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적 , 역사서

난중일기 - 6

영지니 2008. 4. 13. 19:15

10월 22일 [양력 11월 23일]<신유> 맑다.
가리포첨사?미조항첨사?우후 등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희립(宋希立)? 박태수(朴台壽)? 양정언(梁廷彦)이 들어왔다. 전문(箋文)을 모시고 갈 유생도 들어왔다.

10월 23일 [양력 11월 24일]<임술> 맑다.
아침에 전문(箋文)을 보낸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10월 24일 [양력 11월 25일]<계해>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하응구(河應龜)도 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박태수(朴台壽)?김대복(金大福)이 아뢰고 돌아갔다.

10월 25일 [양력 11월 26일]<갑자> 맑다.
가리포첨사?우후?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녹도만호 등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에 정항(鄭沆)이 아뢰고서 돌아가므로 전별했 다. 띠풀을 베어 올 일로 이상록(李祥祿)? 김응겸(金應謙)? 하천수(河天壽)? 송의련(宋義連)? 양수개(楊水漑) 등이 군사 여든 명을 거느리고 나갔다.

10월 26일 [양력 11월 27일]<을축> 맑다.
임달영(任達英)이 왔다고 한다. 불러서 제주도 가는 일을 물었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송홍득(宋弘得)?송희립(宋希立) 등이 사냥 하러 갔다.

10월 27일 [양력 11월 28일]<병인> 맑다.
우우후?가리포첨사가 왔다.

10월 28일 [양력 11월 29일]<정묘> 맑다.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띠풀을 베러 갔던 배가 들어왔다. 밤에 비가 오고 우레가 여름철 같이 치니 괴상한 일이다.

10월 29일 [양력 11월 30일]<무진> 맑다.
가리포첨사(이응표)?이진권관가 돌아갔다. 경상수사(권준)?웅천현감(이운룡)? 천성보만호(윤홍년)도 왔다.


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1일]<기사>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가 나갔다. 함평?진도?무장의 전선을 내어 보냈다. 김희번(金希 番)이 서울에서 내려 와서 조정의 공문과 영의정의 편지를 바쳤다.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술을 먹였다. 오후에 방답첨사와 활 일 곱 순을 쏘았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2일]<경오> 맑다.
곤양군수 이수일(李守一)이 와서 봤다.

11월 초3일 [양력 12월 3일]<신미> 맑다.
황득중(黃得中)이 들어와서, "왜선 두 척이 청등(거제시 사등면 청곡리)을 거쳐 흉도(거제시 동부면)에 이르렀다가 해북도(통영시 용남면)에 정박하여 불을 지르고 돌아가서는 춘원포(통영시 광도면 예승포) 등지에 이르렀다."고 전하고서 그는 새벽에 지도로 돌아갔다.

11월 초4일 [양력 12월 4일]<임신> 맑다.
새벽에 이종호(李宗浩)?강기경(姜起敬) 등이 들어와서 봤다. 변 존서(卞存緖)의 편지와 조카 봉?해 형제가 본영에 이르 렀다고 했다.

11월 초5일 [양력 12월 5일]<계유> 맑다.
남해현령?금갑도만호?남도포만호?어란포만호?회령포만호 및 정담수(鄭聃壽)가 와서 봤다. 방답첨사?여도만호를 불러 와서 이야기했다.

11월 초6일 [양력 12월 6일]<갑술> 맑다.
송희립(宋希立)이 들어왔다. 띠풀 사백 동?칡 일백 동을 베어서 실어 왔다.

11월 초7일 [양력 12월 7일]<을해> 맑다.
하동현감(최기준)이 교유서에 숙배했다. 경상우수사가 순찰사 있 는 곳에서 왔다. 미조항첨사?남해현령도 왔다.

11월 초8일 [양력 12월 8일]<병자> 맑다.
새벽에 조카 완(莞)과 종 경(京)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김응겸(金應謙)? 경상도순찰사의 군관 등이 왔다.

11월 초9일 [양력 12월 9일]<정축> 맑다.
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이 들어왔다.

11월 초10일 [양력 12월 10일]<무인> 맑다.
새벽에 경상도순찰사의 군관이 돌아갔다.

11월 11일 [양력 12월 11일]<기묘> 맑다.
새벽에 선조임금의 탄신 축하례를 행했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 다. 주부 변존서(卞存緖)? 이수원(李壽元)?이원룡(李元龍) 등이 왔는데, 그 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저녁에 이의득(李義得)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가 나갔다.

11월 12일 [양력 12월 12일]<경진> 맑다.
발포가장(鉢浦假將)으로 이설(李渫)을 정하여 보냈다.

11월 13일 [양력 12월 13일]<신사> 맑다.
도양장에서 거둔 벼와 콩이 팔백스무 섬이었다.

11월 14일 [양력 12월 14일]<임오> 맑다.

11월 15일 [양력 12월 15일]<계미> 맑다.
아버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앉았으니 그리워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11월 16일 [양력 12월 16일]<갑신> 맑다.
투항해온 여몬레니(汝文戀已)?야지로(也時老) 등이 와서,"왜놈들 이 도망가려 한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우우후를 시켜 잡아다가 그 주모자 준시(俊時) 등 두 명의 머리를 베었다. 경상수사?우후 ?웅천현감?방답첨사?남도포만호?어린포만호?녹도만호가 왔 는데, 녹도만호는 곧 내어 보냈다.

