 드리움에 한치의 오차도 없었으나 끝에 이르러 그 폐단은 오히려 그와 같았다. 하물며 땅은 그 자리해 있는 곳이 틀리고, 사람은 각기 그 족속이 다르며, 서로 대치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자웅을 다툼에 그 끝을 모르는데, 펼쳐 놓은 옛 법을 어리석게 움켜쥐고 그것에 얽매여 변화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능히 세상에 나아가 이기기를 바라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자기의 장점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워 겸비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고,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장점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약해 지며,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폐단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망하게 된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옛날에 진()나라의 목공(穆公)이 유여(由余)에게 묻기를 [중국은 시서(詩書)와 법도(法度)로서 나라를 다스리지만 오히려 때때로 어지러운데, 지금의 융이(戎夷)는 이러한 것도 없이 어떻게 나라가 다스려 지는가?] 하니, 유여가 웃으며 이르기를 [이는 중국에 있어서 어지러운 이유가 융이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까닭입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은 충성된 믿음을 품고 윗사람을 섬기니, 한 나라의 정치가 마치 한 몸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까닭이므로, 다스리는 이유를 모르는 이것이 진실된 성인의 다스림입니다] 하였다. 무릇 순박하고 후덕함을 높이고, 간단하고 소박함을 숭상하는 것은 융이가 강자가 되는 이유이다. 이를 이용하고 중국의 복잡하고 번거로움을 극복한다면 곧 승리할 것이요, 이를 이용하면서 다시 중국의 복잡하고 번거로움을 배운다면 곧 수고스러울 것이며, 만약 이를 버리고 오로지 중국의 복잡하고 번거로움만 배운다면 곧 망할 것이다. 이는 진실로 그러한 형세일 것이다.

何以知其然耶? 昔者匈奴, 人衆不能當漢之一郡而能不失其强者, 用其所長以撓其短也. 夫匈奴之地, 鉅野平沙, 風氣凄冷, 五穀不熟, 草菜平蕪. 民皆家氈帳, 跨鞍馬 , 畜牧逐水草而遷徙之. 乘中國之有 , 則一時蜂聚蟻合, 彎弓橫 , 背寒向溫, ()[ ]邊塞. 如勢頭不好, 則撤帳拔鍋, 携妻率子, 縱馬任適, 曾不顧戀. , 其亘百世而爲中國之大 也. 及單于慕華()[ ]美而妻漢妃,  胡俗而嗜漢物, 舍  之堅善而得漢繒絮以馳草棘中, 舍重酪之便美而得漢食物, 棄其簡樸而襲漢之繁縟. ! 學于人者, 難得出藍之譽, 汲于流者, 只酌其餘波. 天下之舍己學人者, 不爲邯鄲學步者鮮矣, 匈奴其無敗亡乎? 雖然, 豈但匈奴而已哉! 昔者拓拔氏, 以胡 之種, 入據幽燕, 承 秦之後而稱覇於中原. 太武帝, 始制叛逆 殺人 姦盜之法, 號令明白, 政事(簡淸)[淸簡]. 於是南擊宋, 北逐柔然, 西定口厭  月氏 波斯諸國, 威名()[]乎當世. 晋氏.五胡之亂, 立國于中原者十六, 南北朝列國之興替不少, 而曾無若後魏之富强矣. 及于孝文帝之出而, 乃發平城, 都洛陽, 改姓易服, 禁北俗之語, 立明堂, 設 雍, 定樂章而 華靡, 立堯 舜 禹 周公 孔子之祠, 而其國卒至敗滅. 夫此數事者, 豈本亡國之事, 而終不可學者耶! 余未嘗以爲然, 此特已舍其長而無存, 求學于人而未就, 只得其末流之病弊(故耳)[]. 於是舊俗已泯而害毒方新, 夫奚[]救其敗沒渙散哉!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옛날에 흉노가 사람의 숫자로는 한()나라 한 개의 군()에도 미치지 못하였지만 능히 그 강함을 잃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하고 그 단점을 꺾은 때문이다. 무릇 흉노의 땅은 거대한 들판과 평탄한 사막으로서, 바람의 기운은 싸늘하여 오곡은 익지 않고 풀과 잡초만이 너른 들에 무성하다. 백성들은 모두 털 담요로 장막을 쳐서 집을 삼고, 말안장에 걸터앉아 말을 몰아 목축을 하며 물과 풀을 쫓아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중국 땅에 틈이 생기면 곧 일시에 벌떼와 개미떼 같이 모여서 활과 창을 비껴 들고는 추운 곳을 등지고 따뜻한 곳을 향하여 변방의 요새들을 사납게 공략하였으며, 형세가 여의치 않으면 곧 장막과 솥을 걷어 뽑고 처자를 거느리고 말을 몰아 마음대로 돌아가 버린 뒤 다시 돌아보는 미련은 두지 않았으니,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의 커다란 해독이 되었다. 선우(單于)에 이르러 중국의 아름다움만을 그리워하여 한나라의 비()를 아내로 맞고 고유한 풍속을 변질시켜 한나라의 물건만을 즐기게 되니, 털옷의 견고하고 좋은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비단솜을 얻어 입고 초원의 가시나무 사이로 질주하였으며, 진한 젓의 편리하고 맛있는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음식물을 얻어먹었으며, 그들의 간략하고 소박한 것은 버리고 한나라의 복잡하고 번거러움만을 물려받게 되었다. 무릇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명예를 얻기 어렵고, 흐르는 물을 긷는 자는 그 자투리 물결만을 퍼내게 되듯이,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배우면서 한단(邯鄲)의 걸음걸이가 되지 않는 것은 드물다 하였으니, 흉노의 패망이 어찌 없을 것인가? 비록 그렇지만 어찌 단지 흉노뿐이겠는가! 옛날 탁발씨(拓拔氏)는 호갈(胡 )의 종족으로 유연(幽燕)에 들어와 자리하며 부건(符健)이 세웠던 전진(前秦)의 뒤를 이어 중원의 패자로 일컬어 졌다. 태무제 때 비로소 반역·살인·간음·도적에 관한 법을 제정하니, 호령이 명백하고 정사가 맑고 간략하였다. 이에 남쪽으로 송()을 치고 북쪽으로 유연(柔然)을 쫓아내고 서쪽으로 압돌과 월씨 및 파사 등 뭇 나라들을 정벌하여 위세와 명성을 당대에 떨쳤으니, ()나라 오호(五胡)의 난리 때 중원에 나라를 세운 자가 열 여섯이었으며, 남북조 때 열국(列國)의 흥망성쇠도 적지 않았으나 후위(後魏)와 같은 부강함은 없었다. 그러나 효문제가 즉위함에 이르러 이내 평성(平城)을 떠나 낙양(洛陽)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성씨를 고치고 복식을 바꾸며, 북쪽 풍속의 언어를 금지시키면서 명당(明堂)을 세우고 벽옹( 雍)을 건설하였으며, 악장(樂章)을 정하여 화려하게 꾸미고는 요···주공·공자의 사당을 세우니, 그 나라는 마침내 패망하게 되었다. 무릇 이런 몇 가지 일들이 어찌 나라를 패망시키는 근본이 되겠는가 마는, 아무래도 배울 만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일찍이 그렇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이것은 특별히 자신들의 장점은 이미 버렸기에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단지 그 말단의 병폐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옛 풍속은 이미 다 없어지고 그 해독만이 바야흐로 새로워지니, 무릇 어느 겨를에 패몰하여 흩어진 것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女眞者, 肅愼之後也. 其古風泯滅, 雖不知書, 然猶有祭天地 敬親戚 尊耆老 接賓客 信朋友, 禮意款曲, 皆出於古聖帝之垂訓, 賢侯之立敎也. 方其奮興於黑水之地也, 以一枝之師, 席卷遼滿, 越長城而屠 京, 禽徽欽而北去, 叱孤主而南竄, 跨幽燕而鞭笞中原之士. 於是趙家君臣, 莫不輸誠納款, 稱臣呼侄, 苟乞殘喘. 秦檜 韓胤之徒, 咸匍匐而獻媚. 此誠, 千古之快事而東方諸族之誇也. 雖然, 其弊在於急一時之利, 踵久壞之法. 及其中葉, 鄙遼儉樸, 襲宋繁縟之文, 懲宋寬柔, 加遼操切之政. 是棄二國之所長, 而倂用其所短也. 於是繁縟勝而財用竭, 操切勝而民人害. 夫國用 , 民心離, 而金安得不亡乎.

