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적 , 역사서

한단고기 1 삼성기 전상편

영지니 2007. 12. 30. 12:01
 
 
 
삼성기  전상편 (안함로 지음)
 


  우리 한(桓)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지금의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 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 없이 볼 수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黑水:흑룡강을 말하며 중국말로는 살합연오라 러시아말로는 아므르) 백산(白山:백두산 또는 중국의太白山)의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郡:중생을 돌보는 직책)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지금의 아버지로 고대에는 국왕을 아버지라 불렀다 한다.)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중국 산동 반도의 동래지방, 동양의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 동이, 조선, 청구가 다우리 민족을 칭하는 말이다.)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3.7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팔괘를 그으시고 올 것을 알며 상을 잡으시고 신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 스러운 이들과 뭇 철인들이 보살피도록 하시더니 웅씨 (곰이라 하나 옛날의 곰이라 함은 신을 뜻하는 말이다. 풀어쓰면 "ㄱ.ㅁ"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신을 "가미"라 한다)  의 여인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14세 자오지한웅)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

  뒤에 신인왕검께서 불함산의 박달 나무 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 을 겸하여 갗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구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백두산 또는 완달산)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 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와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회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겐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바꾸고 백악으로부터 또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에 팔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 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 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 어딜 가나 금지하는 바가 없었고 죄를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힘을 합쳐서 나라를 다스렸다. 사내에게는 언제나 직업이 있었고 여자에게는 좋은 짝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재물이 쌓였다. 산엔 도적이 없고 들엔 굶주린 자가 없으며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하였다. 단군왕검은 무진(B.C.2333)년부터 나라를 다스려서 47세를 전 하니 그 햇수가 2096년을 헤아렸다.

  임술(B.C.239)년 진나라 시왕(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났다.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때 연나라 추장이였던 위만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 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난하)의 남쪽으로 옮겨갔으나 한때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해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B.C.108)년 한나라의 무왕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을미(B.C.86)년 한나라 소왕(B.C.87~74)때, 부여의 옛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니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출처 : 이선생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