11월 17일 [양력 12월 17일]<을유> 맑다.

11월 18일 [양력 12월 18일]<병술> 맑다.
어응린(魚應麟)이 와서,"소서행장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바다로 나갔는데 거처를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전 령하여 이를 수륙으로 정탐케 했다. 저녁나절에 하응문(河應文)이 와서 군량 잇대는 일로 보고했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웅천현 감 등이 와서 의논하고 갔다.

11월 19일 [양력 12월 19일]<정해> 맑다.
이른 아침에 도망갔던 왜놈이 제발로 와서 현신했다. 밤 열 시쯤 에 조카 분(芬)?봉?해와 아들 회가 들어왔다. 어머 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하응문(河應文)이 돌아갔다.

11월 20일 [양력 12월 20일]<무자> 맑다.
거제현령?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11월 21일 [양력 12월 21일]<기축> 맑다.
된바람이 종일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宋希立)을 내 보내어 견내량에 있는 왜적선을 찾아내게 했다. 이 날 저녁에 반대좀(碧魚) 일만 삼천 이백 마흔 두름을 곡식과 바꾸려고 이종호(李宗浩)가 받아 갔다.

11월 22일 [양력 12월 22일]<경인> 맑다.
새벽에 동지 하례로 북향하여 임금께 숙배했다. 저녁나절에 웅천현감? 거제현령? 안골포만호? 옥포만호? 경상우후 등이 왔다. 변존서(卞存緖)와 조카 봉이 모두 갔다.

11월 23일 [양력 12월 23일]<신묘>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종호(李宗浩)가 하직하고 나갔다. 이 날 견내량 순찰하는 일로 경상수사를 정하여 보냈으나, 바람이 몹시 사나와 출항하지 못했 다.

11월 24일 [양력 12월 24일]<임진> 맑다.
순라선이 나갔다가 밤 열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변익성(邊翼 星)이 곡포권관이 되어 왔다.

11월 25일 [양력 12월 25일]<계사>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곡포권관의 공식 신고를 받았다. 저녁나절에 경 상우후가 와서 투항해온 왜놈 여덟 명이 가덕도에서 왔다고 전했 다. 웅천현감?우우후?남도포만호?방답첨사?당포만호가 와서 봤다. 조카 분(芬)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 열 시쯤이 되었다.

11월 26일 [양력 12월 26일]<갑오> 아침에는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광양도훈도가 복병하러 나갔 다가 도망간 자들을 잡아와서 처벌했다. 오정 때에 경상수사가 와서 투항한 왜놈 여덟 명 및 그 인솔자 김탁(金卓) 등 두 명이 왔다. 그래서 술을 먹이고 김탁(金卓) 등에게는 각각 무명 한 필 씩을 주어서 보냈다. 저녁에 류척(柳滌)과 림영(林英) 등이 왔다.

11월 27일 [양력 12월 27일]<을미> 맑다.
김응겸(金應謙)이 두 해 먹은 나무를 베어 올 일로 자귀장이(耳 匠木手) 다섯 명을 데리고 갔다.

11월 28일 [양력 12월 28일]<병신> 맑다.
나라제삿날(睿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류척(柳滌)과 림영(林英)이 돌아갔다. 조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이 깊어졌다.

11월 29일 [양력 12월 29일]<정유> 맑다.
나라제삿날(仁宗 仁聖王后 朴氏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1월 30일 [양력 12월 30일]<무술> 맑다.
남해의 투항해온 왜놈 야에몬(也汝文:彌右衛文)?신지로(信是老: 信次郞) 등이 왔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체찰사의 전세(田稅)로 군량 서른 섬을 경상수사가 받아 갔다.


을미년 12월 (1595년 12월)

12월 초1일 [양력 12월 31일]<기해>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12월 초2일 [양력 1월 1일]<경자> 맑다.
거제현령?당포만호?곡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술을 먹였더니 취하여 돌아갔다.

12월 초3일 [양력 1월 2일]<신축> 맑다.

12월 초4일 [양력 1월 3일]<임인> 맑다.
순천 2호선과 낙안 1호선의 군사를 점검하고 내어 보냈으나 바람 이 순조롭지 못하여 출항하지 못했다. 조카 분(芬)?해가 본 영으로 갔다. 황득중(黃得中)?오수(吳水) 등이 청어 칠천 여 두 름을 싣고 왔다. 그래서 김희방(金希邦)의 곡식 사러 가는 배에 계산하여 주었다.

12월 초5일 [양력 1월 4일]<계묘> 맑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것 같아 종일 나가지 않았다.

12월 초6일 [양력 1월 5일]<갑진> 맑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저녁에 아들 울(蔚)이 들어왔 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니, 기쁘고 만번 다행이다.

12월 초7일 [양력 1월 6일]<을사> 맑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다.
웅천현감?거제현령?평산포만호?천성보만호 등이 와서 보고 갔다. 청주 이희남(李喜男)에게 답장을 써 부쳤다.