여진(女眞)은 숙신(肅愼)의 후예이다. 그 옛 기풍은 다하여 없어지고 비록 글도 알지 못하지만, 여전히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친척을 공경하며 노인을 존경하고 손님을 맞고 벗을 믿는 등 예의바른 마음에 다정하고 성의가 있음은 모두 옛 성제(聖帝)께서 펼친 교훈과 어진 제후들이 세운 교화에서 나온 것이다. 바야흐로 흑수의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한 갈래의 군사만으로 요동과 만주를 석권하였으며, 장성을 넘어 변경( 京)을 도륙한 뒤 휘흠(徽欽)을 사로잡아 북쪽으로 보내고 고주(孤主)를 꾸짖어 남쪽으로 귀양을 보냈으며, 유연(幽燕)을 넘어 중원의 선비들을 매질하였다. 그러자 조가(趙家)의 군신들 가운데 정성과 성의를 보내며 신하를 자칭하고 조카라고 스스로를 일컬어 남아 있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진회(秦檜)와 한윤(韓胤)의 무리는 모두 엉금엉금 기면서 아첨을 떨었으니, 이는 진실로 천고의 쾌사이며 동방 제후의 자랑이다. 비록 그렇지만 그 폐단은 한 때의 이익에 급급하여 오랜 폐악을 답습한데 있었으니, 그 중엽에 이르러 요()의 검소하고 소박함을 깔보고 송()의 복잡하고 번거로운 글을 따랐으며, ()의 너그럽고 부드러움은 제재하고 요()의 엄격한 정치만을 더하게 되었는데, 이는 두나라의 장점을 버리고 그 단점들을 아울러 쓴 격이다. 그러한 까닭에 복잡하고 번거로움이 기승을 부리니 재정은 바닥이 나고, 엄격한 정치가 기승을 부리니 백성들은 피해를 입었다. 무릇 나라의 살림이 고갈되고 백성의 마음이 떠났는데 금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 天異候, 地殊勢, 國異俗, ()[]()[], 安有舍其能而不危者, [安有]學乎人而易其性者耶? , 於是乎, 歎造翁之於物也, 不能無厚薄, 而君師之於政也, 不可不三思之也. , 夫愛親氏者, 赫圖阿羅之人也. 其先, 遠出於  之後, 其民多承, 句麗渤海之衆, 是爲舊檀氏之遺裔, 庶可斷焉. 而今, ! 人  然以小華自耀, 肯認滿洲而爲親乎? 彼等之於女眞, 已以蠻胡斥之, 其於滿洲, 寧怪其罵斥耶? 且彼等之與朝鮮, 角立者已尙矣, 而與諸胡相混者久矣, 其勢安能復合而悔其久分耶? 此不必長說也.