12월 초8일 [양력 1월 7일]<병오> 맑다.
우우후?남도포만호가 와서 봤다. 체찰사의 전령이 왔는데, 가까운 시일안으로 만나자는 것이었다.

12월 초9일 [양력 1월 8일]<정미> 맑다.
몸이 불편하여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거제현령(안위)?안골포만호 우수(禹壽)가 와서 왜적들이 물러갈 뜻이 없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응구(河應龜)도 왔다.

12월 초10일 [양력 1월 9일]<무신> 맑다.
충청도순찰사(박홍로) 및 충청수사(선거이)에게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12월 11일 [양력 1월 10일]<기유>맑다.
조카 해( )?분(芬)이 탈없이 본영에 이르렀다는 편지를 보니 기쁘고 다행이지만, 그 고생스러웠던 형상을 무었이라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12월 12일 [양력 1월 11일]<경술>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우후도 왔다.

12월 13일 [양력 1월 12일]<신해> 맑다.
왜놈 옷 쉰 벌과 연폭(連幅)(이 곳에 원문의 글이 빠졌음). 초저 녁에 종 돌세(乭世)가 와서 말하기를, "왜선 세 척과 소선 한 척 이 등산(마산시 합포구 진동면) 바깥바다에서 합포에 와 정박해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사냥하는 왜놈인 것 같아 곧 경상수사?방답첨사?우우후에게 찾아 보게 했다.

12월 14일 [양력 1월 13일]<임자> 맑다.
경상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합포로 나아가 왜놈들을 타일렀다. 미조항첨사 및 남해현령?하동현감이 들어왔다.

12월 15일 [양력 1월 14일]<계축> 맑다.
체찰사에게로 갔던 진무(鎭撫)가 와서, "18일에 삼천포에서 만나 자"고 하므로 달려가기로 했다. 초저녁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2월 16일 [양력 1월 15일]<갑인> 맑다.
새벽 네 시쯤에 출항하여 달빛을 타고 당포(통영시 산양면 삼덕 리) 앞바다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고 사량도(통영시 사량면) 뒷바 다에 이르렀다.

12월 17일 [양력 1월 16일]<을묘> 비가 뿌렸다.
삼천포진 앞에 이르니, 체찰사(이원익)는 사천에 이르렀다고 한 다.

12월 18일 [양력 1월 17일]<병진>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삼천포진으로 나아갔다. 오정 때에 체찰사가 보(堡)에 이르러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초저녁에 체찰사가 또 같이 이야기하자고 청하므로 이야기하는 데, 밤 두 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12월 19일 [양력 1월 18일]<정사>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사들에게 음식을 실컷 먹이고 난 뒤에 체찰사가 떠나갔다. 나는 배로 내려오니 바람이 몹시 사나와 출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서 밤을 지냈다.

12월 20일 [양력 1월 19일]<무오> 맑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 1596년(병신)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臨廷老) 1 마리, 박사명(朴士明)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丁鳴悅)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長帖)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丁景達)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宋漢).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五衛의 正6品의 군사직이며 副司直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明宗 仁順王后 沈氏의 祭祀)이다. 부장(部將) 이계(李繼)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巨望浦)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宋漢連)?송한(宋漢) 등이 말하기를, 청어(靑魚)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奇孝謹)과 김축(金軸)이 휴가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成允文)?우후 이정충(李廷忠) ?웅천현감 이운룡(李雲龍)?거제현령 안위(安衛)?안골포만호 우 수(禹壽)?옥포만호 이담(李曇)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李夢象)도 경상수사 권준(權俊)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吳壽)는 청어(靑魚)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朴春陽)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데, 하천수(河天壽)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黃得中)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李英男)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權澁)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權俊)?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權澁)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厓山)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禹壽)?공 태원(孔太元)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沈安屯:島津義弘)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吳水)가 청어(靑魚)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河 天壽)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 포(金伊浦)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申弘壽)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鄭思立)?김대복(金大福)이 들어왔다. 조기(趙 琦)?김숙(金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延安玉)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卞存緖)?조카 분(芬)?김숙(金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成允文)과 변익성 (邊翼星)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姜大壽)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金)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京)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 경(沈惟敬)(沈惟敬)이 행장(小西行長)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沈惟敬)과 소서행장(小西行長)? 현소(玄蘇)? 정성(寺澤正成)? 소서비(小西飛 :內藤 如安)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朴自邦)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金 仁福)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莞) 및 최대성(崔大晟)?신여윤(申汝潤)?박 자방(朴自芳)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京)도 왔다. 종 금(金)은 애수(愛壽)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漢城)?공석(孔石)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鎭撫)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金大福)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李喜男)이 종 네 명과 준복(俊福) 이 들어왔다.

(** 1596년(병신)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臨廷老) 1 마리, 박사명(朴士明)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丁鳴悅)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長帖)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丁景達)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宋漢).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五衛의 正6品의 군사직이며 副司直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明宗 仁順王后 沈氏의 祭祀)이다. 부장(部將) 이계(李繼)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巨望浦)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宋漢連)?송한(宋漢) 등이 말하기를, 청어(靑魚)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奇孝謹)과 김축(金軸)이 휴가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成允文)?우후 이정충(李廷忠) ?웅천현감 이운룡(李雲龍)?거제현령 안위(安衛)?안골포만호 우 수(禹壽)?옥포만호 이담(李曇)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李夢象)도 경상수사 권준(權俊)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吳壽)는 청어(靑魚)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朴春陽)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데, 하천수(河天壽)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黃得中)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李英男)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權澁)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權俊)?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權澁)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厓山)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禹壽)?공 태원(孔太元)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沈安屯:島津義弘)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吳水)가 청어(靑魚)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河 天壽)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 포(金伊浦)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申弘壽)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鄭思立)?김대복(金大福)이 들어왔다. 조기(趙 琦)?김숙(金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延安玉)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卞存緖)?조카 분(芬)?김숙(金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成允文)과 변익성 (邊翼星)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姜大壽)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金)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京)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 경(沈惟敬)(沈惟敬)이 행장(小西行長)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沈惟敬)과 소서행장(小西行長)? 현소(玄蘇)? 정성(寺澤正成)? 소서비(小西飛 :內藤 如安)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朴自邦)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金 仁福)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莞) 및 최대성(崔大晟)?신여윤(申汝潤)?박 자방(朴自芳)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京)도 왔다. 종 금(金)은 애수(愛壽)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漢城)?공석(孔石)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鎭撫)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金大福)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李喜男)이 종 네 명과 준복(俊福) 이 들어왔다.


병신년 2월 (1596년 2월)

2월 초1일 [양력 2월 28일]<무술>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권숙(權澁)이 이곳에 왔다가 취해서 갔다.

2월 초2일 [양력 2월 29일]<기해> 맑고 따뜻하다.
울(蔚)과 조기(趙琦)가 같은 배로 나갔다. 우후도 갔다. 저녁에 사 도첨사가 와서 어사의 장계에 따라 파면되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곧 장계를 초잡았다.

2월 초3일 [양력 3월 1일]<경자>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혼자 앉아서 자식의 떠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침에 장계를 수정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그 편에 적량만 호 고여우(高汝友)가 장담년(張聃年)에게 소송을 당하여 순찰사가 장계를 올려 파면시키려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둘 무렵 어란만 호가 견내량 복병한 곳에서 보고하기를, "부산의 왜놈 세 명이 성주에서 투항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복병한 곳에 이르러 장사하 겠다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장흥부사에게 전령하여 내일 새 벽에 가서 타일러 보라고 시켰다. 이런 왜적들이 어찌 장사를 하고자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의 정형(定形)을 엿보려는 것이다.

2월 초4일 [양력 3월 2일]<신축>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하여 사도 사람 진무성(陳武晟)에게 부쳤다. 영의정과 신식(申湜) 두 집에 문안 편지도 부쳤다. 저녁나절에 흥 양현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여도만호? 거제현령?당포만호?옥포만호도 왔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복병한 곳에서 돌아와 왜놈들이 도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2월 초5일 [양력 3월 3일]<임인>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사도첨사?장흥부사가 일찍 왔다. 그래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권숙(權澁)이 와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종이?먹 두 개와 대 검(佩刀)을 주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는 음식을 먹이고, 겸하여 활을 쏘고 풍악을 잡히다 가 취하여 헤어졌다. 웅천현감(이운룡)이 손인갑(孫仁甲)의 애인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가야금을 몇 곡조 들었다. 저녁에 김기실 (金己實)이 순천에서 돌아왔다. 그 편에 안부를 물었더니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도 다행이다. 우수사의 편지가 왔는데 기한을 늦추자고 하니 우습고도 한탄스럽다.

2월 초6일 [양력 3월 4일]<계묘> 흐렸다.
새벽에 자귀쟁이(耳匠木手) 열 명을 거제로 보내어 배를 만드는 일을 시켰다. 이 날 침방에 천장 흙이 떨어진 곳이 있어서 수리 했다. 사도첨사 김완(金浣)은 조도어사의 장계로써 파면되었다 는 기별이 또 이르렀다. 본디의 포구(골사도)로 내어 보냈다. 순천별감 유(兪)와 군관 장응진(張應軫) 등을 처벌하고 곧 수루로 들어갔다. 송한련(宋漢連)이 숭어를 잡아서 왔기에 여도?낙안? 흥양을 불러 같이 찢어 먹었다. 적량 고여우(高汝友)가 큰 매를 가지고 왔으나 오른쪽 발가락이 다 얼어서 무지러졌으니 어찌하랴! 초저녁에 잠깐 땀이흘렀다.

2월 초7일 [양력 3월 5일]<갑진> 아침에 흐리다가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좋지 않다. 저녁나절에 나가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장흥부사? 우후?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이야기하다가 날이 저 물어서야 헤어졌다.

2월 초8일 [양력 3월 6일]<을사> 맑다.
이른 아침에 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마 름질했다. 저녁나절에 손인갑의 애인이 들어와 한참을 있었다. 오 철(吳轍)?현응원을 불러 군사에 대한 일을 물었다. 저녁에 군량 에 대한 장부를 만들었다. 흥양현감이 둔전의 벼 삼백쉰두 섬 을 바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를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류황을 내보내려 했는데 떠나지 못했다.