오호라! 하늘은 모습이 다르고 땅은 형세가 틀리며,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사람마다 기술이 제각각 인데, 자기의 능함을 버리고 어찌 위태롭지 않은 자가 있겠으며, 다른 사람에게 배운다고 그 본 바탕이 바뀌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그러한 까닭에 조물주가 사물에 대해 두텁고 얇음이 없을 수 없고, 임금이 정치를 행함에 세번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됨을 찬탄하는 것이다. 지금에 무릇 애친씨(愛親氏)는 혁도아라(赫圖阿羅) 사람이다. 그 선조는 멀리 속진의 후예에서 나왔고 그 백성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무리 중에서 많이 이어받았으니, 이들이 남아 있는 단군의 후예가 됨을 거의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뽐내고 있으니, 만주가 우리와 친척됨을 긍정하고 인정하려 하겠는가? 저들 등이 여진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미 오랑캐로 여기고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니, 우리가 만주를 대하며 욕하고 배척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만 하겠는가! 또한 저들 등이 조선과 더불어 대립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뭇 오랑캐와 더불어 서로 섞인지가 오래이니, 그 형세가 어찌 능히 다시 합치고서 오랫 동안 갈라져 있었음을 후회할 수 있겠는가! 이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至如太祖.努爾哈赤, 蹶然奮興於建州之地, 率八旗之師而席卷滿洲, 創金汗國而虎視東西, 乘明朝之衰而奪遼東, 因流賊之亂而奄據幽燕. 於是, 下 髮之令, 立國史之 , 禽永明而掃淸海內, 服諸汗而倂呑漠北. 其政令之所出, 八旗之所向, 更無堅城强壁矣, 處處蜂起, 復明之志士, 曾不幾何而 敗. 盖自有史以來, 塞外諸族, 入帝漢土者, 未有若此之强且盛者. 我國之士, ()[]夜以南漢之 切齒, 以區區東援壬辰之誼, 欲向明而圖報; , 百年之內, 余保, 其必無是事矣. 夫區區鴨水以南, 數千里之地, 衆寡之數, 已自懸絶, 而又自却女眞以爲胡, 斥滿洲以爲虜, 東控于倭, 西戀于明, 民復奚暇能養其力哉! 然則, 淸之勢威, 可謂猛矣, 然而其後孫, 若至於慕漢俗而棄其本, 操漢語而賦其詞, 后吳姬而嬪越女,  八旗之[]兵而事田獵, 紹堯舜之道而演其說,  膏粱而飽華靡, 則  漢土好說之士, 皆  然以師傅自傲, 夷狄鄙之,  起而戮滿胡, 復孰能禦之哉! 不出數百年, 淸必亡於善 之士也.

태조 누루하치에 이르러 궐연히 건주(建州) 땅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팔기병(八旗兵)을 거느리고 만주를 석권하였고, 금한국(金汗國)을 세우고는 동서를 호시탐탐 살피다가 명 왕조가 쇠퇴해진 틈을 타고 요동을 탈취하였으며, 도처의 도적들로 어지러운 틈을 타고 유연(幽燕)을 점거하여 버렸다. 이에 변발령을 내리고 국사관(國史 )을 세웠으며, 영명(永明)을 사로잡아 나라안을 깨끗이 한 뒤에 뭇 우두머리들을 굴복시켜 막북(漠北)을 아우르니, 그 명령이 나아가고 팔기병이 향하는 곳에는 견고하고 강한 성벽이 없었기에 곳곳에서 벌때 같이 명()의 부활에 뜻이 있는 선비가 일어났으나 다시 어찌할 수 없이 꺾이고 패하였다. 아마도 유사이래 변방 밖의 뭇 종족 가운데 황제가 다스리는 한나라 땅에 들어온 것 중에서 이처럼 강하고도 번성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비록 밤낮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에 대해 이빨을 갈면서 임진년에 신통치 않게 도움을 받은 의리로 명나라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지만, 내가 보장하건대 1백년 안에는 기필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무릇 변변치 못하게 압록강 이남의 수천 리 땅에서 적은 숫자의 무리로 이미 스스로가 절박함에 매달려 있으며, 또한 스스로 여진을 오랑캐로 여겨 물리치고 만주를 호로(胡虜)로 여겨 배척하며, 동쪽으로는 왜놈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 서쪽으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자 하니, 백성들이 다시 어느 겨를에 능히 힘을 기를 것인가! ()의 위세는 가히 맹렬하다 할 것이지만, 만약 그 후손들이 한나라 풍속을 사모하여 자신들의 근본을 버리고 한나라 말로서 글을 짓고 오나라 계집과 월나라 계집을 황후와 비빈으로 앉히며, 팔기병을 몰아 밭에서 사냥하고 요순의 도를 이어 그 말을 치장하며, 고량진미를 배불리 먹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에 만족해한다면, 곧 앵앵거리던 한나라 땅의 말하기 좋아하는 선비들이 모두 시끌벅적하게 스스로를 거만히 스승이라 여기고 이적(夷狄)을 천하게 여기며 무리 지어 일어나 만주의 오랑캐들을 도륙할 것이니, 누가 다시 그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반드시 떠들기 잘하는 선비에게 망할 것이다.