2월 초9일 [양력 3월 7일]<병오>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 사 권준(權俊)이 와서 이야기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바 람이 잤다. 견내량과 부산의 왜적선 두 척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웅천현감 및우후를 탐색하러 보냈다.

2월 10일 [양력 3월 8일]<정미> 맑고 따사했다.
이 날 일찌기 박춘양(朴春陽)이 대를 실어 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태구생의 죄를 다스렸다. 저녁에 몸소 곳집 짓는 곳을 보았다. 아침에 웅천?우우후가 견내량에서 돌아와 서, 왜놈들이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모양을 보고했다. 어두울 무 렵 창녕사람이 술을 가져왔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2월 11일 [양력 3월 9일]<무신>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군 량보급 책임자) 림찬(林瓚)이 소금 쉰 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任 達英)이 논산(論山)에서 돌아왔다. 논산(論山)의 편지와 박종 백(朴宗伯)?김응수(金應綏)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장흥부사와 우우후가 왔다. 또 낙안군수와 흥양현감을 불러 활을 쏘았다. 막 해떨어질 무렵 영등포만호가 그 소실을 데리고 술을 들고 와서 권했다. 나이 젊은 계집도 왔는데 놔두고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기유>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 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 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은 초저녁에 돌아갔다.

2월 13일 [양력 3월 11일]<경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강진현감(이극신)이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첨사는 보고하고 늦게 왔으므로 타일러 내보냈 다. 영암군수(박홍장)를 파면시킬 장계를 초잡았다. 저녁에 어란포만호가 돌아갔다. 임달영(任達英)도 돌아갔다. 제주목 사(이경록)에게 청어(靑魚)?대구(大口)?화살대(箭竹)?곶감 (乾?)?삼색부채를 봉하여 보냈다.

2월 14일 [양력 3월 12일]<신해>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동복 (同福)의 계향유사 김덕린(金德麟)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 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 왔다. 새로 지은 곳집에 지붕을 이 었다. 낙안군수?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떡을 먹었다. 조금 있으 니 강진현감이 와서 인사하므로 위로하고 술을 먹였다.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여들이는데 물 긷는 수고를 편하게 했다. 이 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홀로 높은 수루에 기대어 있으니 마음이 무척 어지럽다. 밤이 깊어서야 잠 자리에 들었다.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宋象文)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일곱 섬 을 바쳤다.

2월 15일 [양력 3월 13일]<임자>
새벽에 망궐례를 하려 했으나, 비가 몹시 내려 마당이 젖었기 때 문에 거행하지 않았다. 어두울 무렵 전라우도의 투항해 온 왜 놈과 경상도의 투항해 온 왜놈이 같이 짜고 도망갈 꾀를 낸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령을 내어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려내어 큰 살대 백열한 개와 그 다음 대 백쉰 네 개를 옥지(玉只)에게 주었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현감?거제현령?당포 만호?옥포만호?우우후?경상우후가 아울러 와서 보고 돌아갔 다. 순천 둔전에서 거둔 벼를 내가 직접 보는 앞에서 받아들이게 했다.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金德麟)?흥양의 계향유사 송상 문(宋象文) 등이 돌아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하여 왔다. 이 날 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자려 해도 잠잘 수가 없었 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했다.

2월 16일 [양력 3월 14일]<계축>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부사?우우후?가리포첨사가 와서 같이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지난날 승부내기에서 진 편이 한턱 내었는데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은 너무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봄철 노곤한 기운이 벌써 이렇구나.

2월 17일 [양력 3월 15일]<갑인> 흐렸다.
나라제삿날(世宗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면( )이 본영으로 갔다. 박춘양(朴春陽)과 오수(吳水)가 조 기 잡는 곳으로 갔다가 어제의 취기가 아직도 심하니 불안했다. 저녁에 흥양현감이 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 식사를 같이 했 다. 미조항첨사 성윤문(成允文)의 문안 편지가 왔는데, "방금 관 찰사(方伯)의 공문을 받고 진주성(晉城)으로 부임하게 되어 나아 가 인사드리지 못한다. 자기 대신으로 황언실이 되었다"고 했다. 웅천현감의 답장이 왔다. 임금의 유서(諭書)는 아직 받지 못했다 고 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떠나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걷잡을 수 가 없다. 아픈 가슴을 말할 수 없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몹시 노곤하다.

2월 18일 [양력 3월 16일]<을묘>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 나절에 체찰사의 비밀 공문이 세 통 왔다. 그 하나는 제주목에 게 계속하여 후원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등포만호 조계종(趙 繼宗)을 심문하는 일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도 전선(戰 船)을 아직은 독촉하여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국(金 國)이 서울에서 들어와서 비밀 공문 두 통과 역서(曆書) 한 건 을 가지고 왔다. 승정원의 기별도 왔다. 황득중(黃得中)은 쇠를 싣고 와서 바쳤다. 절(節)이 술을 가지고 왔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2월 19일 [양력 3월 17일]<병진>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면( )이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몰라서 밤새도록 무척 걱정 했다. 이 날 저녁 소문에 낙안의 군량선이 바람에 막혀 사량에 대었다가 바람이 자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이 날 새벽에 경상 도의 진(陣)에 남아 있는 투항한 왜놈을 이곳에 있는 왜놈 난에 몬(亂汝文 :南汝文) 등을 시켜 묶어 와서 목을 베게 했다. 경상수 사 권준(權俊)이 왔다. 장흥부사?웅천현감?낙안군수?흥양현감 ?우우후?사천현감 등과 같이 부안에서 온 술을 끝까지 다마셔 없앴다. 황득중(黃得中)이 가져온 총통 만들 쇠를 저울로 달아 서 보관했다.

2월 20일 [양력 3월 18일]<정사> 맑다.
일찌기 조계종(趙繼宗)이 현풍수군 손풍련(孫風連)에게서 소송을 당했으므로 서로 마주하여 공술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공문을 적어 나누어 보냈다. 손만세(孫萬世)가 사사로이 입대(入隊)에 관한 공문을 만들었기에 그 죄를 처벌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낙안군수?녹도만 호가 같이 왔다. 비가 올 것만 같다. 새벽에 기운이 노곤했다.

2월 21일 [양력 3월 19일]<무오>
궂은비가 새벽부터 세차게 오더니 저녁나절에야 그쳤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혼자 앉아 있었다.

2월 22일 [양력 3월 20일]<기미> 맑고 바람이 없다.
일찌기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 있으니, 웅천현감?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흥양현감은 몸이 불편하여 먼저 돌아갔다. 우우후?장흥부사?낙안군수?남도포만호?가리포첨사?여도만호 ?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나도 활을 쏘았다. 손현평(孫絃 平)도 와서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 땀을 흘렸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노곤하게 한다. 강소작지(姜所作只)가 그물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충청수사가 화살대를 와서 바쳤다.

2월 23일 [양력 3월 21일]<경신> 맑다.
일찍 식사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되어 세 곳간에 백예순일곱 섬을 쌓았다. 없어진 것이 마흔여덟 섬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고성현감?하동현감?강진현감?회령포 만호가 와서 봤다. 하천수(河天水)?이진(李進)도 왔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2월 24일 [양력 3월 22일]<신유> 맑다.
일찍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서, 둔전의 벼를 다시 되는 것을 감 독했다. 우수사가 들어왔다. 오후 네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 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된 수량 백일흔 섬을 곳간에 넣었다. 없 어진 것이 서른 섬이다. 낙안군수(선의경)가 갈렸다는 기별이 왔다. 방답첨사?흥양현감이 와서 모였다. 배를 본영으로 보낼려 할 적에 비바람 때문에 그만뒀다. 밤내내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오래도록 노곤하다.

2월 25일 [양력 3월 23일]<임술> 비가 오다가 오정 때에 개었다.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나주판관도 왔다. 장흥부사가 와서, "수군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관 찰사가 방해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진(李璡)이 둔전으로 돌아갔다. 춘절(春節)?춘복(春福)?사화(士花)가 본영으로 돌아갔다.

2월 26일 [양력 3월 24일]<계해> 아침에 맑았는데 저물 무렵에는 비가 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여도만호?흥양현감이 와서 영리들 이 백성을 점점 움켜잡는 폐단을 말했다. 극히 해괴한 일이다. 양 정언(梁廷彦)과 영리 강기경(姜起敬)?이득종(李得宗)?박취(朴就) 등을 중죄로 다스리고 곧 경상?전라수사가 있는 영리를 잡아들 이라고 전령을 내렸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조금있으니,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왜적선 한 척이 견내량을 거쳐 들어와 해평장에 이를 적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 서른 섬을 고쳐 일백아흔여덟 섬으로 바로 잡아 서른두 섬이 줄 었다고 했다. 낙안에게 이별 술을 대접해 보냈다.

2월 27일 [양력 3월 25일]<갑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녹도만호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 아 돌아갔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스무 섬을 고쳐서 바로 잡으니 줄은 것이 여러 섬이었다.

2월 28일 [양력 3월 26일]<을축> 맑다.
일찍 침을 맞았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장흥부사와 체찰사의 군관이 이곳에 이르렀는데, 장흥부사는 종사관이 발행 한 전령으로 자기를 잡아러 온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또 전라도 수군 안에서 우도의 수군이 전라좌?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원한다고 했다. 우습다. 조정에서 꾀하는 정책이 이럴 수가 있나! 체찰사가 꾀를 내는 것이 이렇게도 알맹이가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 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저녁에 거제현령을 불러 와서 일을 물어보고 나서 돌려 보냈다.

2월 29일 [양력 3월 27일]<병인> 맑다.
아침에 공문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및 경상수사?장흥부사?체찰사의 군관이 왔다. 경상우도 순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2월 30일 [양력 3월 28일]<정묘> 맑다.
아침에 정사립(鄭思立)으로 하여금 보고문을 써서 체찰사에게 보 냈다. 장흥부사도 체찰사에게 갔다. 해가 뉘엿할 때 우수사가 보 고하는데, "벌써 바람이 따뜻해졌으니 협동작전할 계획이 시급하 여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본도(전라우도)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 었다. 그 마음 가짐이 몹시도 해괴하여 그의 군관 및 도훈도에게 곤장 일흔 대를 때렸다. 저녁에 송희립(宋希立)?노윤발(盧潤發) ?이원룡(李元龍) 등이 들어왔다. 희립은 또 술을 가지고 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밤새도록 식은 땀을 흘렸다.