若天假余以再生, 使置數百年之後, 則余可服東服而操淸語, 跨駟馬而說淸帝, 談同祖, 陳利害, 與朝鮮倂據遼滿 幽營之地, 北誘野人而爲前驅, 東聯倭而使撓其南鄙. ! 然後, 朝鮮之强可復, 而漢之慢可挫矣. 不然者, 今朝鮮之勢, 滔滔日下, 只管虛弱而不思奮勵, 不出數百年, 朝鮮必復敗於强 矣, 頹然孰能支之乎.

만약 하늘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수백 년 뒤로 놓아두기만 한다면, 곧 나는 우리나라 옷을 입고 청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앉아 청나라 황제를 설복하여 우리가 같은 조상임을 얘기하고 그 이해 득실을 나열할 것이니, 조선과 더불어 요만(遼滿)과 유영(幽營)의 땅에 나란히 웅거하여, 북으로는 야인(野人)을 꾀어 선봉으로 삼고 동으로는 왜()와 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남쪽의 천한 종족들을 휘어잡게 하자고 할 것이다. 무릇 그러한 후에야 조선의 강성함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한나라의 거만함은 좌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조선의 형세가 저무는 해를 따라가듯 하기에 단지 허약함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다시 패망할 것이니,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능히 지탱하겠는가!

余嘗論之, 强國之要, 有三. 一曰[地廣而物博], 二曰[人衆而合], 三曰[恒守其性而不失其長]. 此所謂地利人和及[保性也. 而朝鮮則, 得地利而不全, 失人和]而亡其性, 此萬世之患也. 何謂得地利而不全. 夫朝鮮(), 北連大荒, 則凍天氷地斷我後退之路; 西接蒙古, 而萬里流沙斷我左展之臂. 西南隣漢土, 而無泰岳峻峙長江大河之限, 則其勢易於進攻, 難於防守. 東南阻大海, 而無前進一步之土. 且漢人者, 盤據萬里金湯之地, 容百族以爲衆, 蓄布粟以爲富, 鍊百萬之師而以爲强, 則恒涉野跨海, 以侵西鄙. 時有 强桀 者, 蹶起於北方, 則爲後顧之慮, 必來 攻. , 海洋萬里, 各據島嶼, 有事則以易自保, 無事則順風駕帆, 任志來寇, 譬如床下 之恒致其苦. 若我常强而無衰, 則可抑漢士而郡其地, 斥倭寇而鎖其海, 可號令天下, 囊括宇內也. 若我勢一弱, 則敵騎長驅, 蹂 闔國, 虜掠吏民, 焚燒閭里. , 所謂得地利而不全者也.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강한 나라의 요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하였다. 그 첫번째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한 것이고, 그 두번째가 사람이 많으면서 화합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항상 그 본바탕을 지키며 자기의 장점을 잊지 않는 것인데, 이는 지리적 이익과 사람의 화합 및 본바탕의 보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 되며, 사람들은 화합을 잃은 데다 본 바탕을 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만세에 걸친 근심이라 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익을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된다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무릇 조선의 땅은 북으로 대황(大荒)과 연결되어 있으니 곧 얼어붙은 하늘과 빙판 같은 땅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있고, 서쪽으로는 몽고와 접하니 만리에 뻗친 사막이 우리의 왼쪽으로 뻗은 팔뚝을 끊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한나라 땅과 인접하여 있으나 태산의 험준함이나 장강의 큰 물줄기 같은 경계가 없기에 곧 그 형세가 나아가 공격하기는 쉬우나 지켜 방어하기는 어렵고,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땅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만리에 뻗친 철옹성 같은 땅에 자리잡고 살면서 수많은 종족을 포용하여 이들로 그 무리를 삼고, 베와 곡식을 축적하고 1백만의 군대를 훈련시켜 이로서 부강함을 삼으며, 항상 들을 건너고 바다를 뛰어 넘어 그로서 서쪽의 천한 종족들을 침략하였다. 때때로 뛰어나게 강인하고도 굳세어 굴하지 않는 자가 나타나 북방에서 떨치고 일어나면 곧 뒷날의 우환을 염려하여 반드시 와서 으르고 공격하였다. ()는 바다 1만리의 크고 작은 섬에 제각기 살면서 유사시에는 쉽사리 스스로를 보호하다가 무사하면 곧 순풍에 배를 몰아 마음대로 와서 노략질을 하니, 마치 마루 아래의 등에가 항상 골치인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항상 강하여 쇠퇴함이 없으면 곧 한나라 선비들을 눌러 그 땅에 군림하고 왜구를 배척하여 그 바다를 봉쇄할 것이니, 가히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주머니 속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곧 바로 적의 병사가 멀리로부터 말을 몰고 와서 온 나라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며 고을을 불사를 것이니, 이것이 소위 지리적인 이익은 얻었으나 온전한 것이 못되는 바이다.