병신년 3월 (1596년 3월)

3월 초1일 [양력 3월 29일]<무진>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해남현감 류형(柳珩)?임치첨사 홍견(洪堅) ?목포만호 방수경(方守慶)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해남현감은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곤장을 치지는 않았다.

3월 초2일 [양력 3월 30일]<기사>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보성군수가 들어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이 노곤하고 땀이 배니, 이건 병이 날 원인이다.

3월 3일 [양력 3월 31일]<경오> 맑다.
이원룡(李元龍)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반관해(潘觀海) 가 왔다. 정사립(鄭思立) 등을 시켜 장계를 썼다. 이 날은 명절(삼 짇날)이라 방답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및 남도포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였다. 일찌기 송희립(宋希立)을 우수사에게 보 내어 뉘우치는 뜻을 전하니, 은근하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땀이 배었다.

3월 4일 [양력 4월 1일]<신미>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했다. 느지막이 보성군수 안홍국을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오정 때에 출항하여 곧바로 소근포 끝으로 돌아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이르니, 좌수사 이운룡(李雲龍)도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고서 그대로 자리도(佐里島:진해시 웅천동) 바다 가운데서 같이 잤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임신> 맑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 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 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 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해?면?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한대 (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의 계집종이 왔다.

3월 6일 [양력 4월 3일]<계유>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새벽에 한대(漢代)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아침에 몸이 불편했 다. 식사를 한 뒤에 하동현감(신진)?고성현령(조응도)?함평현감 (손경지)?해남현감(류형)이 아뢰고 돌아갔다. 남도포만호(강응표) 도 돌아갔는데, 기일을 5월 10일로 정했다. 우우후와 강진현감(이 극신)에게는 8일이 지난 뒤에 나가도록 일렀다. 함평현감(손경지)?남해현감(박대남)?다경포만호(윤승남) 등이 칼을 썼다. 땀이 이토록 흘렀다. 사슴 세 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7일 [양력 4월 4일]<갑술> 맑다.
새벽에 땀이 흘렀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리포첨사 ?여도만호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빗었다. 녹도만호가 노루 두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8일 [양력 4월 5일]<을해> 맑다.
아침에 안골포만호(우수)?가리포첨사(이응표)가 각각으로 큰 사슴 한 마리씩을 보내 왔다. 가리포첨사도 보내 왔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경상수사? 좌수사? 가리포첨사? 방답첨사? 평산포만호? 여도만호? 우우후? 경상우후?강진 현감 등이 와서 같이 종일 몹시 취하여서 헤어졌다. 저녁에 비가 잠시 왔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병자>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 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 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3월 10일 [양력 4월 7일]<정축> 비가 내렸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니 온종 일 무척 취하여 나가지 못했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1일 [양력 4월 8일]<무인> 흐렸다.
해?회?완(莞) 및 수원(壽元)은 계집종 세 사람과 더불어 나갔다. 이 날 저녁에 방답첨사(張麟)가 성낼 일도 아닌데 공연히 성을 내어 상선(上船)의 물긷는 기전자(田子)에게 곤장 을 쳤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곧 군관과 이방(吏房)을 불러 군관에게는 스무 대, 이방(吏房)에게는 쉰 대를 매로 볼기쳤다. 저녁나절에 구 천성보만호가 하직하고 돌아가고, 새 천성보만호는 체찰사의 공문으로 병사에게 잡혀 갔다. 나주판관도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3월 12일 [양력 4월 9일]<기묘> 맑다.
아침 밥을 먹은 뒤에 몸이 노곤하여 잠깐 잠을 잤더니 처음으로 피로가 가신 듯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여도 만호?금갑도만호?나주판관도 왔다. 군관들이 술을 내었다. 저녁에 소국진(蘇國秦)이 체찰사에게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는 것은 본의가 아니라고 하 였다. 우습다. 그 편에 들으니 원흉(원균)은 곤장 마흔 대를, 장흥 부사는 스무 대를 맞았다고 했다.

3월 13일 [양력 4월 10일]<경진>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아뢰기를, "왜적선이 연이어 나 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도만호?금갑도만호 등을 뽑아 보냈다. 봄비가 오는 가운데 몸이 노곤하여 누워서 앓았다.

3월 14일 [양력 4월 11일]<신사> 궂은비가 걷히지 않는다.
새벽에 삼도에서 급한 보고가 왔는데, "견내량 근처의 거제땅 세 포(사등면 성포리)에 왜적선 다섯 척과 고성땅에 다섯 척이 정박 하여 뭍에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여러 장수들에게 배 다 섯 척을 더 뽑아 보내도록 전령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 고 각 처에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아침에 군량 회계하는 것을 마쳤다.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보낼려고 서류를 만들었다. 봄철 노곤함이 이에 이르니 밤새도 록 땀이 흘렀다.