昔者, 蚩尤氏卽帝位於 鹿, 屹達陳兵於 ., 藍侯建四侯於殷地, 奄薄姑王誘三監而唆武庚, 幾撓周室, 徐偃王抑宗周而王潢池之東朝三十六國. 後世, 遼 金 淸者, 皆起於舊朝鮮[]而有中原. 高句麗之方盛也, 强兵百萬, 南擊吳., 北挑幽燕 齊., 恒虎威於漢方. 百濟則跨渤海而略遼西 晉平, 越草海而占越州. 新羅[]鯨濤萬里, 陳雄兵於明石, 刑白馬而盟赤關. 此皆, 我强而易於攻彼, 是得地利也.

옛날에 치우씨는 탁록에서 제위에 올랐고, 흘달 임금은 빈·기에 병사를 주둔시켰으며, 남후는 은나라 땅에 네 제후를 세웠고, 엄박고왕(奄薄姑王)은 삼감(三監)을 꾀고 무경(武庚)을 부추켜 주나라 왕실을 거의 휘어잡았으며, 서언왕(徐偃王)은 종주(宗周)를 누르고 황지(潢池)의 동쪽을 다스려 서른 여섯 나라로부터 조회를 받았다. 그 뒤에 요()와 금() 및 청() 등이 모두 옛 조선의 땅에서 일어나 중원 땅을 차지하였으며, 고구려가 막 번성하려고 할 때에는 강병이 1백만으로서 남방의 오와 월을 치고 북방의 유연(幽燕) 및 제.(.)등과 싸움을 일으키는 등 항상 한나라 땅에 위엄을 세웠다. 백제는 발해를 뛰어넘어 요서와 진평을 공략하였고 초해를 건너 월주를 점령하였다. 신라는 1만리 길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 명석(明石)에 뛰어난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백마를 잡아 적관(赤關)의 맹세를 받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강하면 저들을 공략하기 쉬운 것이니 이것이 지리적인 이익이다.

若夫檀氏之世, 有  兪之寇, 列國之時, 箕氏蒙東胡之侵, 丸都焚蕩, 后妃被虜, 平壤敗沒, 而公侯世族及士民之被掠者二十八萬. 黃山將殞, [ ]( )城陷, 白馬江頭, 胡馬爭嘶, 落花岩畔, 芳魂亂飄. 忽汗之滅, 而渤海之民放散四處, 雖謀復圖興, 數百餘年而終致其殘滅. 夫勝朝以後累百年間事, 誰肯 顔而過問哉! 降至壬辰之役而八域魚肉, 丙子之禍而州里蕭然.  ! 今世之人, 溺於虛文, 閒於衰弱, 棄其道而咀宋儒之餘唾, 貶其君而比外邦之臣僕. , 歷觀近世之往事, 傍察今代之趨勢, 舍大猷而謀小()[], 擲公戰而圖私益,  公(宣而)[室以]循其家, 漁細民以肥其腹, 而以區區零 之事,   然醉中談夢 蝸角爭勝; 滔滔之勢, 日下而不振, 已無我力而謀賴於人, 此勢已孤弱而倂亡其本性也. 後世若有强 者, 代淸而興則, 必脅其主而誘其臣, 郡其地而隸其民矣. 今日之所以, 溺於安逸而茫然無爲者, 豈非後日, 呼飢 寒之因耶? 余之所謂, 不出數百年而必爲强 所敗者, 豈矯激之語耶? !

무릇 단군의 치세 때는 설유의 노략질이 있었고, 열국시대에는 기씨(箕氏)가 동호의 침략을 입어 환도성이 깡그리 불타고 후비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평양이 패망하여 몰락하니 공후(公候)와 세족(世族) 및 선비와 백성 등을 노략질해 간 숫자만 28만이었다. 황산벌에서 장군이 운명하고 사비성이 함락되자 백마강 머리에서 오랑캐 말들이 다투어 울고 낙화암의 물가에는 꽃다운 넋들이 어지러이 떨어졌으며, 홀한(忽汗)의 멸망으로 발해의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비록 부흥을 도모하기를 수백여 년이었으나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여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무릇 고려조 이후 수백년 간의 일을 그 누가 기꺼이 나서서 얼굴을 붉히며 물어 오겠는가? 아래로 임진왜란의 어려움에 이르러서는 팔도가 진창이 되었으며, 병자호란의 재앙을 만나서는 고을들이 쓸쓸하였다. 더욱이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헛된 글에 빠져 하릴없이 쇠약해지고, 자신의 도는 버리고 송나라 유생이 뱉은 침을 곱씹으며, 자신들의 임금을 깎아 말하여 외국 신하의 몸종에 비기고 있다. 대저 근세의 지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지금 세대의 추세를 그 곁에서 관찰해 보면, 큰 계책은 버리고 작은 욕심만을 꾀하며, 공동을 위한 싸움은 내팽개치고 사사로운 이익만을 도모하며, 조정을 좀먹어 이로 가문을 다독거리며, 가난한 백성들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배를 살찌우며, 자질구레한 일들을 가져다 희믈그레한 눈매로 취중에 꿈 얘기하듯 하면서 쓸데없는 승부나 다투고 있다. 이처럼 세상의 흘러가는 형세가 마치 저무는 해와 같아서 떨치고 일어서지 못하고 이미 스스로의 힘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자 하고 있으니, 그 형세는 이미 나어린 고아가 아울러 그 본 바탕 마저 잃은 꼴이라 할 것이다. 후세에 만약 강한 이웃이 있어 청나라를 이어서 일어난다면, 곧 반드시 우리의 임금을 협박하고 그 신하를 꼬여 이 땅에 군림하며 이 백성들을 노예로 부릴 것이다. 오늘날 안일함에 빠져서 우두커니 아무일 없이 있는 것이 어찌 뒷날에 주리고 춥다고 울부짖는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강한 이웃에게 패하고 말 것이라고 내가 일컬은 것이 어찌 지나치게 과격한 말이라고만 하겠는가. 오호라 슬프도다!

昔者, 檀儉之肇基立業也, 以無爲爲道, 以寧靜爲行, 扶善滅惡, 入孝出忠, 此誠(萬歲之聖)[萬世聖之]萬世之聖訓也. 雖然, 後屬疎遠而益相分, 風土互殊而別其業. 且膠守陳法而不知應變, 遠事進攻以求攘拓, 而其功不得永固, 歷檀氏千數百年之隆運而已. 作列國分治之勢, 於是人和已失而地利亦去. 雖三國與渤海者, 得振古威以光我國, 而其後無足可聞者.  ! 金庾信與太宗王, 恨麗.濟之交攻, 憤國威之不揚, 乃誘唐兵而滅其同族, 奉封策而辱其祖宗, 實爲萬世之開醜. 夫羽翼折, 則鵬失扶搖之勢, 唇已亡, 則齒不免凍寒矣. 新羅旣引敵國而 同族, 棄祖宗之土而不能復. 夫內 其親, 外親 敵, 而能無孤弱, 則天下之人, 亦可倒行逆施而無所 也, 割股充 而無所 也; 造翁豈有, 如斯非理耶!

옛날에 단군 임금이 나라의 기초를 열어 위업을 세우고 무위의 도로서 고요히 행함에, 선을 북돋우고 악을 멸하며, 들어서면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고 나서면 나라에 충성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만세에 걸친 성인의 교훈이다. 비록 그러하나 후손들이 점차 소원해 지고 게다가 서로 나누어지게 되니, 풍토가 서로 틀림에 생업을 서로 달리하게 되었다. 또한 진부한 법에 얽매여 변화에 순응할 줄 모르니, 멀리 원정을 나아가 공략하여 오랑캐를 내쫓고 땅을 넓히고도 그 공덕을 영원히 굳히지 못하고 단조(檀朝) 1천 수백 년의 융성함에 지날 뿐이었다. 열국 분할통치의 형세를 이루고 나자 인화(人和)는 이미 잃어버렸으며, 지리적 이득 역시 없어지고 말았다. 비록 삼국이 발해와 더불어 옛 위세를 얻어 떨치고 우리나라를 빛내었으나, 그 후에는 그다지 귀 기울일 만한 것이 없었다. 항차 김유신과 태종왕이 고구려와 백제가 번갈아 침공해 옴을 한탄하고 나라의 위세가 드날리지 못함을 분하게 여기다가, 이에 당나라 병사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키고 당의 봉책을 받들어 조종(祖宗)을 욕되게 하였으니, 실로 만세에 걸친 추악함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무릇 날개 깃이 꺾이면 곧 붕새는 힘차게 나는 기세를 잃어버리게 되고, 입술이 없으면 곧 이빨이 시려움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신라는 이미 적국을 끌어들여 동족을 죽였으며, 조종(祖宗)의 땅을 버리고는 다시 회복하지 못하였다. 대저 안으로 친척을 원수로 여기고, 밖으로 원수나 적들과 친하게 지내고도 능히 외롭고 약해지지 않는다면, 곧 천하의 사람들 역시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시행하여도 어리석지 않다 할 것이며, 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고도 굶주리지 않았다 할 것이다. 조물주에게 어찌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는가!

宇宙之內 蒼茫之外, 果有一大精靈, 貫流周包而推運之者耶? 造翁之生人也, 欲其養善滅惡, 以率萬物者耶?  質之外, 果有精靈, 能扶善滅惡, 通性完功, 則身固有死, 而靈可以朝天入神鄕耶? 人之於生也, 只可安分樂道, 忍辛耐苦, 而無怨則足耶? 存性養志, 行善而不怠, 使得俯仰無愧, 則雖死而無餘亦足耶?   噫! (此數者者)[此數者者]此數事者, 豈可(易以)[以易]爲言哉! 余誇爲東夷之人, 可對天下而無愧乎! 余歎上古之武勇, 而今世之人, 皆可不勞戈戟, 東斥西攘, 使國復置於富强之域耶?   噫! 此數事者, 今雖弊其舌而說之, 乃算死兒之齡而已也, 亦復何大益之有. ! 幸不偏, 技無專, 民物不可無危難, 而家國之興亡, 飜覆無常. 今朝鮮之不幸, 是亦將幸之端歟! 余觀, ! 人心之分裂, 民氣之銷沈, 而不能不投筆長歎也. 嗟桓因乎! 嗟桓因乎! 今片區震域, 一脈遺民, 其將奚爲! 其將奚爲!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과연 한 큰 정령(精靈)이 있어 일체를 꿰뚫어 흐르고 두루 감싸안으며 이 세상을 밀어 운행하게 하고 있는가? 조물주가 사람을 낳게 한 것은 선을 기르고 악을 멸하여 이로서 만물을 통솔하게 하고자 했던 것인가? 신체의 바탕 외에 과연 정령이 있어 능히 선을 북돋우고 악을 멸하며, 본바탕에 통하여 맡은 일을 온전히 함으로서 곧 신체는 물론 죽음이 있더라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단지 본분을 지키고 도리를 즐기며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원망함이 없으면 곧 족한 것인가? 본바탕을 지니고 뜻을 기르며 선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면 비록 죽어서 남는 것이 없다 할 지라도 역시 만족한 것인가? 오호라! 이 몇 가지 일들 또한 어찌 쉽게 말처럼 되겠는가! 내가 동이의 사람됨을 자랑으로 여기기에 천하를 대함에도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내가 상고 시대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탄복하고 있지만,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어이하여 모두가 군사의 일에 힘을 써서 동쪽과 서쪽으로 적들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다시 부강의 강역으로 올려놓으려 하지 않는가? 오호라! 이 몇 가지 일들 또한 지금 비록 혀가 닳도록 말하지만 그저 죽은 아이 나이 헤아리기일 따름이니 다시 무슨 큰 이득이 있겠는가! 무릇 행운은 편중되지 않고 재주는 독점됨이 없기에 백성과 사물에게는 위난이 없을 수 없고 가문과 국가의 흥망은 반복됨이 무상하다 할 것이니, 지금 조선의 불행 또한 장래 행운의 실마리가 될 것인가? 내가 살펴보건대 인심은 분열되고 백성의 사기는 소침하니, 이에 붓을 던지고 길게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오호라 환인(桓因)이여! 지금의 한 조각 진역(震域)과 한 줄기 유민(遺民)은 장차 어찌될 것인가! 장차 어찌될 것인가!