3월 15일 [양력 4월 12일]<임오>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 서 참례했는데, 우수사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함께 술에 취하여 가면서 덕(德)과 아랫방에서 수군거렸다고 했다. 이 날 저물 무렵 바다에 달빛이 어슴푸레 밝았다. 몸이 노곤하여 축 갈아 앉는다. 밤새도록 식 은 땀이 흘렀다. 한밤에 비가 몹시 왔다. 낮에는 노곤하여 머리를 빗었는데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6일 [양력 4월 13일]<계미> 비가 퍼붓듯이 내리며 종일 그치지 않았다.
오전 여덟 시쯤에 시마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이 뒤집힌 곳이 많고 문과 창이 깨지고 창호지도 찢어져 비가 방안으로 새어 들어 와서 사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정 때에야 바람이 잤다. 저녁에 군관을 불러 와서 술을 먹였다. 한밤 한 시쯤에 비가 잠깐 그쳤다. 흐르는 땀이 어제와 마찬가지다.

3월 17일 [양력 4월 14일]<갑신> 종일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나주판관이 와서 봤다. 그래서 취하게 하여 보냈다. 어둘 무렵에 박자방(朴自邦)이 들어왔다. 이 날 밤에 식은 땀이 등에까지 흘러 두겹 옷이 흠뻑 다 젖고, 자는 이부자리도 젖었다. 몸이 불편하다.

3월 18일 [양력 4월 15일]<을유> 맑다.
샛바람이 종일 불고 날씨는 몹시 싸늘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방답첨사?금갑도만호?회령포만 호?옥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이 어슴푸레 비치고 밤기운이 몹시 차다. 자려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기도 불편하고 다시 몸이 불편 해졌다.

3월 19일 [양력 4월 16일]<병술>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는 몹시도 싸늘했다.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매었다. 저녁나절에 보성군수가 부침하는 것을 살펴볼 일로 휴가를 받았다. 김혼(金渾)이 같은 배로 나갔다. 종 경(京)도 같이 돌아갔다. 정량(丁良)은 볼일이 있어 여기 왔다 가 돌아갔다. 저녁에 가리포첨사?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술을 취 하도록 먹여서 보냈다. 어두울 무렵부터 바람이 몹시 사나왔다.

3월 20일 [양력 4월 17일]<정해> 종일 바람불고 비가 내렸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비가 와서 종일 나가지 않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바람막이를 두 개를 만들어서 걸었다. 밤새도록 비가 왔다.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3월 21일 [양력 4월 18일]<무자> 종일 큰 비가 내렸다.
초저녁에 도와리를 만나 구토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자정이 되 니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앉았다 누웠다 하 며 괜스레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날은 너무 심심해서 군관 송희립(宋希立)?김대복(金大福)?오철(吳 轍) 등을 불러 종정도(從政圖)를 내기했다. 바람막이 세 개를 만들어 걸었는데, 이언량(李彦良)과 김응겸(金應謙)이 감독했다. 한 밤이 지나서 비가 잠깐 그쳤다. 밤 세시에 이지러진 달빛이 비치어 방 밖으로 나가 거닐었다. 그래도 몸은 몹시 노곤했다.



3월 22일 [양력 4월 19일]<기축> 맑다.

아침에 종 금이(今)를 시켜서 머리를 빗게 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는 경상수사와 같이 와서 보므로 술을 먹여 보냈다. 그 편에 들으니 작은 고래가 섬위로 떠밀려와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자방(朴自邦)을 보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3월 23일 [양력 4월 20일]<경인> 맑다.
새벽에 정사립(鄭思立)이 와서 물고기 기름을 많이 짜서 가져 왔다고 했다. 새벽 세시에 몸이 불편하여 금이(今)를 불러 머리를 긁게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각 곳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조방장 김완(金浣) 및 충청수 군의 배 여덟 척이 들어오고 우후도 왔다. 종 금이(今)가 편지를 가져 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초저녁이 지나 영등포만호가 그의 어린 계집을 데리고 술을 가져 왔다고 했다. 나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밤 열시쯤이 지나서 되돌아갔다. 이 날에 비로소 미역을 땄다. 한밤에 잠이 들었다.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그래서 옷을 갈아 입고 잤다.

3월 24일 [양력 4월 21일]<신묘> 맑다.
아침에 미역을 따러 나갔다. 헌 활집은 베로 만든 게 여덟 장, 솜 으로 만든 게 두 장인데, 활집 한 장은 고쳐서 만들려고 감을 내어 주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서, 마량첨사 김응황 (金應潢)?파지도권관 송세응(宋世應)?결성현감 손안국(孫安 國) 등을 처벌했다. 저녁나절에 우후가 가져온 술을 방답첨사?평 산포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목포만호 등과 같이 마셨다. 나주판관 어운급(魚雲伋)에게는 4월 15일로 기한으로 휴가를 주었다. 몸이 몹시 노곤하여 흐르는 땀이 예사롭지 않다. 이 날도 비가 올것 같다.

3월 25일 [양력 4월 22일]<임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퍼부어 잠시도 비가 끊이지 않았다. 수루에 기대어 저녁 까지 보내니 마음이 언짢았다. 머리를 한참동안 빗었다. 낮에 땀이 옷을 적셨다. 밤에는 두겹 옷이 젖고 방 구들막까지 젖었다.

 

출처 ; http://www.suns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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