《규원사화》의 현존하는 판본을 크게 나누면, 본서에서 저본으로 이용한 '국립도서관의 소장본을 ??뿌리社에서 영인·출판한 것(편의상 '??영본'이라 한다)' '양주동 소장의 필사본 계열 6(편의상 '양필본'이라 한다)' 등 두 부류가 있다. 먼저 ??영본은 조선 중기로 예상되는 시기에 실명씨(고평석님은 북애노인이 직접 쓴 원서라 하였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서, 영인시 첨부된 고평석님의 影印後記 내용을 일부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규원사화》는 조선조 숙종 2(을묘, 1675)에 북애(北崖) 노인이 쓴 우리의 상고사이다. …… 필자는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규원사화》에 관한 사료적 가치를 조사하다가 이 원전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할 수 있었다. 이 사서는 다른 고서와 비교해도 매우 오래된 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서지학자이며 국립도서관에서 고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장지연 선생도 확인했듯이 종이의 질과 글씨 그리고 제호를 표지에 바로 쓴 것 등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의 것임이 틀림없었다. 틀린 글자 때문에 종이를 버릴 수 없어 그 위에 종이를 오려 붙여 바로잡은 데도 여러 곳 있어 저자의 소박한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 이 사서의 원전을 조사하면서 북애 노인의 깊은 사려에서 비롯된 민족사의 방향 지침을 다시 한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후략) 다른 하나는 그 뿌리를 양주동님 소장의 필사본에 두는 도합 여섯 종류의 필사본들로서 각 대학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인데, 이상시(李相時)님이《규원사화》의 진서(眞書)임을 여러 자료를 들어 밝혀 놓은 고려원 발간《단군실사에 관한 고증연구》(이 책에는 ??영본에 대한 언급은 없다)에서 판본의 종류를 밝힌 부분을 일부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현전하는《규원사화》가 A.D.1920년부터 A.D.1930년 사이에 단군교도들에 의하여 복사 또는 등사되고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하여 인용되어 여러 가지 역사 서적이 출판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A.D.1920년 경에도 민간에 그 사본이 전래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현전하는《규원사화》의 필사본은 A.D.1940(단기 4273, 昭和 15) 9월에 양주동(梁柱東)이 비장하고 있던 소장본을 손진태(孫晋泰) 3본을 필사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광복 후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및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1부씩 기증하여 소장하고 있던 중에 고려대학교본은 A.D.1976년에 아세아 문화사에서 영인 발간한 사실이 있고, 서울대학교본은 그 후 없어졌다가 방종현(方鍾鉉)이 소장하고 있던 소장본을 다시 등사하여 동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그 밖에 언제 어디에서 누가 필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권상로(權相老) 소장본을 필사하여 동국대학교에, 이선근(李瑄根) 소장본을 등사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각각 소장하고 있고, 또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이크로 필림본 하나를 역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등 도합 6종이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6종의 필사본을 비교 대조하여 보면 동국대학교본에서는 '啓發' '啓達', 고려대학교본에는 '壬儉' '王儉' 등으로 잘못 필사한 흔적이 간혹 발견될 수 있을 뿐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먼저 ??영본과 양필본을 비교하여 보면 양필본은 필사된 경로가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까지 합쳐 도합 6종으로서 모두 내용이 글자 몇 자를 제외하고는 같다 하였으므로, 원본의 형태를 갖춘 조선 말기 이전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영본과는 분명히 별도의 계열이다. 또한 글자 수의 차이에서도 양필본 가운데 서희건(徐熙乾)著《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에 부록으로 인용된 한 필사본(손진태님의 筆寫後記가 실려 있으므로 편의상 '손필본'이라 한다)??영본을 비교하여 보면, ??영본이 총 26,828(영인시 잘못으로 가려진 듯한 두 글자('遂爲')는 포함하고 제목은 제외)이며, 손필본이 총 26,357(제목 제외)로 무려 471자의 차이가 나므로 그러한 사실은 더욱 확실하다. ??영본은 고평석님이 그 영인 후기에서 저자인 북애노인이 직접 쓴 것(……著者의 소박한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이라 하였다. 그러나 몇 가지 근거로 볼 때 비록 조선 말기 이전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여진 것은 확실하지만 저자 자신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필사본인 손필본의 <태시기> 말미에 "乃城於 鹿, 宅於淮岱, 遷徙往來, 號令天下. 盖是時, 中土之人, 徒憑矢石之力…"(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에 자리잡아 옮겨 왕래하면서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다. 대개 이때의 중토 사람들은 단지 화살과 돌의 힘에만 의지할 뿐……)이라 하였는데, 정작 ??영본에는 그 중 '遷徙往來, 號令天下' 8자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필사본에 있는 것이 원본에 없을 리 만무하며 더군다나 손필본은 필사하며 무려 500자에 가깝게 빼먹는 등 다소 정성을 들이지 못한 흔적이 역력한데 오히려 한 두자도 아닌 8자를 오히려 첨가되었을 리는 없다.(손필본에는 있으나 ??영본에는 없는 글자는 군더더기 글자(衍字)를 포함하여 모두 27자이다.) 그 앞뒤 문맥의 내용을 살펴보면 '宅於淮岱'에서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수도 있는 곳이기에 조심성 없는 필사자의 눈에 문맥의 내용이 끊어졌다고 느껴져서 없던 내용을 보완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째, ??영본과 손필본을 상호 교감하여 볼 때 비록 손필본의 것은 버리고 ??영본의 것을 취할 수 있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무려 30곳 정도가 된다는 점이다.(교감의 내용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교감표 참조.) 그 가운데 '李茗高者麗'·'漢書通及典'·'勿吉傳曰亦'·'在白頭於山'·'孟子舜曰生諸馮'·'責八聖矣之名'·'北方燥寒之'·'末流而之弊'·'政而敎始成' 등 처럼 순서가 바뀌는 실수는 필사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이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문맥상 글자의 순서가 바뀌는 실수는 있을 수 없다. 셋째, 글씨의 몇 가지 형태에서 필사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영본의 원본은 줄이 쳐진 빈책(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책(空冊)'이다)에 붓으로 쓴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전체에서 16자 정도가 이미 쓰여진 글자 사이에 덧붙여 적어 넣은 작은 글자이다. 몇몇 조사는 글을 적다가 흘렸기에 다시 적었다고 할 수 있지만, ''·''·''·'' 등의 글자는 문맥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자로서 내용을 재검토하며 보충하여 넣은 조사와는 성격이 틀리는 글자들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실제로 몇 군데는 교감상 틀린 곳으로 밝혀졌다)에는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특히 '人事則軀殼'의 부분에서는 ''(교감상 ''의 오자이다) 글자 전체를 붓으로 둥글게 표시하여 놓아 틀렸음(, 잘못 옮겨 적었음)을 나타낸 듯하다. 글자를 옮겨적는 필사자의 입장이 아닌, 내용을 옮겨적는 저자의 입장이라면 그 문맥에서 '人事'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본이 북애노인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님과 동시에 손필본(엄밀히 말해서 양필본類의 필사 저본이 된 양주동 소장본)??영본이 아닌 제3의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영본에 없는 글자를 손필본에서 27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영본에서 순서를 바꿔 쓴 것(위에서 예를 든 문장들)이 바르게 되어 있으며, 또한 몇몇 글자는 문맥의 내용에 있어 오히려 ??영본의 내용상 결점을 보완해 주기까지 하는데 '…民物之交特盛'에서의 '', '…人死則軀殼'에서의 '', '…曾無一人起於南方'에서의 '' 등이 그것이다. 본 교감 내용은 이용한 판본이 단지 ??영본과 손필본 2가지뿐이었기에 더욱 상세한 교감은 하지 못하였다. 보다 많은 자료에 의한 보다 나은 교감 작업에 본 교감내용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본 교감은 ??영본을 저본으로 하여 손필본과 비교 정정하였다. 두 권의 책 모두 이어 쓰기로 되어 있기에 내용에 따라 끊어 읽고 구두점을 표시하였다. 구두는 현토를 피하고 쉼표와 마침표 및 인명·지명·고유명사에 밑줄을 긋고 서적명에는 꺾음 겹괄호를 그리고 편명에는 꺾음 괄호를 하였다. 그 외의 문장부호는 일반적인 사용법에 준하였다. 동자(同字)도 가능한한 모두 대조 표시하였으나 기록하기 곤란한 약자(略字)는 대조 표시를 생략하였다. 상기 두 판본의 글자에 대한 교감 내용은 ??영본의 내용이면 모가 진 괄호([ ])를 그리고 손필본의 내용이면 원괄호(( ))를 사용한다는 원칙 아래, 두 판본의 글자가 서로 다른 경우는 버릴 것을 '윗첨자'로 표기하고 취할 것을 정상으로 두었으며, 상대적으로 글자가 탈락된 경우는 탈락되지 않은 판본의 해당 부분만 괄호로 표시하여 두었다. 두 판본 모두 탈락되거나 잘못되었을 경우는 모두 윗첨자로 두고 새로운 글자에는 별표를 하였으며, 교감에 설명이 필요할 경우에는 각주(脚注)로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